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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Feb 08. 2018

작가로 태어난 고흐.

<러빙 빈센트, 2017>,<반고흐 영혼의 편지>

고흐가 즐겨 쓰는 에메랄드 색감의 반사광이 인물의 얼굴 속에서 빛의 방향에 따라 즐겁게 요동치는 것을 보고 있으니 평일 동안 채워졌던 긴장의 단추가 투둑 풀어졌다. 저 영화 속 그림이 되고 고흐의 붓 자국이 되고 싶다고 계속 속으로 되뇌었다.


고흐를 부랑자가 아닌 예술가로서 존중했던 우체부 조셉 룰렝은 아들인 아를망 룰렝에게 고흐의 마지막 편지를 부탁하게 된다. <러빙 빈센트>는 아들인 아를망이 그 마지막 편지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고흐의 인생과 죽음에 대해 알아가는 영화다.

<러빙빈센트,2017> 조셉 룰렝과 아를망 룰렝.  


고흐에 대한 선입관.

고흐에 대한 개인적인 배경지식은 세 가지다. 첫째, 생전에 주목받지 않은 화가라는 것. 둘째, 일상의 안정을 꽤 하기보다는 그림에 모든 것을 바쳤다는 것. 그리고 셋째,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를 본 며칠 뒤,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가 주고받은 서신을 모아놓은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구입했다. 감독이 보는 고흐가 아니라 자의적으로 고흐를 해석하고 싶어 졌다.


고흐에 대한 새로운 시선.

고흐는 5년 동안 4번의 진로를 바꾸고 모든 것을 뒤로하고 그림을 시작한지 9년이 지나 세상에 막 주목받기 시작하던 화가였다. 현대 시대에 10년, 20년 무명을 보내고 대중에게 알려지는 배우가 되는 것처럼, 그러한 수순을 밟아오고 있던 무렵에 고흐는 유명을 달리하게 됐다. 시대를 아우르는 그림을 그린 고흐의 그림이 생전에 전혀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소문은 다소 와전된 경향이 있었다.


고흐의 숙명.

고흐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른 기질을 갖고 태어났다. 그의 눈과 감수성은 섬세하여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까지 보고 느꼈다. 베토벤은 일반인들이 듣지 못하는 음역대를 들을 정도록 예민한 귀를 갖게 되어 어린 시절부터 시끄럽고 괴로운 시간들을 가졌었다고 한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다름'을 갖고 태어난 것이다. 고흐는 자신의 기질을 수용하며 살아야 하는 운명을 버거워했지만,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화폭에 담아내는 숙명을 받아들였다. 그림에 모든 것을 바쳤다는 것은 과연 자의적이라는 표현이 맞았을까. 그에게 있어 그림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대안책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소한 행동과 상황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그에게, 매 순간 타인과 타협하고 인내해야 하는 사회생활이 버거웠을지도 모른다. 무직 상태로 오랜 시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안목 있는 몇몇 사람들로부터 받은 찬사는 고흐에게 메마른 땅의 단비였을 것이다.


<러빙 빈센트,2017>탕기 영감.
이처럼 우리 두 사람은 현상의 배후에 숨어있는 것을 찾아내기 좋아한다. 달리 말하면 사물을 분석하는 경향이 강한 것이지.(..)어느 정도까지는 기질과 성격이 우리를 이끌어 주는지도 모르겠다. (..) 우리로 하여금 평범한 아이들보다 더 많이 생각하게끔 만들어주었으니까. 1882년 10월 22일. <반 고흐 영혼의 편지>


고흐는 자신을 이해하고 인정해주는 사람들에게 온 마음을 내어 주고 그들의 행동과 의견에 집착하고 거부당하면 절망하였다. 고갱이 떠난 뒤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귀를 자른 고흐는 사람들로부터 가난한 화가에서 정신병자라는 꼬리표를 달게 되었다. 고흐가 요양원에서 회복기를 거치게 될 즘, 미술계는 고흐의 그림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치료를 위해, 닥터 가셰를 만나게 되고 내성적이고 지적인 닥터 가셰의 딸 마그리트와 교제를 하게 된다. 하지만, 마그리트의 갑작스러운 이별통보를 시작으로 고흐의 인생은 다시 내리막길로 향한다. 테오 그리고 닥터 가셰와 언쟁을 나눈 시점에서 고흐는 밀밭에서 총상을 입게 되고 머물고 있던 여인숙에 돌아와 치료를 거부한 채 숨을 거둔다.

Vincent  Van Gogh,1890, 고흐가 마지막으로 사랑한 여자. 마그리트 가셰.

작가에게 있어 먹고사는 문제란.

고흐처럼, 몇 번의 직장생활 속에서 환멸을 느끼고 주변 사람들의 힐난을 고스란히 들으며 가족들의 지원을 받거나 크라우드 펀딩을 받으며 예술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적지 않게 있다.


예술가들은 남들보다 더 많은 음, 더 많은 색감, 그리고 시상이 떠올라 작가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다. 추구하는 작업의 방향에 따라 작가의 재능이 여무는 시기 그리고 작업물이 세상에 조명받는 시기는 각기 다르다. 그래서 하나의 잣대로 예술가들의 능력과 자질을 평가할 수는 없다. 또한 예술 작업은 먹고사는 일만큼 강한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요하는 길이기 때문에 자신의 삶의 우선순위에 따라, 재능이 여무는 시기는 느려질 수도, 포기될 수 도 있다. 삶은 기회비용적이니까. 고흐는 아침에 미술도구를 들고나가 저녁이 다되어 들어오는 직장인과 같이 규칙적으로 그림을 그려왔다.

네가 화가가 된다면 놀라게 될 일 가운데 하나는 그림을 그리는 일, 그리고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물리적인 의미에서 아주 힘든 작업이라는 점이다. 1882년. 그러나 예술적 감수성이 작업을 통해 계발되고 성숙하게 되는 것은 훨씬 더 뒤의 일이 아닐까. 1882년 10월 22일. 재능은 오랜 인내로 생겨나고, 창의성은 강한 의지와 충실한 관찰을 통한 노력으로 생긴다 라는 플로베르의 말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 쓰고 있다. 1888년 3월.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주말에 책, 전시회, 그림 작업 등 문화생활을 과다 복용하고 다시 월요일을 맞이한다. 감정 없이 건강을 위해 홍삼을 마시고 차가운 냉동 블루베리를 혀에 한동안 녹였다 잘근잘근 씹어먹는다. 출근하기 전 근처 커피숖에서 곧 풀가동될 뇌를 달래기 위해 10분정도 커피를 마시며 멍을 때리고 일어선다. 성실히 일을 마감하고 집에 돌아오면, 불편해진 마음 근육이 있는 곳은 글을 쓰며, 스트레칭하고 밥을 먹고 그림을 그린다. 고흐의 그림을 모사해본 적이 있다. 모사를 하게 되면, 그 작가의 기분과 호흡을 느끼게 된다. 영접하는 느낌이랄까. 붓질을 서툴게 하면, 그게아니라고 말하고 땀흘려 다 그려놓고 실수한 느낌이 들면 뒤에서 헤벌쭉 웃고 있는 기분이었다. 과정동안,즐거웠고 겸손해졌고 곧 그를 경외하게 되었다. 영화 <러빙 빈센트>는 그의 그림을 짝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선물이다.


Vincent Van Gogh, 1890 Bequest Mary E. John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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