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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Jun 23. 2020

현실을 사는 법.

<브로큰 플라워2005>짐자무쉬

주인공 돈에게 핑크색 편지가 도착했다. 20년 전, 당신의 아이를 임신 했었어요. 그리고 지금 그 아이가 당신을 찾아 떠났어요. 20대의 나는 <브로큰 플라워>의 핑크색 색감만을 쫓으며, 핑크색 단서가 보여주는 대로 따라갔다. 고양이가 나비를 쫓듯, 나비가 꿀을 쫓듯, 새초롬한 핑크색을 쫓아 핑크색 단서만을 쫓아 움직이는 주인공처럼.


핑크색 단서 중 하나인 타자기.


IT 사업으로 꽤 수입을 번 돈은 중년의 나이에 일찍 무료한 백수가 되었다. 고요했던 일상을 누군가 시기라도 하듯 하루아침에, 돈은  핑크색 슈트를 입은 미모의 여자 친구로부터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고, 의문의 핑크색 편지를 받는다. 편지 내용엔, 20년 전, 여자 친구가 자신이 돈의 아이를 가졌지만, 헤어질 때 말하지 않았고, 남자아이를 길러왔다는 내용이 타이핑되었다. 물론 편지의 여성은 신원을 밝히지 않았다. 돈은 의문의 핑크색 편지를 갖고 20년 전 만났던 여자 친구들을 한 명씩 만나게 되는 여정을 떠난다. 20년 전인데도 불구하고 5명이 넘어가는 순간, 주인공이 꽤나 여자들의 속을 썩였구나라는 것을  직감했다. 주인공은 옛 여자 친구들을 찾는 과정에서, 계속해서 핑크색 물건들을 발견한다. 핑크색 가운, 핑크색 명함, 핑크색 타자기 등. 하지만, 어떠한 확실한 단서도 찾지 못한 채 집에 돌아오게 된다.

20년전 편지를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옛 여자친구.


최근에 법륜스님 영상을 매일 한편씩 보고 있다. 자존감에 관련된 영상이다. 언젠가부터, 불안을 자주 느끼며, 초조하였고, 좀처럼 나아지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강사의 직분이었을 때는,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직장과 자아실현에 대한 분리가 잘 되었었는데, 운영자가 된 이후로는, 집에 와서도 일을 손에 놓을 수가 없었다. 불안할 때마다, 일을 하였고 그것만이 불안을 잠재웠다. 1년 반이 지나오는 지금, 심리상담사인 지인에게 심리적 도움도 받고, 미술치료 자격증도 업그레이드시키며 나의 마음가짐을 위해 공을 많이 들였다. 근래에는, 자존감 관련 영상으로, 법륜스님의 영상을 중심으로, Higher Self, 오마르의 삶을 시청하고 있다.


우리는 전문적인 일을 위해, 매일같이 노력을 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의 마음을 위해서 매일같이 투자를 하지 않으면서, 고장  마음이 빨리 작동되기를 바란다. 고장 난 마음을 들여다보려면 우선 하루 중 자기만의 온전한 시간이 있어야 한다. 30분이라도 온전히 자기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매일같이 갖는 것부터 시작되야한다. 여기서부터 긍정적인 신호를 갖는다. 변할 수 있다는. 변화를 느꼈다면,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작은 습관들을 더해본다. 그렇게 3주,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나면, 내가 기존에, 머리로, 미래를 위해 계획했던 일들이 변동되고 다듬어진다. 내가 실제로 행한 작은 시간들이 모여, 정체성으로 굳혀진다. 전 여자 친구들의 삶을 순회하고 돌아온 돈에게 무슨 변화가 찾아왔을까.

20년 전 여자친구의 남편과 함께 식사하는 돈.

돈은 집에 돌아와 다시 무료한 일상을 보낸다.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동네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존재할지도 모르는 아들의 환상에 집착한다. 그리고 지나가는 아들로 의심되는 젊은 여행자에게 먹을 것과 음료를 사주며 삶에 대해 이렇게 조언한다. 과거의 미련과 미래에 대한 환상에 머물러있지 말고 현재에 머물러야 한다. 본인은 따르지 않는 멋진 말을 고고하게 읊는다. 법륜스님은 "땅에 뿌리내린 풀을 보라고 하신다" 땅에 뿌리내리고 있는.  순간 현존함을 느끼는 . 휴일에도 많은 생각으로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게 지금 내가 눈앞에 하고 있는 것들을 알려준다. "하늘을 본다", "음식을 먹는다", "걷는다". 주문처럼, 내가 현재 하고 있는 것을 반복해서 생각한다면, 시끄러운 생각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춘다. 그렇게 안개가 걷히고 나니 오랜 시간  원인도 몰라 애태웠던 불안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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