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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Aug 25. 2024

혼자여도 괜찮을까?

20대에는 영화와 커피만 있으면 평생 외롭지 않을 것 같았다. 언제든 부를 수 있는 친구들도 있었고 혼자 있는 시간도 좋았다. 30이 넘어가고 친구들과 하나 둘 멀어진 자리에 조카들이 태어났다. 조카들과 지내는 시간도 많았고 여전히 혼자라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다.


인터넷에 혼자 잘 지내는 사람이 연애할 때도 잘한다라는 말이 자주 떠돌았다. 그 말에 약간의 뿌듯함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다. 한 사람의 생각이 인디자인으로 잘 포장됐을 뿐인데 위대한 철학자가 한 말인 양 그 말에 기대어 우쭐했다. 40을 바라보는 시기가 됐다. 영화에 흥미를 잃은 지는 오래다.


커피는 여전히 좋은 친구지만 영화에서 더 이상 전우애를 느낄 수 없듯이 커피도 언젠가 그렇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사실 혼자서도 잘해요라고 생각해 왔지만 난 계속 무언가에 의존해오고 있었다. 언제나 영원한 것은 없다. 가치관이 바뀌어 지금 영어강사가 된 마당에 왜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속단했을까. 당장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도 미래에 혹시 모를 외로움을 위해 불편한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주말마다 영어동호회를 나가고 있다. 영어에 욕심이 있다 보니 실력이 쌓이는 기분이 좋다. 나처럼 자주 나오는 사람들은 그룹을 리드한다. 모임장은 뭔가 건조하면서도 정이 많은 사람이다. 멤버들이 의견을 제시하면 이견없이 수용하되 사람들이 실낱같은 규칙을 어기면 강퇴시킨다.


골드미스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50대인 엄정화 배우님은 여전히 밝고 생기가 돈다. 나는 종착역에 다다른 기분인데 저렇게 빛이날 수 있다니.


파트타임으로 새로 추가해 나가는 학원 아이들이 너무 귀엽다. 얼굴에 그런 마음이 표가 났나 보다.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학원에 바로 오는데 아침부터 영어선생님 주려고 젤리랑 과자를 싸 오는 게 너무 기특하다.


나에 대해 매번 이것저것 질문하는 집 근처 카페사장님께 맛 좋은 월남쌈을 선물 받았다. 지난번에 여기 커피 한잔이 소중하다고 한 뒤로 경계심을 푸시고 잘해주신다.


처음 만났을 때 나에게 심한 말도 하고 째려보기 일쑤였던 중2남자아이를 가르친 지 2년째다. 지금은 내가 혼을 내도 웃는다. 이제 곧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정들었던 사람들과 이별을 잘해야겠다.


연애를 해서 온전히 기분이 좋았던 적도 없어서인지 연애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답답함’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말을 하는 ‘이전의 그’들 때문에 일상이 고역이었다. 가족을 갖고 싶은데 연애만이 능사일까. 인터넷이나 TV에서 돌아다니는 가족의 의미에 기대어 현실에 타협하는 선택을 해야 할까. 이 정도면 남편감으로 괜찮지. 이건 상대에게도 실례가 아닐까. 아마 앞으로 연애하게 될 사람은 신이 맺어준 인연이 않을까 싶다.


영어 모임에는 다양한 연령과 직군을 가진 사람이 온다. 낯을 가리다 보니 제일 초반에 만난 분과 말을 자주 하는데 9 정도 차이가 난다. 내가  번도 다녀보지 못한 회사 사정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듣는재밌다. 그밖에 회원들은 사업가, 금융권, 연구원, 건설, 웹툰작가  직업이 다양하다. 상대적으로 미혼이 많은데 결혼에 대한 화제는 흥미진진하다가도 결국 우울한 결말로 마무리된다.


암튼 어떻게든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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