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발 달린 짐승들

우리는 정말 이성적 존재인가?

by 채정완
네 발 달린 짐승들_acrylic on canvas_50.0X65.1_2022.jpg 네 발 달린 짐승들 Four-legged beasts, acrylic on canvas, 50.0X65.1, 2022

야생의 세계는 단순하다. 강한 자가 위에 서고, 약한 자는 몸을 낮춘다. 싸움은 곧 생존이고, 위계는 생물학적 질서다. 무리 속에서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복종과 도전은 이빨과 몸짓으로 표현되며, 그들의 질서는 지극히 물리적이고 노골적이다. 오히려 그 단순함은 정직하다. 그들은 자신을 포장하지 않는다.


인간은 이와 다르다고 믿는다. 우리는 깊게 사유하고 판단하며, 본능을 넘어선 이성을 기준 삼아 사회를 운영한다고 말한다. 이성은 우리가 동물이 아닌 이유이자, 문명을 가능케 한 힘이다. 하지만 실제 사회, 특히 권력의 중심을 들여다보면 그 믿음은 쉽게 흔들린다. 자신들의 지위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연대보다는 분열을 택하고, 공정함보다는 특권의 안정을, 책임보다는 권력의 안전망에 매달리는 모습은 결코 이성적이라 보기 어렵다. 그들에게 이성은 그저 자신을 포장하는 껍데기에 가깝고 그 속에는 더 정교해진 생존 본능만 남아 있다.


'네발 달린 짐승들' 작품은 이러한 인간의 자기모순을 시각화한 작품이다. 정장을 입고 똑같은 얼굴을 한 인물들이 손에도 신발을 신은 채 네발로 기어가고 있다. 이들은 직립보행을 포기했다. 이 기형적 모습은 인간성의 퇴행을 드러낸다. 겉으로는 문명의 복장을 하고 있지만, 자세는 명백히 짐승의 그것이다. 이들은 각자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동일한 구조 안에 갇힌 존재들이다. 동일한 복장, 동일한 자세, 동일한 방향, 그 안에는 자유도, 주체도 없다. 오직 따르기와 유지하기만이 존재한다. 이 모습은 오늘날 사회 구조 안에서 생존 본능을 우선시하는 인간 군상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여전히 자신을 이성적인 존재라 부르며 동물과 구분 짓고자 한다. 그러나 그 이성은 점점 껍질처럼 벗겨지고 있고, 그 안에서 드러나는 것은 오히려 훈련된 본능의 연속이다. 손에 신발을 신은 채 네발로 기어가는 이 형상은, 인간이란 존재가 본능을 초월한 주체가 아닌, 사회적 질서에 순응하도록 길든 동물에 가까워졌음을 보여준다.


인간다움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되고 단련되는 태도다. 우리가 다시 이성을 말하고 싶다면, 그에 걸맞은 행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단순히 개인의 지위와 권력 유지가 아닌, 공동의 정의와 이상을 향해 사회를 끌어 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이성적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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