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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Jul 31. 2017

헛발질도 해 봐야 ‘내’가 보인다.

<Laggies> 2014.

<레기스>의 29살 메간은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금지옥엽 외동딸이다. 심리상담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공과 상관없는 단기 알바를 한다. 그녀의 곁엔, 고등학교 때부터 사귀어온 남자 친구와 친구들이 있다. 언젠가부터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편하지 않던 차에 남자 친구가 자신에게 청혼을 하는데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이유를 찾기 위해 사랑하는 가족, 친구, 남자 친구와 떨어져 자신이 유예해 왔던 질문과 고민들을 정리한다.


출처 Laggies 2014.

메간은 사람들과 진실한 대화를 하는 직업을 갖고 싶어 한다. 하지만, 중산층 가정에서 그을음 없이 자란 메간은, 첫 상담실습에서 상담자들의 고민과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심리 상담 일을 업으로 삼기 두려워한다.


출처 Laggies 2014.

4년전즘, 나는 20대의 대부분을 함께해 왔던 그룹에서 나오게 됐다. 여러 매체와 책을 통해, 자신의 삶을 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거치는 순차적인 관문인 것을 나중에 알았지만, 당시엔, 나조차도 황당한 내 결정을 믿을 수가 없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책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 주인공 다자키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사춘기 시절을 함께 지내온 친구들과  헤어지게 된 심리를 <레기스>처럼 잘 묘사했다.


내 20대는 극단적이었다. 밤을 새우고, 여러 일을 동시에 하고, 목표를 달성하면, 좀비가 된 몸을 다시 일으켜 다른  목표를 세웠다. 무리함의 반복에 언젠가부터 건강이 안 좋아졌다. '되고 싶은 나'를 위해 내 몸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을 계속해왔던 것 같다. 나에게 꼭 맞는 일도 아니면서 억척스럽게 일상을 주도하며 행복이 아닌 희열을 느꼈다.


메간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고민을 정면으로 직시하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곳에서 침잠할 수 도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급박한 상황이었다.


메간은 집을 떠난 동안 한 십 대 소녀 아니카를 만나며 청소년과 공감을 잘 형성한다는 걸 알게 된다. 짧은 방황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남자 친구에게 청혼반지를 돌려주고 어린 시절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되고 싶은 나'가 아니라, '나의 본성'에 대해서 질문을 하기 시작할 때 즘, 20대를 함께해 온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되고 싶은 나’란 무엇일까?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 비롯된 하나의 선입견일 것이다. 이 정도의 직업과 성격이라면 사회에서 인정받고 살 거라는 생각이다.

메간이 짧은 방황을 통해 자신이 특정 연령층에게 편안함을 느끼고 공감을 잘한다는  발견했듯이 내향인인 내가 외향인이 하는 행동을 하고 직업을 가지려고  있다는  발견했다.  괴리감무의식 중에 매일같이 느꼈기에 일상이  버거웠다.


정원 씨, 조각미술은 체력적으로 힘든 작업이에요. 남자들도 힘들어해요. 그렇다고 정원 씨가 결과가 안 나오는 것은 아니에요. 결과가 잘 나와요. 그런데, 이거 평생 계속할 수 있겠어요. 한 학기 반짝하고 끝낼 거 아니잖아요. -2012년도 겨울, 학교에서 Jin 교수님이 부상을 당한 나에게 했던 말.  
출처 Laggies 2014.

 20대를 추억하면, 그 친구들을 항상 떠올린다. 오랜 시간 추억을 함께 해왔기 때문에, 부모님은 아직도 그 친구들의 이름을 물어보며 잘 지내냐고 종종 물어본다. 멋있고 강단 있는 친구들이어서 각자의 길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것만 어렴풋이 알고 있다. <레기스>의 여주인공 또한, 너무나 소중한 추억들을 함께해 왔기 때문에, 남자 친구와 친구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힘들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벗어나야만 했다. 소진되고 침잠해서 '나'가 없어질 정도로 다급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나에게 물어본다. 너 이거 매일 할 수 있겠어? 왜 또 체 할 거 같아? 이렇게 정신부터 건강까지 질문한다. 체할 것 같은 기분은 나에게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무작정 달리고 있다는 경고신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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