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하운드 경주, 그리고 인간의 경주
그레이하운드 견종은 고대 중동, 이집트에서 유래한 하운드 계통의 종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의 그레이하운드는 약 1000년경부터 영국에서 기르기 시작하여 귀족의 사냥 동반자로 사랑받아 온, 최대 시속 72km의 속도와 뛰어난 민첩성을 지닌 품종이다. 20세기 초 영국과 미국에서 일들의 질주를 스포츠로 삼은 그레이하운드 경주는 상업화의 물결을 타고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그 화려한 트랙 뒤에는 현실의 잔혹함이 도사리고 있었다. 더 빠르고 강한 개체를 얻기 위해 무분별한 번식이 이어졌고, 경쟁력이 떨어진 개들은 안락사되거나 방치되었다. 경기 중 골절이나 외상, 탈구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고, 나이가 들어 경주를 뛸 수 없게 된 개들은 구조나 입양을 통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지 못하면 안락사의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실태는 동물 학대로 여겨져 호주와 영국, 미국 일부 주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경주를 폐지하거나 강하게 규제하는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달리는 이유'는 그레이하운드들의 트랙 위의 경주 모습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그림 속 인물들은 모두 두 발이 아닌 네발로 달리고 있다. 이는 인간이 본래 지닌 보행의 자연스러운 의지가 배제된 채, 어쩔 수 없이 정해진 레이스에 몸을 던진 모습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그들은 어떻게든 끼어들어 더 빠르게 달리려고 서로 몸을 부딪쳐가며 한 발 더 앞으로 기어나가려 노력한다. 그런 치열한 동작 속에는 살아남으려는 원초적 본능이 담겨있다. 빛과 그림자의 강한 대비는 이들의 절박함과 동시에,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경주에 묶여 있는 현실을 함께 비춘다.
이 작품은 단순히 속도를 겨루는 경주가 아니라, 경쟁이라는 이름의 굴레 속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한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무표정한 얼굴 뒤에 숨겨진 불안과 피로, 그리고 서로를 밀어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상황의 부조리를 응시하게 된다.
과잉 경쟁은 결국 소모와 소외를 낳는다. 협력과 공존이 중심이 되는 구조, 그리고 인간의 가치가 성과로만 측정되지 않는 환경이 필요하다. 우리는 왜 달리는지, 무엇을 향해 달리는지 묻는 순간, 그리고 그 트랙에서 내려올 용기를 갖는 순간, 비로소 자유에 다가설 수 있다. 작품은 관람객에게 그 질문을 남기며,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자리와 앞으로 향할 길을 다시 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