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내 몸은 내 편인 적 있었나

쫌쫌따리 생산일지: Serenade for Myself

by 정우안



성격이 급한 탓에 내 글은 두괄식이다. 본론으로 밀어닥친다. 그래서 내 몸은 내 편인 적 있었나?


Always. 항상. 근데 그걸 너만 몰랐지.


나와 내 몸은 언제나 전쟁 중이었다. 이 문장을 여자라면 이해한다. 내 몸을 조각조각 내어 평가할 수 있는 평가 기준이 세상에 만연하다. 그것들은 촘촘하게 나를 둘러싸고 있어서 찾아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습득한다. 이건 굉장한 저주다. 도저히 바꿀 수 없는 운명의 수레바퀴 아래 깔려버리는 것처럼 피할 수 없는 불행의 결말만이 예비된 저주.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의 각성을 부르는 대사처럼 내 몸은 언제나 내 편임을 깨닫게 되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랜 시간에 걸친 지지부진한 과정이다. 내 몸을 내가 미워하고 싫어하고 고치고 싶도록 만드는 세상의 속삭임이 촘촘하고 지독하고 만연한 만큼 내 몸과 진정 닿으려면 그만큼 성실한 과정이 필요하다. 짜증 나지만 내 경험으론 그랬다.


지지부진한 과정의 시작은 어느 시점을 딱 짚어 설명하기 어렵다. 다만 자발적이고 훌륭한 동기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건 확실하다.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마른 몸이 되고 싶었고, 늘씬한 팔다리를 갖고 싶었고, 그때 막 유행하기 시작하는 필라테스를 하는 여자이고 싶었다. 필라테스 1:1 수업은 그렇게 시작했다. 매우 비싸 성실하게 다녔다. 너무 비싸니까 빠지고 싶어도 돈 생각에 기어서라도 갔다. 내 몸을 미세하게 컨트롤하는 기쁨을 막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전신 거울 속 내 배를 체크했고, 나보다 더 마르고 키 큰 사람을 흘깃거리며 내 몸과 비교했다. 이후 요가, 러닝, 헬스, 다양한 운동을 했지만 내 마음가짐은 엇비슷했다. 사회 통념상 말라 길쭉한 ’ 예쁜 ‘ 몸을 원했던 게 가장 우선이었고 대외적 명분은 성실하게 운동하는 루틴으로 자기 효능감을 키운다였다. 주기적인 운동으로 자기 효능감을 키우고 나아가 자존감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므로 사람들이 운동을 왜 하느냐 물을 때 할만한 대답으로 아주 좋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운동 왜 하느냐 묻는 사람이 많았고 나는 그만큼 자주 대외적 명분으로 대답했다. 어느 순간 나는 내가 자신감을 키우기 위해 ’ 건강한 몸‘을 만드는 운동을 한다고 믿기 시작했다.


변곡점은 위기와 함께 찾아온다. 지금 와서 되짚어보면 변곡점은 두 번의 위기와 맞물려 찾아왔다. 첫 번째는 2022년 여름 화학적 유산으로 내 몸에 회복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이고, 두 번째는 스트레스로 게실염이 찾아왔을 때다. 첫 번째 화학적 유산은 의학적으로 유산으로 보지 않을 만큼 수정란이 초기에 몸 밖으로 배출되는 것을 일컫는다. 유산 후에 피검사로 특정 호르몬 수치가 완전히 떨어져야 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수치가 자연스럽게 떨어지지 않는다면 다른 의학적 조치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수치를 조정하기 위해 달리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저 내 몸이 다시 평소로 돌아가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날 나는 일기장에 내가 믿을 건 오로지 내 몸 밖에 없다고 적었다. 임신과 출산에 관해서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나와 나의 몸의 일이었다. 몇 주에 걸쳐 병원에서 피검사를 받았고 다시 몸이 평소로 돌아왔음을 알았을 때 나는 정말로 건강을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임신과 출산에 내가 가장 믿고 의지할 대상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몸이었다. 그리고 40주 임신기간과 출산과 회복의 경험으로 내 몸은 내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이자 아군이며 결코 싸울 대상이 아님을 확신했다.


두 번째 게실염은 욕심과 건강의 상관관계를 내게 직관적으로 알려줬다. 게실염은 대장에 튀어나온 주머니를 일컫는 게실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게실염에 걸렸을 때 나는 본능적으로 이건 병원에 가야 낫는 병이라는 걸 직감했다. 위가 아프면 아이고 아프다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대장이 아프면 이거 아주 예사 통증이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생전 처음 느끼는 불쾌한 종류의 통증이었다. 하필 게실염 증세가 시작된 그날 아이의 돌발진이 함께 시작되어 나는 아이 돌발진이 회복국면에 들어서기까지 사흘간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자기가 아픈 줄도 모른다고들 한다. 그거 다 개소리다. 나는 아이가 아픈 게 마음 아프면서도 동시에 힘들었고, 무엇보다 내가 아픈 것도 똑같이 느껴졌다. 그냥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아픈 걸 다 느끼고 힘들지만 찌그러져 참았다. 아이는 사흘 고열로 앓고 온몸에 발진이 난 끝에 사흘 후 컨디션을 회복했다. 나는 사흘 고통을 참았고 나흘 째 병원에서 게실염 진단을 받고 일주일 간 항생제를 떼려 넣으며 점차 회복했다. 그 기간 동안 몹시 다채로운 감정과 놀랍고도 흔해빠진 진리를 온몸으로 체감했다.


