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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Dec 01. 2019

매번 구린 선택을 하는 나에게

매기스 플랜, 2015.

힘들다. 힘들다. 카페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오디오 소리가 전방 20M 거리 안에 있어서 더 머리가 시끄러운데, 이 집 커피가 먹고 싶었고, 1층에 사람들은 너무 빽빽이 앉아 있어서 이 2층의 고요함을 포기할 수 없었다. 11월에는 대충 이렇다. 신입생이 6명이 입학하였고, (나는 미술학원을 운영 중이다.) 그로 인해, 어마어마한 상담을 많이 해서 목소리의 한 옥타브가 닳아 사라져 버린 것 같다. 조카들이 이민을 가기 한 달 전이어서 잠시 같이 거주 중인데, 둘 다 말이 너무 많아서 머리가 매일매일 웅웅 거린다. 분명 조카들을 다음 주에 보내고 나면 어느 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조카들의 냄새를 찾아 물건들을 끌어안고 울겠지만, 당장은 빨리 미국에 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름부터 시작했던 미술치료 공부의 막바지, 전문과 과정을 시험을 치렀다. 논문 한 개 요약, 치료 계획서 짜서 서술형 시험 보기, 객관식 등 하나도 안 집어준 교수님이 야속하여 아무런 감정도 없이 그냥 벼락치기로 밥만 먹고 공부만 하였다. 무언가 감정을 느껴버리면, 다 때려치울 거 같은 스트레스가 올 것 같아서 눈앞에 놓여있는 글자들만 달달달 외워서, 놀이치료 위니캇, 자기 대상 코헛, 버튼만 누르면 학자들 이름이 지금도 나온다. 날 성장시킨 멋진 교수님. 스파르타.



서론 글을 제법 재치 있게 썼지만, 오묘한 신경전들이 이 모든 일 안에 오고 가서 그 멘탈관리까지 합친다면, 11월은 인간승리의 달이었다. 10월에 영화 한 편과 소설책 한 권을 읽어두지 않았다면, 이 모든 먹고살기와 이상 실현의 투쟁 속에서 나는 살아남지 못 했을 거다. 주말을 조금이라도 누렸던 10월의 조용함, 낭만과 고찰의 분위기가 모든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해 준다. 10월에 봐 뒀던, 영화는 매기스 플렌(Maggie's Plan,2015)이다.

가이의 정자를 기증받고 인증사진을 남기는 매기와 가이. 출처. 메기스 플랜
예술학과에서 졸업하는 학생들을 기업과 연결시켜주는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주인공 매기는 젊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찾을 수 있도록 열과 성의를 다하는 순수한 영혼이다. 자신으로 인해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워졌으면 하는 인간사의 소명의식을 느끼는 그녀다. 그녀에게 하나의 소망이 있다면, 지난날 싱글맘이었던 엄마와 자신이 행복한 추억을 쌓으며 살아왔던 순간을 회상하며, 자식을 낳아 기르고 싶다는 꿈을 꾼다. 전부터 이상적인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 대학 동문 가이에게 찾아가 정자를 기증받기에 이른다.


얼마나 자기 자신의 일과 욕망에 대해 잘 들여다보고 있는지 나는 매기의 모든 행동들에 탄성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매기는 아이를 갖겠다는 자신의 욕구를 부인하지 않고 이를 바로 행동에 옮긴다. 자신의 현실과 이상을 포용할 수 있는 직업 또한 가진 부러운 친구다. 벌써부터 친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인터넷 기사로 성공한 창작자들의 배경을 조사해본다면 5중의 1명은 고아라고 한다. 갖다 붙인다면, 매기는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고아처럼 자라왔다. 인생을 예술장르로 창조하는 그녀의 진취성은 극으로 치다르면서 교묘하게 증폭된다.

수학과를 나온 가이에게 왜 공부를 그만두었냐는 물어보는 매기. 출처. 매기스 플랜


가이의 정자를 기증받는 시점에 매기는 소설가가 꿈인 유부남이자 인류학자 존과 운명처럼 만나 운명처럼 결혼하게 된다. 그를 마녀 같은 아내의 손아귀에서 구해서 자신이 존의 소설을 출판시키려는 부푼 희망을 갖고 말이다.


하지만 매기는 결혼은 인생의 고난을 같이 헤쳐나갈 동반자를 찾는 것이지 내가 돌볼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매기는 존의 결핍을 대신 채워주기 위해 결혼한 것이다. 자신의 투철한 직업 의식이 결혼에도 영향을 미쳐버린 것이다. 하지만 영리한 매기는 이 불편한 결혼 생활의 어깃장을 이해하자마자 존을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보내야겠다며 예술적인 이혼 서사극을 꾸민다.


그녀의 베스트 프렌드가 제발 남들처럼 평범하게 이혼하면 되지, 왜 이런 괴짜 같은 행동들을 하는지 소리를 지른다.

