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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Apr 04. 2022

공부

완벽한 컨디션은 없다.

완벽한 하루라고 느꼈던 날을 생각해 보면 완벽한 하루를 보낼 거라고 계획한 적이 없었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 도전했던 메뉴가 맛있을 때. 예기치 못한 순간이 감동적이었을 때가 완벽으로 다가왔었다.


예쁜 저녁 하늘 아래 놀이터에서 조카가 구름 철봉을 타는 걸 본다든가. 오랜만에 보는 엄마와 아빠를 기다리며 먹는 초콜릿 케이크와 아이스라테가 그렇게 맛이 있다든가.


하루 중 한 시간도 안 되는 그 순간들 덕분에 그날들이 완벽했다.


나는 요즘 새벽 3시쯤 잠들고 8시 반에 깨지만 10시 에 하루를 시작한다. 어쩔 수 없다. 스트레칭도 하고 커피도 타 먹고 뭉그적대다가 일어나려면. 일어난 이후엔 뭉그적댔던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곤 이직 공부를 한다. 컨디션은 나쁘진 않은데 좋지도 않다.



최악의 슬럼프가 지난달에 찾아왔다. 생각해 보면 고3 입시 준비나 편입처럼 장기전으로 이어지는 공부는 자책하는데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 같다. 당장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고 중간에 긴장감도 풀릴뿐더러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나라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고3 입시 공부는 하고 싶을 때만 했다. 그래서였을까. 대학생활 내내 입시 공부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기분이 나를 찝찝하게 했고 뒤늦게서야 편입 준비를 했다. 이때는 무식하게 공부(토플)를 했던 거 같다. 다행히 미술 포트폴리오도 가산점을 받고 편입을 잘 해냈다.


이번 이직 공부는 미술전공도 아니고 무조건 빡공인데 큰일이다. 비빌 데가 없다.


처음 3개월은 기술적인 부분을 공부하느라 실력이 향상되는 기분이 들어서 집중이 무척 잘 됐다. 같이 공부하는 팀에서 중간은 하는구나를 느꼈다. 문제는 4개월 차, 성과는 미미하고 제자리걸음만 하는 기분이었다. 공부에 내실이 없는 기분이랄까. 한 달을 그렇게 버벅댔다.


집중력이 떨어질 때마다 공부 유튜버들의 영상을 봤다. 단순히 주의 환기용으로 보곤 했는데, 어 이거 뭔가 비슷한데…? 분명 전공이 다른 유튜버들인데도 다들 공부하는 방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거의 흡사할 정도였다.


독종 유튜버들의 공부법을 내 공부에 하나둘씩 적용한 뒤부터는 공부하는 게 재밌어졌다. 아직 늘었단 기분은 못 느끼겠지만 세수하다가 또는 요리하다가 외운 단어가 폭죽처럼 탕탕 터지며 자연스럽게 되새김질이 된다. 내가 상위권으로 갈 방법을 몰랐었구나.


공부를 하다가 집중이 떨어질 때 즘 하루 계획을 대강 성의 없게 쓴다. 성의 있게 계획을 쓰면 그 계획들을 벌써 이룬 기분이 들어서다. 그리고 완벽한 컨디션에서 공부한다는 마음을 버렸다. 어차피 아무리 잠을 자도 새벽 3시에 자면 그다음 날 컨디션은 난조다. 저녁 5시 정도는 돼야 뇌가 깬다. 계획대로 공부를 못하면 아이고 내가 이럴 줄 알았어하며 나의 모자람을 쿨하게 인정해 버린다. 어차피 오늘도 계획대로 안 끝나겠지 하는 순간 쉬는 시간을 쪼개가며 하는 나를 발견한다. 이 무슨 청개구리 같은 짓일까.


의대생, 공시생, 서울대 졸업생 유튜버(횹이, 빈빈, 서까남, 보갱, 7급 공무원 공도비) 들을 보면 참 독하다는 생각이 든다. 난 그들보다 독하지 않다는 걸 자연스럽게 순응해버리니까 그냥 스스로를 자책할 것도 실망할 것도 없어졌다.


100장을 다 봐야 할 것 같지만 100장 중 50장이라도 보는 게 중요하지라는 마음으로 한다. 그러다 보면 90장은 보는 것 같다. 그냥 틈나는 대로 하자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

그러다 보니, 완벽한 휴식, 완벽한 잠, 완벽한 관계에 대한 생각이 이거 다 망상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대생 유튜버들이 에너지 드링크를 한 박스씩 사두고 뇌를 깨우는 걸 보면 뇌 건강에 관한 칼럼은 이미 저세상 얘기인 듯하다. 대학 때 작업실에서 커피 두 잔과 레드불을 마신 상태로 그냥 쓰러져서 잠깐 졸았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 에너지 드링크는 안 마신다. 한 유튜버도 시험 보는 도중에 잠이 드는 바람에 아찔했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에너지 드링크를 물처럼 마시는 걸 보면 컨디션이고 뭐고 무조건 하는 기분이다.


유튜브들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면 대부분 가볍게라도 꼭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한다. 필라테스든 헬스든 계단 오르기든.


지금은 다시 공부시간을 규칙적으로 짰다. 필수적으로 멍 때리는 시간까지 계산해서. 담주 일요일엔 떡볶이 먹고 하루 종일 잠만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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