책임 없는 침묵이 만드는 재난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인재(人災)는 결코 갑작스러운 불운이나 불가항력의 결과만은 아니다. 건물의 붕괴, 산업 현장의 사고, 도시 기반 시설의 마비, 의료 시스템의 오류 등, 이러한 사건들의 이면에는 언제나 인간의 탐욕, 무관심, 시스템의 불균형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피해는 언제나 가장 약한 개인에게 집중된다.
특히 대형 사고가 발생한 이후, 이를 대하는 사회의 태도는 일정한 반복 구조를 지닌다. 사고 직후, 언론은 단편적 사실 보도에 급급하고, 책임 당사자들은 사태의 본질을 흐리며 조직적 은폐에 들어간다. 당연히 밝혀져야 할 경위와 책임의 구조는 모호하게 처리되고, 피해자들은 철저히 방치되며, 여론의 관심이 사그라들면 사건은 역사의 음지로 밀려나 버린다. 그리고 어느새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며, 그 사건은 단지 불행한 뉴스로만 기억된다.
이와 같은 순환은 단지 사고의 반복을 허용하는 수준을 넘어, 사회 전체가 무책임의 체계를 일종의 시스템처럼 내면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 없이, 구조적 문제를 고치려는 시도 없이, '누가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논의조차 피상적으로만 이뤄질 때, 그 사회는 필연적으로 다시 비극을 반복하게 된다. 책임은 공중에 떠 있고, 그 사이에서 다시 누군가는 피해를 보고 만다.
'멍 때리기'는 이러한 현실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다. 한 인물이 쓰러져 있고, 그 위에 또 다른 인물이 앉아 있다. 앉아 있는 인물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허공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고 있다. 그는 자신의 아래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혹은 알면서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쓰러진 인물을 위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쓰러진 자는 말을 할 수가 없고, 앉아 있는 자는 그저 침묵을 지킬 뿐이다.
누군가의 고통 위에 앉아 멍하니 있는 이 작품은 큰 인재가 벌어진 후 책임을 묻는 대신 침묵으로 일관하는 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다. 멍 때림은 단순한 무기력이나 방관이 아니다. 그것은 때로 가장 조용한 폭력의 형식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이러한 침묵의 구조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사고가 일어난 뒤, 사회는 단순한 복구와 사과에 그칠 것이 아니라, 그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를 철저히 파헤치고, 같은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적, 구조적 개선을 이루어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애도이며, 재난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사회의 의지이다.
이 작품은 특정 사건을 지시하지 않지만, 우리 사회 어디에서나 마주할 수 있는 침묵이 구조화된 사회의 단면을 드러낸다. 그리고 우리는 이 침묵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반복되는 비극을 멈추기 위해, 이제는 고통 위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대신, 그 자리에서 일어나 진실을 말하고 책임을 요구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