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긴 고무장갑을 보며 밀려오는 그리움에 대처하기

부엌을 여행하는 시크한 여자의 살림에 대한 단상

by 정원

설거지를 하는데, 물이 새는 것 같아 보니 고무장갑이 찢어졌다.

언제 어떻게 찢어졌는지 모르겠다.


지난번에도 이런 일이 있어서 새지 않는 반대쪽을 남겨두었는데... 어디 있더라.

정신없이 살림하다 보면 그때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곳을 찾아 정리한 것 같은데, 막상 필요할 때가 되면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고무장갑 한짝을 찾고 있자니 엄마 생각이 난다.

지난 명절 집에 내려갔더니 엄마가 고무장갑 찢긴 부분을 실로 꽁꽁 묶어서 쓰고 계셨다. 그런 걸 보면 난무하는 에세이들을 읽다가 속 깊은 시 몇 줄을 보고 머리를 퉁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엄마란 뭘까.

고무장갑 한짝이 찢기면 멀쩡한 한쪽 남겨두었다가 또 그런 일 생기면 짝 잃은 고무장갑에게 짝 찾아주라고 한 것도 엄마였다.

그래서 툴툴 하면서도 그저 생각나니 따라하고 있었던 건데 엄마의 아끼는 습관은 한 단계 더 진화해 있었다.

아니, 아끼는 습관이라 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그건 타지에 자식들 보내두고 고향에서 소박한 살림살이 일구며 때마다 장 담그고 고춧가루 내고 기름 짜고 김장해 때마다 서울로 올려보내는... 부모노릇에서 비롯한 고결한 생의 리듬같은 것이다.


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면서도 엄마에게 "그냥 하나 사시지..." 하며 무뚝뚝하게 한 마디 던진다. 그러고는 곧장 후회한다. 그래서 또 아빠가 비싼 술이라며 좋아하셨던 백화수복을 세 병 서서 베란다 시원한 곳에 두고는 "조금씩만 드세요." 한다.


그렇게 무덤덤하게 있는둥 마는둥 하다가 서울로 올라와 다시 일상을 살다 보면, 이렇게 문득 엄마 생각이 난다. 고무장갑 찢긴 부분을 실로 동여메 보아야겠다. 그러면 울컥 목 위로 올라오는 그리움이 새나오지 않아 좀 나을지 모르겠다.


엄마는 그래요.

엄마는 참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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