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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Sep 20. 2017

반복되는 난관과 노력을 이해하는 것.

<어 퍼펙트 데이, 2016>

영화는 크게 장르로 구별되고, 대 주제, 소주제 순으로 세분화되어 만들어지는데, <어 퍼펙트 데이>는 이런 형식의 제한을 신경 쓰지 않는다.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 감독은 영화의 장르가 명확하지 않다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내가 20살 때부터 고민해왔던 문제이다. 나는 장르가 혼재되어있는 이야기에 편안함을 느낀다. 삶은 한 장르로 구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관람하는 입장에서, 한 장르로 이야기를 압축한 영화들을 선호하지 않는다.<어 퍼펙트 데이>는 크게는 드라마 장르이지만, 세부적으로 코미디, 로드무비, 드라마, 전쟁, 이렇게 4가지의 장르 또한 포함하고 있다."

시체를 끌어올리는 맘부르.<출처.어 퍼펙트 데이>

<어 퍼펙트 데이>는 보스니아 내전 이후의 1995년의 발칸반도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이틀 동안 시체가 빠져 있는 우물을 기점으로 그려지는 이야기다. 잔뼈 굵은 구호단체 요원 맘부르와 B, 신입요원 소피와 맘부루의 옛 연인이자 요원인 카티야, 현지인인, 통역사 다미르와 소년 니콜라가 등장한다.

발칸 반도는 고대부터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종교와 문화가 다양한 민족들이 살고 있어 갈등과 분쟁이 그치질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공산 정권을 수립하면서 6개 공화국과 2개 자치주로 구성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 탄생하였다. 각 공화국에 자치권을 부여한 티토는 정치적 민족주의를 제창하며 다민족, 다종교로 구성된 공화국 간 갈등을 무마시켜 왔으나, 그가 죽은 후 그동안 잠재돼 민족 갈등이 악화되면서 그들은 분리 독립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보스니아 내전(1992~1995년) 끝난 지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발칸 반도의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식수공급을 위해 밧줄을 구해야 한다.


식수공급이 끊길 마당에도 해맑게 담소를 나누고 있는 알바니아인들 사이에서 작업복을 입은 맘부르와 통역사 다미르는 자동차와 밧줄을 이용하여 우물 안에 있는 거구의 시체를 조심스럽게 끌어올린다. 하지만 낡은 밧줄은 시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우물 안으로 시체를 떨어뜨린다.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신입 요원 소피와 맘부르의 동료 B가 우물가에 도착한다. 소피는 도착하자마자, 앞서, 규칙을 준수하지 않은 B에 대하여, 팀장인 맘부르에게 항의한다. 맘부르는 우물 안에 있는 시체를 처음 보고 경악하는 신입 소피를 바라보며 말한다. "B는 이미 알았을 거야. 규칙을 굳이 따를 필요도 없이 그곳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B는 화가 잔뜩 난 소피를 보고 귀엽다는 듯 놀린다. 밧줄을 구하기 위해 요원 3명과 통역사는 UN군이 있는 베이스캠프로 복귀한다.


군은 규칙을 준수한다. 


UN군이 관할하는 지역에 세 개의 우물이 있다. 군은 지뢰가 있는 두 개의 우물과 이상이 없는 세 번째 우물을 보고 받고, 마을 사람들의 식수문제에 대해 안심한다.방금 전까지 세 번째 우물에 시체가 있는 것을 보고 온 소피는 지뢰가 있는 우물들을 처리하기 이전에 시체로 인해 전염병이 돌 수 있는 세 번째 우물에 지원병력을 먼저 보내야 한다고 제기한다. 군은 규칙에 따라, 지뢰가 있는 우물이 우선시 돼야 한다고 말하며 세 번째 우물의 지원을 보류한다. 맘부르는 이런 상황을 미리 예견한 듯, 베이스캠프의 사람들과 대립하며 열을 내는 소피를 이끌고, 팀을 꾸려, 밧줄을 구하러 나선다. 감독은 소피와 맘부르 사이의 공통된 지점을 마련해 놓는다. 같은 눈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것. 다만, 두 사람은 수심 가득한 표정의 편차만큼 행동의 편차가 있다. 발칸반도의 전쟁을 겪은 맘부르는 노련하다. 사안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눈이 몰려있지 않은 틈을 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진행한다. 반면, 시스템의 무게감을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신입 소피는 옳지 않은 일을 당장에 해결하려 하고, 입장을 달리하는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불편함을 불러일으킨다. 감독은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소피가 돌발행동을 하게 내버려두고, 그런 소피를 맘부르로 하여금 계속해서 제재시키게 하지만, 맘부르는 소피의 행동이 경솔하되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피는 변수가 많은 발칸반도의 분위기에 대응하지 못하는 군의 규칙을 답답하게 생각한다.

