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 트래블 일러스트레이션
생일을 그리 호사롭게 치르는 편은 아니지만 장수의 꿈은 있어서 몇 해 전부터 생일날에는 평양냉면을 챙겨 먹거나 이제 막 제철이 시작되려 하는 방어를 먹었다. 홍대에 출강을 할 때는 종강 기념으로 '바다회사랑'이라는 횟집에 가는 게 유일한 행복이었다. 올해는 방어의 꿈은 다음 달 완전 제철이 되어버리는 동생 생일에 먹기로 하고 평양냉면과 비건 케이크와 함께 했다. 내 생일은 빼빼로의 광고 효과로 그 특성을 살짝 잃기도 하였지만 <건축학개론>의 여주인공과 생일과 같은 1이 쭉 네 개, 11월 11일이다. 태국에서는 1111이 부를 부르는 숫자라 차 번호판이 어마어마한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는데 왠지 모르게 이런 이야기들은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올해는 무엇보다도 생일날 뉴욕타임스와 일한 그림이 발행되어 어느 해보다 값진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이번에 작업한 기사는 뉴욕타임스 트래블 섹션의 Thanksgiving Black Friday Travel Deals에 관한 내용이었다. 미국 추수감사절의 블랙 프라이 데이 세일은 11월의 셋째, 넷째 주에 일어난다. 올해는 그동안 코로나로 여행에 제한되었던 사람들 모두가 마치 앙갚음을 하는 양 여행을 원하기 때문에 특별히 '특가 세일'을 주지 않아도 여느 때보다 저절로 잘 팔리는 해라고 한다. 물론 30~50%의 가격 할인도 해주고 있지만 더 많은 호텔들은 일단 예약하면 3번째나 4번째 밤 무료 투숙 + 음식 및 음료, 주차 제공으로 퉁치고 있다. 올해는 또한 물가도 상승하는 바람에 똑같은 할인을 받아도 2~3년 전 보다 높은 가격을 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미친 듯이 팔리고 있는 듯하다. 그러면서 이 블랙 프라이데이 딜에 참여하는 다양한 리조트 및 호텔, 크루즈 등을 소개하고 있다. 소개하는 사이트가 좀 많긴 했지만 그래도 좋은 그림을 위해 책임감을 갖고 하나씩 링크를 눌러보며 '와~ 이런데도 있었어?' 하며 내 버킷 리스트에 찜해 놓은 곳들도 있다. 항상 일러스트레이터는 글이 대중에게 발행되기 전 보게 되기 때문에 Gae 이득인 느낌이다.
2013년부터 함께 일해 온 아트디렉터 Minh Uong 은 이 작품을 위해 최대한 하와이안 분위기의 트로피컬 컬러를 원한다고 했다. 요즘 작업 양이 늘어가면서 톤 다운된 성숙한 색채의 변화를 꾀하고 있었지만 역시 그가 나를 찾은 이유는 이러한 밝은 색감과 즐거운 분위기 때문인 것 같다. 트로피컬 리조트에서 즐기는 땡스기빙이라... 시차 때문에 새벽에 그림을 그리다가 저 수영장에 퐁당 빠져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매년 11월의 넷째 주 목요일인 미국의 땡스기빙은 그야말로 축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뉴욕의 메이시스 백화점의 'Thanksgiving Day Parade'다. 이를 비롯해서 미국 전역이 추수감사절을 기념하기 위해 들썩이는데 미국에 살 당시에 나에게는 가장 암울한 명절이 아닐 수 없었다. 첫 번째 땡스기빙을 맞았을 때 기숙사에 살던 나는 미국인 룸메들이 모두 이 시기에 집에 돌아가서 혼자 덩그러니 빈 기숙사에 남아 감자칩이나 뜯고 있었던 기억이 있고, 또 다른 땡스기빙에는 미국인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 몇 번 갔던 기억도 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남의 명절'이었고 2014년 GQ에서 발행했던 'How to Have a Very Happy Changsgiving'에서는 모모푸쿠의 한국계 미국인 셰프 데이비드 장이 터키를 걷어차 버리며 그의 가족들은 땡스기빙에 터키 대신 Ugly Delicious 한 '갈비찜'을 먹는다는 이야기에 그렸던 일러스트가 기억에 남는다.
미국에서의 아련한 땡스기빙의 추억을 뒤로 한채 올해 연말의 시작과 생일을 뉴욕타임스와 함께 할 수 있음에 기쁘고 감사하다. 그렇지만 기운 센 호랑이해가 이제 한 달 여 밖에 안 남았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아쉽다. 올해는 갈비 대신, 터키 대신 대체육을 먹으며 연말 파티를 해보면 어떨까 한다. #jungyeonro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