아프면 내 손해다.


몹시 중요하므로 한 번 더 적는다. 아프면 나만 손해다. 말도 못 할 통증에도 아이 돌봄이 마땅치 않아 입원 대신 매일 외래로 항생제를 링거로 맞았다. 세 종류의 항생제를 수액으로, 약으로 투여하니 소변 색이 짙어지고 구토와 미식거림이 심했다. 남편과 시가는 내 병에 안타까워했지만 아이가 열이 올라 온 몸에 붉게 올라온 두드러기에도 못지않은 안타까움을 표했다. 아이 돌봄을 돕지만 말 그대로 ’도울뿐‘이고 돌봄을 위해 내 회복을 기원했다. 그리고 외래 진료가 끝나자 아픈 나를 위한 ’배려’도 끝났고 원래대로, 평소대로 내가 아이를 빈틈없이 돌보고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랐다. 그리고 덧붙인다. 아이 키우는 일이 원래 그렇게 힘들다고. 유일하게 엄마는 자식 장기에 염증이 생겨 항생제를 그렇게 먹는다는 사실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나를 침대에 눕히고 아이를 ’대신‘ 돌보며 내가 침대에 누워 쉬기를 명령했다. 외래 진료가 끝난 다음 날에도 야채를 사 와 씻어주며 이제부터 식습관에 신경 쓰고 앞으로 좀 대충대충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피가 섞인 가족과 남편, 시가가 이렇게 다르다며 한탄하는 게 아니다. -그 시기는 오래전에 지났다.- 원래 사람은 이렇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거다. 사람이 응당 그래야 한다는 당위성을 앞세우며 이상적인 역할에 충실하길 바랐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실은 원래 불공평하고 부당하게 흘러간다. 원래 그러하다. 그저 욕심에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역할을 기대한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으니 타인도 내가 바라는 정도로 열심히 해주기를 바라는 나만의 역할 놀이는 게실염을 앓으며 끝을 맺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다는 건 타인에게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거니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도 몰랐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알리는 것 또한 허망한 노력이다. 하물며 타인도 내가 원하는 만큼 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얼마나 가당찮은 바람인가.


가당찮은 기대와 바람을 갖고 욕심 껏 이것도 저것도 다 잘해야 한다며 나를 몰아붙인 결말은 병이었다. 욕심이 내 몸을 망가뜨렸다. 그리고 병이 왔을 때 상황은 내가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나만 아프고 나만 서럽고 나만 손해였다. 얼마나 멍청한가. 내 몸 상하는 줄도 모르고 욕심만 부렸다. 욕심이 과하면 정말로 병이 온다는 걸 몸소 체험하고 나서야 욕심을 버렸다. 과한 배려, 지나친 선의, 과분한 공감, 이러면 알아줄 것이란 막연한 기대를 바탕으로 한 돌봄. 내 욕심의 구체적인 리스트다. 그리고 이걸 버리자 나 자신이 가장 우선순위가 되었다.


고칠만한 수준의 병은 그 사람에게 호재로 작용한다. 아이와 내가 아팠던 일주일은 지옥 같은 극기체험이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놀랍고도 흔해빠진 진리를 체득했다. 알았다는 말은 내 경험을 포괄할 수 없다. 그야말로 몸으로 느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게 바로 나 자신이라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세상 대부분의 예술, 음악, 책, 강연에서 외치는 love myself라는 메시지는 얼마나 흔해빠졌나 생각하면 새롭지도 않다. 그러나 이걸 온몸으로 체감하면 온 세상의 사랑노래가 모두 나를 향한 세레나데가 된다. 이건 나르시시시즘과 결이 다른 나를 향한 사랑이다. 남편? 아이? 다른 가족들? 그들은 나는 사랑하지만 나는 나를 더 사랑한다. 이 문장이 죄책감과 어색함으로 저항감이 느껴지지 않게 된다. 어떻게 아내가, 엄마가, 딸이, 며느리가 되어 그럴 수 있느냐고 말해도 아 그래서 내가 그 역할을 해내다 아파 나자빠지면 대신 아파줄 거냐 되물을 수 있을 정도의 자기 방어 의식이 생긴다. 그리고 놀랍게도 자유로움을 느낀다. 나를 옭아매던 온갖 불필요한 의무감에서 해방되는 자유로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내 몸은 내 편인 적 있었냐는 질문에 이제 대답한다. 항상. 내 마음조차 몸을 외면할 때 내 몸만큼은 나를 위해 죽어라고 뺑이쳤다. 그야말로 불필요한 노동, 돌봄, 배려로 혹사당하면서도 나를 위해 움직였다. 내가 그토록 찾아해매던 존재가 여기에 있지 않나. 내가 아무리 요구하고 또 요구해도 그걸 들어주고 또 들어주며 마침내 견디지 못해 쓰러질 때까지 오로지 나를 위해 헌신하는 존재. 나만을 사랑하고 나만을 위해 움직이는 존재. 그게 바로 나의 몸이다. 나만 그걸 몰랐다. 나만 그걸 모르고 그런 내 몸을 향해 전쟁을 선포하고 싸우고 있었다.


글이 길다. 몸에 관해 할 말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이제까지 헌신한 내 몸에 미안한 마음에 긴 반성문을 쓰고 있기 때문일까. 소중한 존재에 부치는 글의 마무리는 사랑일 수밖에 없다. 사랑한다. 나의 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