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도약

정렬된 행진과 벗어나는 몸

by 채정완
어떤 도약_acrylic on canvas_97.0X145.5_2025.jpg 어떤 도약 A Certain Leap, acrylic on canvas, 97.0X145.5, 2025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체제 아래 성장한 세계화는 자유로운 경쟁이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믿음 위에서 작동해 왔다. 그러나 이 체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경쟁의 결과를 소수에게 집중시키고, 다수에게는 불안정한 생존 조건을 남겼다. 자본과 정보는 빠르게 축적되었지만, 개인의 삶은 점점 더 취약해졌다. 사회는 승자와 패자로 명확히 갈라졌고, 그 격차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세계화는 더 이상 공동 번영의 약속이 아니라, 불평등한 조건을 일상화하는 구조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양극화 속에서 각 국가는 시장에 맡겨졌던 생존의 책임을 다시 떠안게 되었다. 이 변화는 미국과 중국 같은 패권 국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에너지와 식량, 산업과 기술, 고용과 안보의 문제는 세계 곳곳에서 국가 개입을 확대하고 있다. 국가는 글로벌 질서에서 살아남기 위한 핵심 주체로 다시 등장하며, 사회 전체의 생존 전략을 설계한다. 그 과정에서 효율과 속도는 더 강조되고, 통제와 규율은 점점 당연한 수단으로 받아들여진다.


국가 중심의 생존 전략이 강화될수록 개인에게 요구되는 조건은 더 엄격해진다. 집단의 질서에 얼마나 잘 적응하는지가 생존의 조건이 되고, 다른 선택은 위험 요소로 간주된다. 자유와 권리는 보호의 대상이기보다, 경쟁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허용된다. 개인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조정하고, 집단이 요구하는 리듬에 몸을 맞추는 존재가 된다.


이 작품은 이러한 생존의 구조를 시각적으로 드러낸 작업이다. 화면을 가득 채운 인물들은 거위걸음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거위걸음은 권위주의 국가에서 집단의 규율과 복종을 과시하기 위해 사용된 군사 행진 방식으로, 개인의 의지보다 집단의 규칙에 신체를 정렬시키는 움직임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같은 방향과 같은 보폭을 유지하며 움직이고, 표정과 개별성은 제거되어 있다. 이 반복된 행진은 효율적인 생존 전략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개인의 몸은 표준화되고 쉽게 대체된다. 그 중심에 위치해 도약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나체의 인물은 이 집단의 질서에서 벗어난 존재다. 이 도약은 체제 밖으로의 탈출이나 승리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생존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권위주의에 대한 도덕적 비판이 아니다. '어떤 도약'은 경쟁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개인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을 것인가를 묻는다. 국가와 집단이 설계한 효율적인 생존 전략에 몸을 맡길 것인지, 아니면 불안정하더라도 자신의 판단과 자유의지로 삶을 감당할 것인지.이 도약은 자유의 선언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 속에서도 인간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주체성에 관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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