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아침 출근을 하면서 김제동이 진행하는 라디오를 듣는데, 대본에 없었을 법한 김제동의 한 마디가 종일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촌스러운 게 세상에 해를 끼치는 일은 없어요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전후 맥락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데, 그 한 문장만 뇌리에 콕 박혀 잊히지가 않았다.
나의 촌스러움은 무엇일까.
어서 찾아내고 싶었다. 될 수 있다면 더 촌스럽고 싶었다. (내 사랑 동디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그런데 문득 어느 날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물론 나를 멋지게 포장할 만한 끝내주는 촌스러움은 찾지 못했다.)
꽃에 얼굴을 묻고 꽃향기를 맡던 젊은 남자의 모습.
스님이었다. 스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젊어 보였는데, 그때 내가 중학생이었으니 지금의 시선으로 본다면 어려 보이기까지 할 만한 연배였다.
20년도 훌쩍 지난 시절, 그 시절에도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길가의 혹은 화단의 꽃 핀 자리에 얼굴을 묻고 꽃 향기에 취하는 것은 촌스러운 짓이라고.
그런데 내가 요즘 그런 짓을 하며 산다.
어제 없던 꽃이 오늘 나와 있으면 세상에 세상에 탄성을 지르며 경이로워 허공에 대고 건배를 한다. 어제 보지 못한 싹을 오늘 발견해 그 생명이 조금 더 넓게 멀리 깊이 퍼질 것 같아 보이면 그 앞에 한참을 서서 보고 또 보며 생명에 대해 재잘거린다.
몇 개의 식물 이름을 더 외웠고, 몇 개의 식물이 얼마나 예민한지 조금 깨달았고, 몇 개의 식물을 과감하게 저 세상으로 보내 보았을 뿐인데......
그럼에도 나는 '단지 몇 개'라고 말하기 어려운 온갖 초록의 생명들과 아직까지는 잘 살아내고 있다고, 촌스럽게 호들갑을 떨며 아주 잘 살아내고 있다고 내게 다정한 누군가를 붙잡고 자랑하고 싶다.
요즘 나의 촌스러움은 이런 것 아닐까.
잘 찾아낸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만족하는 정원의 촌스러움.
나 지금 좀 괜찮아 보인다.
당신의 매력 철철 촌스러움은 무엇인지, 같이 찾아주고 싶은 이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