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 드로잉의 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드러나지는 않았더라도 마음속의 존경심이 한없이 높았던 故김정기(1975/02/07~2022/10/03)님이 작고하셨다. 소식은 우연히 SNS로 접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잘못된 뉴스인 줄 알았다. 돌아가시기에 47세라는 나이는 너무 젊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러나 곧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을 하고 말 그대로 뒤통수를 심하게 얻어맞은 '충격' 그 자체였다.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전시장에서는 앞다투어 소위 '잘 나가는' 외국작가를 섭외한다. '일러스트레이션' 바닥에 15년 넘게 있다 보니 그들 중 몇몇은 내가 직접 만나보기도 했고, 과연 그들이 '일본이나 중국'이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얼마나 호감이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나라에서 와서는 최상의 대접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을 보았다. 그러던 중 2021년 롯데 뮤지엄에서 개최된 김정기 님의 '디 아더 사이드' 전시는 결국 '우리나라 사람이 해냈구나.'라는 걸 증명해 준다는 느낌이 들어 종강을 하자 마자 부리나케 달려가서 관람했던 기억이 있다. 그의 수많은 작품을 보니 여운과 자기반성이 밀려왔다. 교포도 아닌 우리나라가 낳은 최고의 작가가 바로 그였다. 그게 겨우 1년여 전이다.
1975년생인 김정기는 서양화과 중퇴 후 1998년부터 만화 작업에 매진하였다. 26세가 되던 2001년 KTF의 간행물 <Na>를 연재하며 만화가로 데뷔하였고 2011년 부천 만화축제에서 펼친 라이브 드로잉이 주목을 받으며 화제가 되었다. 그 후 세계의 주류 만화시장의 러브콜을 받으며 라이브 드로잉 퍼포먼스를 펼쳤다. 특히 미국 만화를 주도하며 묵직한 팬층이 있는 양대 산맥인 DC 코믹스와 Marvel 의 주목을 받아 두 경쟁사 모두와 협업을 하는 등 최고의 작가 자리에 올랐다. 무엇보다 밑그림 없이 본 것을 레퍼런스 하나 없이 기억 속에서 그대로 그리는데 그리는 결과물의 인체나 가구, 건물의 구조 및 투시 등이 놀랍도록 정확하고 스토리텔링에 의한 인물 설정과 소품 사용 등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나는 전시에서 그의 라이브 드로잉도 물론 멋졌지만 무엇보다 초창기 작품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았다. 20대 특유의 정성이 깃들어 있는, 만화를 처음 시작하는 어느 그림쟁이들과 같이 잉크를 비롯한 연필 스케치나 마카, 수채화 등을 사용한 컬러 코믹이 인상 깊었다. 이 만화의 한컷 한컷에 담긴 그의 드로잉 실력은 눈부셨고, 그의 기억 속에서 펼쳐지는 라이브 드로잉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매일 삶 속에서 이어가던 관찰과 염원, 피나는 연습의 노력 끝에 완성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운동선수는 한 경기를 위해 매일 운동을 하고 음악가 또한 하나의 연주를 위해 매일같이 연습에 연습을 더한다. 그러나 그림은 사실 그러한 '결전의 날'이라는 것은 '입시' 이후에는 없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연습을 하기란 어렵다. 드로잉에 진심이 없다면 사실 하루에 한 장 그리기도 버거울 것이다. 김정기 님은 작년 롯데 뮤지엄 전시를 위해 평생 동안 그린 그림 7천여 점 중 1,000점 만을 추려 전시했다고 한다. 대단한 작업 양으로 천재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증명해준다. 수많은 해외 작가 속 우리나라의 '김정기'님이 있어 내심 무지 든든했다.
하늘은 무심하게도 좋은 사람들만 골라서 일찍 데려가신다. 그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우리 모두는 영원히 그를 잊지 못할 것이다.
#jungyeonro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