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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나 Feb 27. 2022

24. 우리 옛것과의 만남

검은색에 대하여

흑색예찬黑色禮讚  

옛사람들의 색채 인식에는 사계절 같은 자연환경 외에 색의 상징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전통사회에서 흑색은 우주 생성의 근본인 음양이 생성한 오행 중 물()에 해당하고 북쪽을 가리키며 겨울을 뜻했다오른편 붉은 태양과 왼편 하얀 달을 묘사한 어좌 장엄용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와 제사상 차림의 기본인 홍동백서紅東白西가 말해주듯 색은 생활을 규제하였다.

현대인에게 색은 이전 시대와 다른 의미다오방색 같은 관념성에서 자유로워져 색상이 주는 감성과 심미성을 중요시한다의상뿐만 아니라 건물 외장재음식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쓰이는 검정은 이제는 세련되고 멋있는 색의 대표주자이다.     


먹색의 진경眞景

조선 후기 한국회화는 중국 산수화풍에서 벗어나 우리 땅의 현실 미를 그리기 시작했다. 조선의 풍광에 걸맞은 회화 양식을 창출해낸 겸재 정선(1676∼1759)은 어느 여름날 장대비가 그친 후 백악산에 올랐다. 물기를 머금어 괴량감이 커지고 질감이 짙어진 인왕산을 바라보며 붓을 들었다. 

1751년 일흔여섯 고령의 겸재가 탄생시킨 <인왕제색도>에는 사연이 전해진다. 당대 겸재와 시화詩畵 쌍벽으로 알려진 사천 이병연(1671~1751)은 오랜 시간을 함께한 친한 벗이기도 했다. 사천이 병환으로 자리에 눕자, 며칠 동안 곁을 지킨 겸재가 집에 돌아온 직후 그린 것이라 알려져 있다. 

老 예술가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원숙한 경지에 오른 눈과 손의 조응이 시대의 역작을 낳은 것이다. 


겸재는 산의 전면前面으로 화면을 채운다. 하늘을 뒤덮을 것 같은 암산이 시야를 압도한다. 밝은 색감의 화강암을 대신한 힘차게 뻗은 진한 먹(積墨)은 까마득히 오래된 거대 암석의 기원까지 그려낸 듯하다. 솟아 오른 바위 덩어리와 피어오르는 물안개, 그리고 흠뻑 젖은 소나무는 <인왕제색도>에서 불멸의 삶을 살아간다. 

실재보다 더한 생동감에 ‘실경實景’보다는 참된 경치 ‘진경眞景’ 산수라 일컬어진다.

      


흙과 불의 드라마

자기에는 청자와 백자, 분청자뿐만 아니라 드물긴 하나 흑자黑磁도 있다. 철분이 많이 함유된 유약을 써서 반짝거리는 검은빛이다. 흑자도 청자와 백자처럼 흙으로 빚어지고 불로 완성된다. 태생에는 차이가 없지만 새로운 미감이 낳은 파격에 감상의 결은 달라진다. 

백자의 흰빛과 청자의 푸른빛 앞에서는 삼가는 마음이 들지만 검은 빛에는 저어하는 마음이 사그라진다. 색色이 지닌 본연한 성질이라기보다는 생활 속 색채 체험 때문이리라 싶다. 

흑자는 다른 자기들보다는 거무스름한 옹기의 이미지와 많이 겹쳐진다. 유약을 바르지 않은 맨몸뚱이 질그릇과 유약 입은 오지그릇을 함께 아우르는 옹기는 쓰임새에 있어서 자기와는 천양지차이다. 청자와 백자가 고려와 조선시대의 위계와 권위를 표상한다면 옹기는 신석기시대부터의 일상적 삶을 대변한다. 현대의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시루, 항아리, 단지 등의 시원적 형태가 시대와 지역의 구분 없이 다수 발견되고 전시되는 까닭이다. 선사시대부터 쉼 없이 발효, 저장, 운반 등을 맡아 오고 있는데도 색감, 형태미, 기능성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곤 한다. 

먼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늘 무언가를 보듬거나 삭혀내며 뜨거운 열기도 견뎌내는 옹기, 우리네 인생살이와 닮아 있다.


빛과 소리의 심연深淵

국립중앙박물관 통일신라실에는 전 보원사 철불이 있다. 엷은 미소와 단아하면서도 당당한 품격이 인상적이다. 석굴암 본존불과 함께 통일신라 불교 조각을 대표하는 철불은 여러 차례 해외 특별전에 전시되었다. 연이은 호평 소식에 시간을 초월하고 대륙의 경계를 넘어선 ‘8세기 아이언 맨’의 매력을 확인하게 된다. 


철은 녹는점이 동보다 높고 온도가 내려가면 금방 굳어서 조각상의 세부적인 표현을 어렵게 한다. 그런데 불상이 전하는 인간적인 온기와 신비한 기운에 마음을 빼앗기면 익히 들어왔던 철의 성질이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철의 물성에 마력이 깃들였나, 불상 안에는 생명이 숨 쉬고 있을 것 같아진다. 

따로 만들어 끼우기에 분실되기 쉬운 손 이야기를 들은 후에야 불상의 손목 부분이 텅 빈 것을 알아챈다. 전 보원사 철불처럼 규모가 큰 불상은 부분 틀로 성형된다. 몸체에 남겨진 거친 선이 아물지 않은 상처같이 보여 마음이 쓰인다.

최초 조성 당시의 모습과는 달리 금칠이 벗겨지며 민낯이 되고 두 손을 잃었지만 그 위용에는 손색이 없으리라. 철불은 빛이 없어도 어둡지 않으며 소리가 없어도 마음을 울리기 때문이다. 같은 형상이라도 목불이나 석불은 전할 수 없는 장중함의 비결은 무엇일까. 철의 생生은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불꽃 그리고 모루(주철이나 강철로 만든 받침)와 쇠매(커다란 망치)가 내는 천둥 같은 소리에서 시작된다. 철불이 지닌 숭고미는 철이 품어낸 원시적 생명력 가득한 빛과 소리 때문이리라.       

전 보원사철불. 국립중앙박물관

감각의 기억들   

한참 지난 기억들을 꺼내본다. 벼루 위에서 크고 작은 동심원을 그려가며 먹을 갈 때였다. 적당한 먹물의 농도는 검게 물들어가는 색과 진득해져 가는 촉감의 미묘한 변화로 가늠했다. 아스팔트에 대한 첫인상도 선명하다. 시커먼 데다 코를 막을 정도로 고약한 냄새에 멀찍이 떨어져서 다녔다. 그렇게 낯설었는데 지금은 자연 상태의 물질인양 친숙하다. 색명色名은 같아도 색을 담고 있는 매질媒質에 따라 체험하는 오감이 달라지고 심상에 각인되는 정도는 흐르는 시간을 따라서 변주된 것을 깨닫는다. 

미래의 ‘네오(neo) 흑색들’은 어떠할까. ‘무심한 듯 시크하게’ 등장하여 우리네 감각의 깊이와 넓이를 새롭게 조율하리라,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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