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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나 Feb 15. 2022

4. 우리 옛것과의 만남

<백동자도>에 대하여

금자동아은자동아

코로나가  시작된 첫 해, 손녀를 보았다. 여러 염려를 뒤로하고 작디작은 생명이 세상을 마주하고 있었다. 요새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아이가 그저 신통방통한 기쁘고 감사한 날들을 보낸다. 손주란 이리도 예쁜가. 허둥지둥 할미 노릇 하다 문득문득 조선시대 한 학자를 떠올렸다. 

    

손자가 태어나 성장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글로 남긴 묵재默齋 이문건李文楗(1494∼1567). 명문가였으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몰락해가던 집안에는 불운이 겹쳐 아이들은 일찍 세상을 떠나거나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다. 유일하게 장성한 아들 온에 대한 기록을 살펴본다. 

“아침에 온이 시를 해석하지 못해 화가 치밀어 긴 나무로 때려 나무가 부러졌다.”

“저녁에 온이 화나게 해서 대나무로 때렸더니 기분이 상했다.” 

그가 매를 든 것은 애정과 기대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훈육이 매질로 되던가, 남 일 같지 않은 500여 년 전의 일화가 눈에 들어온다. 

1551년 58세의 그는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를 얻는다.

“천리는 생생불식生生不息(낳아서 쉼이 없음)이라더니 과연 아직 다하지 않아 어리석은 아들이 자식을 얻어 가풍이 이어졌다... 오늘 저 어린 손자를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며, 노년에 내가 아이 크는 모습을 지켜보겠다.” 

“노년에 고독하게 거처하는데 오직 손자 아이 노는 것을 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습좌習坐, 생치生齒, 포복匍匐 등의 짧은 글을 뒤에 기록하여 애지중지 귀여워하는 마음을 담았다. 아이가 장성하여 이것을 보게 되면 아마 글로나마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할아버지 이문건의 손자 육아일기 ‘양아록養兒錄’이 이렇게 탄생하였다. 

     


“손자 아이가 커 가는 것을 보니 내가 늙어가는 것을 잊어버린다.” 손자 키우는 재미에 흠뻑 빠진 묵재의 모습이 그려진다. 숙길淑吉(후에 수봉守封으로), 이름에 담은 길하라는 바람을 저버리고 손자 7세 되던 해에 아들이 세상을 떠나고, 숙길의 양육은 온전히 묵재의 몫이 되었다.

‘양아록’의 마지막은 ‘노옹조노탄老翁躁怒嘆’이다.

“늙은이의 포악함은 진실로 경계해야 할 듯하다.” 손자를 때린 자신을 탓하고 “할아버지와 손자 모두 실망하여 남은 것이 없으니 이 늙은이가 죽은 후에나 그칠 것이다. 아, 눈물이 흐른다.”면서 품 안을 벗어난 아이와의 갈등이 버거워 원망과 슬픔을 드러냈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수봉은 어찌 되었나, 행적을 찾아본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활약했다니 할아버지의 정성과 노고를 잊지 않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청년으로 성장하였음에 틀림없다. 

양아록은 육아 지침서와 성장일기,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육아를 여성의 일로 치부하였으리라 싶은 짐작과 달리 선비가 양육 일기를 남길 수 있었던 조선 전기의 사회적 분위기와 생활사를 증언한다. 시대가 달라도 크게 다를 것 없는 우리네 삶의 면면들이 마음을 울린다. 

     


손녀를 얻은 후 주변의 아기들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몇 개월 일지 가늠해보고, 어떤 예쁜 짓을 할지 상상해보곤 한다. 그림 속의 아이들까지도 새롭게 눈에 들어오니 <백동자도百童子圖>가 그중 하나다. <백동자도>는 <곽분양행락도郭粉陽享樂圖>에서 동자들이 독립된 화제로 비중 있게 그려진 경우라고 한다. 곽분양은 중국 역사상 유래가 드물게 정치적, 군사적인 업적이 큰 곽자의(697~781)가 분양군왕汾陽郡王으로 봉해져 붙은 이름이다. 85세로 죽기 전까지 아들 8명, 사위 7명과 자손들이 모두 잘되어 장수와 부귀영화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또한 일일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손자들이 많았다는 다자다손多子多孫의 전형이다.

곽자의가 누린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담긴 <곽분양행락도>에는 화려한 저택의 너른 안마당에서 활기차게 노니는 여러 아이들이 등장한다. <백동자도>는 ‘백자도百子圖’ 혹은 ‘백자동도百子童圖’라고도 불렸다. 그려진 아이가 백 명이 아니라, 그만큼 많아서이다.  

중국풍 복식과 머리를 한 채 사방팔방 뛰어노는 아이들이 그득한 <백동자도>에는 여아가 단 한 명도 없다. 남아선호 사상이 지배적인 시절임을 감안해도 슬슬 부아가 난다. 고루고루 그렸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터인데 말이다.

백동자도.국립중앙박물관

차치하고 귀여운 아이들이 주인공인 유일한 그림 백동자도의 쓰임을 알아본다. 궁중에서는 곽분양행락도를 선호하였고, 민간에서는 크기가 작은 백동자도를 만들어 활용하였다고 한다. 궁중의 결혼식인 가례嘉禮 때 백동자도를 설치한 기록도 나온다. 자손이 번성하고 왕실이 영속하기를 염원하였음을 알려준다.

또래들이 어울려 잠자리 잡고, 낮잠 자고, 연못에서 멱 감느라 웃음꽃이 활짝 핀 어린 얼굴들. 기억 속에 선명히 새겨져 있는 친숙한 장면인데, 요즘 아이들은 경험하기 어려운 일이다 싶으니 씁쓸하다.

     


아이의 탄생은 근원적인 뭉클함을 불러일으킨다. 아이의 웃음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온기가 되어 몇 곱절의 웃음으로 화답케 한다. 내 아기, 네 아기로 나눌 수 없는 우리 모두의 귀하고 귀한 아이들이다. 손녀의 티 없는 미소에 행복을 느끼며 근래 눈으로 읽기도, 입으로 말하기도 힘든 내용의 아동 관련 사건들을 생각한다. 너무나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된 아이들에 마음이 시리고 저리다.     

개성유수였던 시인 오광운(1689~1745)의 곡자시哭子詩를 가져와본다.     

넌 죽고 난 살아서 계절이 바뀌었으니,

가는 구름, 흐르는 물 한결같이 아득하네.

땅속에서 새해 온 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세상에 있었다면 열 살이 되었으리.

음침한 골짜기에 소나무 깔려 햇빛이 없는데,

양지바른 언덕엔 얼음 녹아 더욱 슬픈 샘물 흐르네...

        <죽은 아들의 무덤에 곡을 하다>     

생명이 돌아오는 봄이다. 아이의 나이는 멈췄지만 살았다면 몇 살일까 헤아리며 

마음자리에 그 이름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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