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상태 양호, 스크램블드에그

부엌을 여행하는 시크한 여자의 살림에 대한 단상

by 정원

스크램블드에그는 화려한 이름에 비해 매우 간단한,

아니 간단하다고 말하기에도 다른 요리들에게는 미안해지는, 그런 메뉴다.

아주 간단해서 바쁠 때면 ‘스크램블드에그나 하지.’ 하며 한 끼 때우고 싶은 충동이 이는 그런 메뉴다.

하지만 딸아이가 있는 나는 달걀 요리를 되도록 줄이려고 노력하는 편이기 때문에

딸아이에게 스크램블드에그는 특별식이다.

예쁜 접시에 봄날 갓 피기 시작한 매화, 개나리 꽃망울 같은 희고 노란 그것들을 담아낸 뒤 붉은 케첩으로 자연에서는 불가한 기호, 인위적인 하트 하나를 그려 주면

딸은 그것으로 엄마의 사랑을 확인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엄마의 사랑은보다 훨씬 깊고 진한 것 같은데…….



어쨌든 딸아이의 마음을 안정되게 하는 이 음식을 할 때는 기분이 좋다.

단순한 빛깔도 좋고, 기름을 약간만 두르면 프라이팬 위로 달걀들이 율동하듯 미끄러지며 움직이는 운동감도 좋다. 단순하고도 또 단순한 노동이 프라이팬을 잡은 왼손, 긴 나무젓가락을 휘두르는 오른손의 동작을 느린 화면으로 찍어 돌려보듯 순간에 집중하게 한다.


그런데 이렇게 막힘없이 행복한 순간이 연출되려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매우 중요한 조건 하나가 전제되어야 한다. 프라이팬의 코팅 상태가 좋을 것.

프라이팬은 유효기간이 있는 소모품이다. 집에서 음식을 꽤 많이 하는 우리 집의 경우 프라이팬 교체 시기가 상당히 빠른 편인데, 나는 코팅이 벗겨지거나 낡은 프라이팬은 지체 없이 바꾼다. 건강을 위해서도 그러하지만, 주방에서 움직이는 요리사의 즐거움, 모든 음식에 그 양념을 빼서는 안 되기에 오래되고 낡은 프라이팬은 쓰지 않는다.


아침에 딸아이가 지각할지도 모르게 준비가 늦어 스크램블드에그를 했는데, 딸아이의 기분이 몹시 좋다.

나는 만드는 동안, 달걀들이 프라이팬에 눌러 붙지 않고 미끄러지듯 움직여 괜히 기분이 좋다. 프라이팬 상태가 아직 양호하다.

이것 말고도 기분 좋을 일은 세상에 아주 많겠지만,

나를 찾아온 이 순간이

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다.



사랑이 여전하고,

우리 관계가 여전하고,

고장 난 데 없이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언제까지고 낡은 프라이팬은 재빨리 교체하며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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