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스트 워너비

과거를 욕망하는 얼굴

by 채정완
파시스트 워너비_acrylic on canvas_27.3X22.0_2025.jpg 파시스트 워너비 Fascist Wannabe, acrylic on canvas, 27.3X22.0, 2025

파시즘은 20세기 초 유럽에서 등장한 극단적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다. 개인의 자유보다 국가와 지도자를 절대시하며, 강한 권력과 폭력을 통해 사회를 통제하려 했다. 무솔리니의 이탈리아와 히틀러의 독일은 그 대표적 사례다. 파시즘은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하고, 인종과 민족, 성별에 따라 사람들을 구분해 차별하며, 공동체의 순수성을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폭력을 정당화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파시즘이 전쟁, 집단학살, 인권 말살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 그 기억들이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현대 자본주의가 불러온 양극화와 불안은 과거의 폭력적 이데올로기를 다시 불러내고 있다. 유럽에서는 이탈리아의 '이탈리아 형제들' 같은 극우 정당이 과거 무솔리니의 언어를 재활용하고, 독일의 극우 성향의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은 제1야당으로 자리 잡고 난민과 이민자를 범죄자로 낙인찍으며 혐오를 확산시킨다. 미국에서는 백인 우월주의 집단이 의회를 점거하고 무장 시위를 벌이면서도 자신을 스스로 '자유 수호자'라고 부른다. 아시아에서도 일본 우익 정치인들은 전쟁 범죄를 미화하고, 혐한 시위를 주도하는 집단이 거리로 나온다.


한국에서도 극우적 성향의 정치 집단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여성과 소수자 혐오는 물론이고 시대착오적인 반공 이데올로기를 주창하고 사회 갈등의 책임을 특정 세대, 계층, 이주민에게 떠넘기는 모습을 보인다.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대한 국가 폭력을 정당화하기도 하고 심지어 민주주의 이념을 무시하고 독재를 찬양하는 목소리가 커지기도 한다. 그들은 질서와 안보, 공동체를 위해서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사회를 위계화하고 권력을 독점하려는 욕망을 드러낸다.


'파시스트 워너비' 작품은 그 이중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작품 속 인물은 마커로 히틀러 콧수염을 그려 넣고, 나치식 경례를 흉내 내고 있다. 그의 몸짓은 어설프지만, 그 상징이 지닌 폭력성과 역사적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다. 표정 없는 가면 같은 얼굴은 비판적 사고를 잃고 집단적 광기에 편승한 현대인의 초상을 보여준다. 흑백의 단정한 양복과 붉은 배경은 과거의 파시즘과 현재의 극우를 연결하는 시각적 장치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와 평화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특정 집단을 배제하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자유라면 그것은 더 이상 자유가 아니다. 역사가 가르쳐 준 것은, 작은 모방과 농담 같은 행동이 결국 사회 전체를 집어삼키는 거대한 광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 스스로가 권력의 언어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사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은 거대한 제도에 있지 않다. 각자가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할 때, 비로소 우리는 또다시 과거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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