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 종료.
드라마 <영혼 수선공>에서 마음 아픔을 치료하는 의사는 환자보다 더 마음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육자인 나는 성장통을 세게 겪어서인지 교육자가 되었나 이런 생각을 넌지시 해봤다.
학원에 몸에 열이 많은 사랑스러운 여자아이가 있다. 초겨울에도 덥다고 선풍기 키고 잔다고 하는데, 열이 많아서 손을 잡으면 뜨듯하다. 수업이 끝나고 나를 꼭 안아줬는데, 내 마음까지 따뜻하게 감싸주는 것 같았다. 어머님이 직접 집에서 만드셨다는 감귤잼을 받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인사를 했는데, 뒤를 돌아서자마자 왈칵 눈물이 나버려서, 계속 얼굴을 숙이고 있었다. 아직 수업 중인 우리 학생한테 들킬 뻔했다. 감귤잼이 담긴 쇼핑백 속에 어머님이 쓰신 편지까지 읽었는데, 응원글과 함께 꼭 다시 개원하시면 연락 주시라고 적혀있었다.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버렸다. 휴지로 계속 눈을 막아보아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2년 동안 참은 눈물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금요일이고 시계는 6시를 가리켰다. 미술 선생님 이런 모습 처음 봐서 놀랐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제법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학생이 내가 우는 모습을 보고 집에 도착하고 이상스레 자기도 울어버렸다고 토요일 수업 중간에 말한다. "슬펐어요."
학원을 운영했던 어느 순간보다 더 진심을 담아서, 더 꼼꼼히, 준비해, 작별인사 편지를 쓰고 사진을 현상해 가정으로 보내드렸다. 아이들 한 명의 한 명의 개성과 장점을 적어서.
아이들이 집에서 내가 써준 편지와 사진을 보고 좋아하기도, 나처럼 울기도 많이 해서 다시 답장을 준다며 갑자기 학원에 와서 편지랑 선물을 주고 갔다. 쑥스러워하는지 선생님 얼굴만 계속 보고 쭈뼛거린다. 친구 집에서 하루 종일 놀다가 집에 와서 편지를 읽고 하염없이 울었다는 어머님 톡을 확인하고 나도 일끝 내고 액션 영화 보며 긴장을 풀고 있다가 엎드려 울어버렸다.
부모님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다 보니, 서로 하지 않은 속 얘기도 나누었고 학원 외부 이미지를 허심탄회하게 이제야 듣게 되었다. 1년을 등원했던 자녀를 두셨던 분이셨다. 3년을 더 보낼 계획이셨다. 미술뿐 아니라, 인성 또한 다루어지는 부분이 좋았다고 하셨다. 미술을 하면 아무래도 홀로 작업하게끔 지도하기 때문에 자신의 습관과 행동에 대해 많이 다루어지게 되는데 그 부분이 좋으셨던 같다.. 국영수 보내기 바쁜 고학년 자녀를 다니게 하셨던 분은 미술을 배우는 것 보다도 어떤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내느냐가 좋았기 때문에 미술을 통해서 나와 나누었던 대화와 공간의 분위기가 좋으셨다고 했다. 먼저 물어봐야 자기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이 의외로 집에서는 미술학원 이야기를 자주 한다는 이야기는 듣게 되면서도 무슨 말을 했을까 상상이 잘 안된다. 무슨 말이었을까. 많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이 공간이 한 주에 한번 자녀에게 힐링을 하는 공간이었다고 하셨다. 홈스쿨을 하게 돼시면 꼭 알려달라고 하셨다. 아이의 관심사를 잘 다루어주시고 가꾸어주셨다는 말씀. 그리고 한 번만 안아보자고 하시며 수고했다고 꼭 안아주셨던 어머님들. 장문의 카톡글. "아이도 그 공간에서 성장했고, 선생님도 또 같이 성장하셨을 것 같아요." "선생님 고생하셨어요. 우리 아이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저는 꼭 다시 뵙고 싶은데, 선생님 왠지 안 하실 것 같아요.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그래도 다시 하시면 꼭 연락 주세요."