니콜라가 살던 마을. <출처.어 퍼펙트 데이>

인간의 폭력성과 분쟁의 잔상.


밧줄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도움을 요청해보지만 전쟁을 막 지나온 사람들 간에 감도는 긴장감은 바로 눈앞에 있는 밧줄도 쉽사리 얻을 수 없게 한다. 맘부르의 팀은 결국 밧줄을 구하기 위해 전쟁이 발발하기 전 소년 니콜라가 살던 집으로 향한다. 니콜라는 자신의 옛 집터에 묶인 채, 아직 살아있는 광기 어린 사냥개의 목에 매여있는 밧줄을 가리키며, 저것이 자신이 말한 밧줄이라고 말한다. 신경안정제가 주사된 소시지를 개에게 먹여보지만 오랜 시간 굶주려온 개는 피곤한 기색 없이 다음 소시지를 기다린다.


맘부르와 소피는 니콜라에게 놀이공을 갖다 주기 위해 집으로 들어선다. 폭탄이 이 집을 어떻게 휩쓸었는지 설명해주는 맘부르의 발걸음을 따라 폐허 속 모든 집기들이 보여진다. 둘은 아직 지뢰가 남아있을지 모르는 집안 이곳저곳을 조심스레 둘러보다, 차고 문 뒤로, 교수형 당한 두 구의 시신을 발견한다. 다른 도시로 피신 간 줄로만 알았던 니콜라의 부모님이다. 감독은 차고의 문에 의해 반즘 가려진 시신의 몸과 발만을 프레임에 담는데, 아침에 보았던 시체와는 달리, 온 마음이 내려앉는 표정을 짓는 소피의 얼굴을 통해서 그날의 처참함을 짐작하게 한다. 소피는 순순히 맘부르의 지시에 따라, B를 부르기 위해 집을 나선다. 맘부르와 B는 시신에 묶여있는 밧줄을 풀러야 한다.

두구의 시체를 보고 있는 맘부르와 B.<출처.어 퍼펙트>

문제가 자연적으로 해결되다.


우물 속에 있는 시체를 다시 동여매어 들어 올리 던 중, 우물가에 UN군대가 등장하여 맘부르 팀의 작업을 중지시킨다. 세 번째 우물의 빠른 지원 요청을 위해 전날 군 회의에서 거짓말을 한 소피의 안건이 화근이 된 것이다. 맘부르 팀은 고생했던 시간을 뒤로 한채, 진행을 중단한다. 어렵게 구한 밧줄이 잘리고 시체는 우물 속으로 다시 떨어진다. 군이 떠나고 팀원들은 덤덤히 서로를 위로한다. 영화의 도입부터 가장 이성적으로 모든 일을 응대해왔던 맘부르는 우연히 눈앞에서 일어나는 불의를 보고 짜증과 분노를 폭발해 보기도 하지만, 곧 다시 체념한 맘부루의 차량은 군의 새로운 임무를 전달받고 베이스 기지로 향한다. 그리고 이런 날 비가 내리면 골치 아플 거라고 말하는 B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비는 베이스캠프에 골칫거리를 안겨주고 시체가 있는 우물가엔 희소식을 가져다준다. 마치, 신이 네가 아니어도 세상은 돌아간다는 것을 말하는 것처럼, 비는 더욱 세차게 쏟아지고 알바니아 마을 사람들의 기합소리와 함께 영화가 끝난다.


영화 로케이션과 전쟁이라는 소재가 두드러져 보이는 것을 느낄 뿐, 이 영화는 엄밀히 말하면 전쟁영화가 아니다. 전쟁의 역할은 다만, 인간의 본질적인 면을 들여다보기 위한 장치이다. <어 퍼펙트 데이>는 매일을 사는 사람들의 난관과 노력 그리고 죽음과 삶이 혼재되어 있는 영화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이념때문에 투쟁하고 화해하기를 반복한다. 죽은 사람은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산 사람은 계속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영웅적인 모습은 허상이고 각자의 위치에서 책임을 다할 뿐이다. 그래서인지 그 삶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 간의 농담은 숭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것이 삶이라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내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얼마전, 할머니의 상을 치룬 이후로 계속 질문해왔던 물음표와 다짐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브런치에서 주관하는 무비 패스를 이용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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