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매기와 딸. 출처. 매기스 플랜

매기처럼, 내 인생을 예술장르로 꾸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인생은 뭐랄까 부모님의 말에무의식적으로 의지해 성장해 온, 자유로운척 하지만 결국 말 잘 듣는 어른아이다. 모든지 되게 하라 새마을운동 세대이자 권위적인 베이비부머 세대에 에 양육되어온 IMF를 지켜보며 성장한, 87년생 김정원의 인생은 그렇다. 그래서 통계적으로 80년대생으로부터 자신의 진로에 대해 다시 고민해 보는 Gap year 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기사도 보았다. 20대는 엄마의 방법에 기대어, 30대 초반은 아빠의 방법에 기대어 살아오고 있다. 이 모든 것 또한 내 선택이었지만, 예술가들은 대성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모작을 한다. 사후에 작업실을 정리한다면, 대가의 작업을 모작한 작업이 수두룩히 나온다. "거인을 밟고 성장한다"라는 말처럼. 나는 이제 엄마 아빠라는 거인의 방법을 참작하는 것은 이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미술치료 공부의 시작은 과연 엄마 아빠의 말이 신빙성이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왜냐면 내 마음이 아프고 공허했기 때문이다.



몇 주 전에 전문과 과정을 패스하기 위해 논문을 요약했다. 쉼터에 살고 있는 청소년을 미술 치료한 논문이었다. 그 논문이 유독 눈에 끌렸다. 내가 20대 후반에 깨달았던 사항을 쉼터에서 운이 좋게도 좋은 치료사와 좋은 어른들을 만나 20의 여자아이는 인생의 한 단면을 일찍 깨달았다. 좋은 멘토들 덕분이었다. 나의 20대는 이러하였다. 체력도 안돼면서 한꺼번에, 다양한 일들을 같이 준비하였다. 불안한 미래 때문에 이것저것 벌려놓은 것이다. 이러한 방법이 맞는 분들을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기도 하였다. 우리 엄마 또한 그러한 방법으로 성취의 단맛 또한 맛보기도 했다. 그러다 사단이 났다. 항상 긴장되고 피로한 근육 때문에 자주 허리를 다쳤다. 나에게 어울리는 방법이 아니었던 것이다. 덕분에 인생의 엄청난 침체기를 갖기도 하였고 미술치료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되었다. 지금은, 덕분에 반 카이로 프락터가 되어, 뭔가 근육이 경직됐다 싶으면, 알아서 스트레칭하고 뼈를 교정하고 주기적으로 몸의 균형을 돕는 체조를 한다. 가족 중에서 허리 삐끗한 사람이 있다면 교정도 해준다. 예전에 미술학원 학생이 목에 담이 걸려서 지압으로 풀어주기도 하였다. 허리 아프신 분들께 꼭 말해주고 싶은 것은 수술하지 말고 교정받으시라는 것이다.


인스타그램 유저들은 지난날 싸이월드의 잔재처럼 자신이 힘들고 고생한 것을 많이 글로 남긴다. 그리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2012) 10월에 읽게 된 이후론, 사람의 인생은 결국엔 자신이 선택해야 하는 것을 느낀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 누군가의 조언에 기대어 10년 20년을 살아왔더라도 그로 인해 얻은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그 안에 분명 이유 없는 선 택또 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 시간을 0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지금 내가 앞으로 하는 선택이 구리면 어떻나. 내가 아는 사실은 전보다 나은 선택일 것이라는 낙관성 그리고 나는 또 그 구린 선택을 통해 무언가를 얻었으리라.

우연히 마주친 매기와 가이. 출처. 매기스 플랜

미술치료에서는 내담자의 보호자에게 브리핑을 할 때 이런 말을 한다. 어머님, 치료과정 중에서 분명 기복은 있지만, 처음 방문한 시점으로,  0으로 돌아가진 않습니다. 변화는 있습니다. 나아지고 있습니다.


나는 미술치료를 통해서 알았다. 나는 MBTI test에서 INFP다. 완벽주의면서도 자유롭다. 이상적이다.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어 하는 소명의식이 있다. 하나의 분야만 깊이 공부하는 것이 좋다. 공상적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유지하기 위해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이 필요하다.

존과 전부인. 출처. 매기스 플랜.  


한 번의 결혼으로 매기는 알았다. 정자를 기증받았던 가이를 굳이 선택했던 이유를. 가정보다는 사업에만 매진하고 싶었던 가이는 알았을 것이다. 우연히 길에서 매기의 품에 안긴 자신의 딸을 만나고 자신이 믿어왔던것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존은 알았을 것이다.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 아는 마녀 같은 전 부인이 항상 길만 잃는 우유부단한 자신에게 이정표라는 것을. 존의 전부 인은 알았을 것이다. 자신의 성취욕과 이기적인 행보에 자격지심을 느끼지 않는 지성인은 자신의 전남편 존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바보 같지만 어쩔  없는 선택을 통해  나은 선택을 한다. 모두 말도  되는 선택을 멈추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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