학원 운영하며 어렴풋이 느끼곤 했다. 시각적으로 보이는 학원 동네에서 딱 3곳만 거치고 내 학원으로 오면 되는 줄 알았는데, 차량, 홈스쿨 합치면 사방이 프랜차이즈 미술학원이었다. 그 많은 것들을 지나 우리 학원으로 오셨구나.. 학원의 가치관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교육자로서는 최선을 다했는데, 운영자로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느낌은 한 구석에 있었다. 조금 더 홍보하고, 조금 더 과감하게, 직원분을 고용해서, 성인 취미미술 등을 고려해보아도 좋았겠다는 것은 마음속 한편에 있었다. 코로나전부터 고등부부터 성인 미술 수업 요청이 적지 않았는데, 수업 오픈을 하지 않았다.
코로나전에 기반을 잡았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은 하게 된다. 기반을 좀 일찍 잡았더라면 나는 지금 운영을 종료했을까? 학생들은 수강한 학원은 계속 다니지만 새로운 학원에 신규 등록하는 것은 꺼려지는 시기이다. 새로운 프로그램 수업을 섣불리 못한 것은, 몸이 지치기도 했고, 운영을 하며 나 자신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운영전, 누군가 정해놓은 세계관에 타협할 수 없다면 내가 공간을 기획하고 싶었다. 수업을 끝내고, 집에서 내 그림을 그리며, 살 고 싶었다. 그런데, 이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운영 공간을 또 다른 나의 분신처럼, 매일같이 가꾸고 정리해야 한다. 내 그림에 들이는 시간은 줄어든다. 학원은 교육청의 통제를 열심히 받고, 나라에 일 년에 한 번 소득세, 사업자 현황 신고를 하고, 연합회에 일 년에 한 번씩 강사 연수를 받으러 나간다. 그 밖의 예기치 못한 상황을 해결하고 매년 바뀌는 행정변동에 적응하고 서류를 준비한다. 나만큼 바쁜 것 같은 아이들 또한 여러 개의 학원을 다니기 때문에 계속 변동되는 스케줄 톡을 오전, 오후, 저녁, 주말 신경 쓰고 해결한다면, 집에 오면 녹초가 되어, 계속 유투 부만 보게 된다. 가끔 수업이 느슨한 날에 그림을 그리곤 한다. 강사 시절에는, 아무리 녹초가 되어도 수업 끝나고 내 그림을 그렸는데, 내 공간이다 보니, 수업이 끝나면, 일과 분리가 되기 어려워 쉽게 개인작업을 할 수 없었다.
2020년 3월에 대기자가 6명이 있었다. 연초에 등원해야 했던 신입생들은 5월에서 7월 사이에 조금씩 등원하고, 등원 못하신 분들은 아예 연락이 없으시거나, 1년째, 연락만 주시다가 결국 못 뵌 분도 계신다. 코로나가 꽤 참 올해 질겼다. 인천 학원강사 뉴스가 나고 5명에서 6명 정도 정말 미안해하시며, 학원을 나가신 분들도 계셨다. 다시 가을부터, 신입생과 함께 재등록이 연속으로 이어지고, 인원이 회복됐다. 연말에는, 코로나를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분위기가 생길 즘, 어머님들께서 그룹을 짜서 등록하려는 친구들이 적지 않았지만, 미술학원은 11월을 마지막으로 운영을 중단하기로 하였다. 이주일 내내, 폐업한다는 소식을 한 분 한 분 직접 말씀드리다 보니, 잠도 못 자고, 눈에 실핏줄이 터질 것 같았다. 진이 다 빠졌다. 강사 시절, 학원을 나올 때 헤어지는 인사보다 상상도 못 할 정도로 힘들고 지금도 힘들다.
운영은 .. 강사 일과 성격이 달랐다. 강사는 ‘나’에서 일을 마무리지을 수 있지만, 운영은 가족들 도움이든, 커뮤니티 등 주변의 도움 없이는 운영하기 힘들다. 아무래도 최종 결정권이 있는 사람이 나이기 때문에, 나의 선택에 의해 모든 것이 좌지우지된다. 그래서 그것이 과연 옮은 결정일까를 생각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학원 이미지와 재정적인 부분을 항상 고려해야하기 때문이다. 미술학원경영 관련 네이버 카페에서 관련 종사자분들의 의견을 최대한으로 수렴한다. 계속해서 동네 원장님들께 SOS를 칠 수 없으니.. 미술학원인 만큼, 작은 이벤트들이 많아, 소소하게 가족들 도움이 종종 필요하다. 그리고 건물 관리인, 인테리어 업주 분들 등등 조율해야 하는 사항들이 예측하지 못하는 시점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감사함을 많이 느꼈던 시간이기도 하고, 내 시야를 넓히는 계기도 되었지만, 계속 사람들과 함께 일을 벌이고 일을 마무리 짓는 시간들이 혼자 책 보고 그림 그리는 시간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맞지 않는 옷처럼 힘들었다. 큰 규모의 학원이어도 직원분들이 있음에도 주말이면 가족분들이 와서 대소사일을 도와주신다. 학원 일을 자기 일처럼 도와주시는 가족분이 계시면 정말 든든하다. 하지만, 나는 미혼이라, 내 일처럼 도와줄 수 있는 남편이 있는것도 아니었고, 각자의 일이 바쁜 가족구성원들의 특성과 남에게 잘 부탁 못하는 내 성격상, 계속 시간을 쪼개어 학원일을 도와주는 가족들에게 계속 미안해져갔다.
