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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May 19. 2017

댄서 세르게이 폴루닌의 파랑새.

그렇게 찾아 해 매던 <파랑새>는, 항상 그의 곁에 있었다.


초등학교때, 학교에서 더 이상 일기를 쓰게 하지 않자, 4학년 무렵부터는 공책에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천계영 저의 <오디션>이란 만화를 따라 그리길 좋아했고, 그것을 응용해서 나만의 아이돌 그룹을 만들어 그리기도 했다. 학교 클럽활동시간엔, 현대무용 수업을 수강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박자 감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용반 선생님께 자주 핍박을 받았지만, 그것조차 무시할 만큼, 그곳에 있는 것이 좋았다. 결국 시에서 열리는 무용 단체전까지 참가하였다. 무용학원에 보내달라고 엄마에게 조르곤 했는데, 엄마는 알았을 것이다. 자신의 딸이 박자 감각이 없다는 것을. 그런데 결국 클럽활동까지 참가해 대회에 자신을 초대한 둘째 딸이 엄마는 재밌었을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 예술 애호는 여기서 그치지 않지만, 큰 분류로, 클래식 음악, 무용, 시, 그림에 매혹되어 정신을 못 차리곤 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 매혹적인 예술들을 그림책에 담아내고 싶어하는 어른이 되었다.


<댄서>는 한 젊은 발레리노의 지나온 경력과 삶을 보여주는 영화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89년생, 발레리노 세르게이 폴루닌은, 19살의 나이에, 영국 로열발레단의 최연소 수석 무용수가 된다. 그리고 약물 복용, 리허설 취소, 상반신을 뒤덮은 문신 등 가십의 중심에서, 자아정체성에 대한 혼돈의 시기를 겪는다.  입단 2년 후, 그는 발레에 대한 새로운 동기부여를 위해, 탈단한다.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나이에 가족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발레를 시작하였다.
부모님의 이혼은 나에게 충격적이었다. 발레에 대한 모든 이유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나를 속박한다.


가십을 몰고 다녔던 세르게이는 신뢰성을 이유로 미국 발레단으로부터 입단을 거절당하고, 러시아로 향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객원무용수부터 다시 시작한 그는 정상의 자리에 다시 오른다. 그리고 29살,  돌연 은퇴를 선언. 하와이 마우이 섬에서 <Take Me to Church> 곡에 맞춘 그의 은퇴 공연은 유튜브에서 1,900만의 조 횟수를 기록한다.


https://youtu.be/c-tW0 CkvdDI

세르게이 폴루닌 주연. <Take Me to Church> by Hozier.Directed by David LaChapelle.


발레는 온몸의 근육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작업이다. 공중에 부양하는 그 1-2초의 희열을 위해 그렇게 계속해서 나를 괴롭혀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무엇을 위해, 발레를 하는지 물어보아야 했다.

세르게이 폴루닌은, 자신과 같은 프리랜서 댄서들을 위한, 단체 <프로젝트 폴루닌>을 설립하여, 패션, 영화, 음악 등 다른 예술 산업과 무용수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비중 있는 조연 및 무용수 루돌프 누레예프 (1938~1993)의 전기 영화 작업의 주연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는 발레를 좋아하였지만, 동시에 소속되고 싶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학비지원을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는 가족들의 그림자는 그의 무언가를 항상 억눌러왔다. 그는 이제야, 어렸을 때, 음악에 몸을 맡기고 자유롭게 막춤을 추던 소년이 되었다.


세르게이의 경이로운 업적과 나의 커리어는 비할바가 못된다. 다만, 이 영화를 기점으로, 내 뇌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나의 어린 시절을 넘나들고 있었다. 그림책을 시작하고 깨달았다. 어렸을 때, 무턱대고, 몰두했던 소재들을 책에 담아내려 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의 몸과 시, 그리고 클래식 음악의 선율. 이 소재들을 실현시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지만, 내가 다시 어린 시절로 회귀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 영화였다.


모리스 마테를링크 각본의 <파랑새> 이야기가 생각난다. 꿈속에서 아픈 딸을 위해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달라는 요술쟁이 할머니의 부탁을 받고 길을 떠나는 남매가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니고 결국 파랑새를 찾는 데 실패한다. 기나긴 꿈속 여행을 끝내고 잠에서 깨어난 남매는 파랑새가 자신들의 새장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늘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동화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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