코로나가 안 터졌으면 내가 또 접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코로나라는 변수로 위에서 느꼈던 경우들이 더 배가 되었기 때문이다. 동네의 내향적인 성격의 원장님께서 십 년 넘게 미술학원 운영을 오랫동안 해오신 것을 보기도 하고, 사람의 성격에는 다양한 이면들이 많아서 내가 하는 말들이 정답은 아니며, 참고라는 점을 또 당부드리고 싶다. 창의 미술을 주제로 한 학원이었고, 일 년에 한 번 전시도 약속드린 학원이어서 이벤트 없이 그림 그리기 위주의 학원은 또 다를 것이라 생각된다.
운영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에게 정말 많은 변화가 생겼다.
1. 우선순위를 두고 일처리를 하는것이 몸에 습관화가 되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운영이 안된다. 해결해야 할 일들이 논스톱인데, 빨리빨리 일을 끝내 두어야 한다. 멍 때렸다간 실수한다. 물론, 강사시절에도 우선순위대로 일을 했지만, 집에 돌아오는 순간, 내가 개인적으로 성취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는 하고싶은대로 순위대로 일을 해나가서, 목표를 성취하는데 방해가 되었다. 그 시기엔 그것이 방해가되고 있는지 몰랐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어찌됐든 나는 내가 하고싶은 일을 매일 하긴 하잖아. 라는 생각에 도취되어 있었다. 막연한 희망과 기대를 갖고 내 개인적인 목표를 향해 가고있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강사일때, 업무환경은 이미 시스템이 정해져 있기때문에 그 안에서 내가 계획하고 일을 하면되지만, 나 스스로 무언가를 성취할때는 내가 성취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들을 온전히 내가 책임지고 만들어 가야하기때문에,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내가 이만큼은 노력을 해야한다는 '감'을 얻게 되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때 이정도는 해야 성취할 수 있다는 '감'.
2. 돈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사라졌다. 어렸을 때부터, 돈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다. 돈은 관계를 어지럽히고, 많은 돈을 버는 것은 언제나 불순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사람 저 사람 겪어보며, 선한 사람이 수익을 잘 내며, 또 그 수익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본 이후로 나의 세계관이 바뀌었다.
3. 미움받을 용기를 갖게 되었다. 핵심에 뛰어드려면, 갈등이 생긴다. 학원 운영은 언제나 줄다리기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예기치 못한 갈등도 있었다. 어떤 선택을 해서 어떤 미움을 받을지, 결정을 해야 했다.
4. 나와 어쩌면 같은 동년배, 또는 나이가 있으신 분들을 학부모님으로 뵙게 된다. 아이들의 스케줄을 조정하면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분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엿보게 되는데, 정말 열심히 일하신다.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자녀를 위해 사용하신다. 다양한 삶들을 직간접적으로 느껴보게 된다. 그 소중한 교육비를 받을 때마다, 항상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5. 아이들의 성향 파악을 깊이 있게 파악하기 위해 미술치료 전문가 과정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MBTI를 알게 되었고 연계되어 애니어그램까지 알게 되었는데, 아이들의 성향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난 왜 이러지? 난 뭘까?라는 물음표가 사라졌다. 그동안 내가 해왔던 선택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운영을 하며, 실무적인 부분은 간단하게 영상으로 만들어 올렸다. 운영자 세미나에 참여했을 때, 고객관리와 브랜드 가치관에 대해 설명을 많이 해주셨는데, 정말 중요한 이야기지만, 그 당시, 나는 개인 학원이고 정말 아는 게 없어서 정말 기초적인 것들이 궁금했었다. 사실, 이 기초적인 부분을 운영하기 전 먼저 알았다면, 운영을 애초에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