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 계속 굳건하자
초코과자의 베리에이션을 떠올려보자.(초코빵은 제외)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자와 초코 부분이 분리되어 있거나, 섞여 있거나. 과자반죽에 초코가 들어가서 초코과자라 불리는 것이 있고, 과자를 따로 구운 뒤 초코를 묻혀서 초코과자가 된 경우가 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 취향은 쭉 후자였다. 초코의 독립성을 지켜주는 레시피를 선호한다. 초코는 초코 그 자체로 빛나니까.
1년에 한두 번쯤 초코송이 엄청 먹고 싶은 날이 찾아온다. 오늘이 그날이었다. 초코송이를 먹고 싶은 마음은 다른 과자에 비해 잠재우기 어려운데,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초코송이 양이 나날이 줄고 있어서 칼로리 합리화가 쉽다는 점이고, 다른 이유는 초코송이는 끝맛이 꽤 깔끔한 과자이기 때문이다. 버터나 팜유의 느끼하고 미끄덩한 느낌이라든지, 스낵류의 짭조름한 맛 같은 질척거리는 잔여감이 남지 않는다. 이렇게 초코송이를 먹던 순간을 떠올리니 장점이 더 생각난다.
초코송이는 깔끔한 과자다. 키보드를 치면서 초코송이를 먹는다고 하자. 키보드에 과자부스러기가 떨어진다든지, 손가락에 과자 기름끼나 양념이 묻어 키보드가 미끌거리는 참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끝맛도 질척이지 않지만, 손끝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이 얼마나 깔끔한 과자인가. 누가 초코송이 개발자에게 이렇게 개발 요청을 한 건 아닐까? “키보드를 치면서도 먹을 수 있는 과자. 손 끝에도, 혀 끝에도 잔여감이 남지 않으면서 너무 달거나 짜거나 느끼하지 않은 초코과자를 만들어주세요!” 만약 이런 요청이 있었다면 개발자님은 그 해 성과 평가에서 최고점수를 받았어야 마땅할 것이다.
*찾아보니 초코송이는 오리온이 1984년부터 제작한 과자로 우리 언니보다도 나이가 많은 과자다.
초코송이와는 꽤 오랜 우정을 다진 사이다. 키보드를 치기 전부터, 나이가 한자리이던 시절부터 초코송이를 좋아해 왔다. 그냥 좋았다. 내 취향을 설명할 수 없는 시절부터 좋았다. 좋아하는 과자 얘길 간간히 쓰곤 있지만 사실 어린 시절에는 과자보다 음료수, 음료수보다 밥을 좋아하던 어린이였다. 그래서 소풍을 갈 때도 과자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좋아하는 과자 목록은 정해져 있었고, 그중 한두 개를 골라 간식으로 챙겼다. 몇 안 되는 애정과자 목록에서 소풍 과자를 정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건 그냥 과자들 중 두 개를 고르는 게 아니라 ‘소수정예 애정 과자 목록’에서 고르는 거였으니까. 초코송이는 오랜 세월 나의 소풍과자였다. 안전한 상위권이랄까. 우린 굳건한 사이였다. 아, 물론 지금도 굳건하다.
연 1,2회 먹는 과자를 애정하는 과자라고 소개하는 게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자주 보면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도 있고, 그렇진 않지만 편한 친구도 있듯이 초코송이도 그렇다. 엄청 친하다고 말하긴 뭐 하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서 언제 만나도 편안한 친구. 이따금씩 안부를 묻는 친구. 초코송이는 그런 과자다.
오늘 2023년이 되고 처음으로 초코송이를 먹었다. 1월에 먹었으니 7월쯤 다시 또 생각나려나.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초코송이가 가진 깔끔한 과자로써의 강점을 치켜세우고 싶었는데 쓰다 보니 오랜 친구로서의 우정도 초코송이를 향한 호감의 일부였다는 걸 발견한다. 대략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된 우정 아닌가. 추억의 과자, 초코송이. 나와 오랜 세월을 쌓은 초코송이. 인생에 초코송이처럼 오래가는 사이가 많아지면 좋겠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과자든. 오래된 사이가 주는 익숙함, 편안함을 귀하게 여겨야지.
새해 인사 겸 오랜 친구들에게 안부 연락이라도 해야겠다. 그들은 모르겠지. 넌 나의 초코송이친구란 걸. 앞으로 초코송이를 보면 함께 세월을 쌓고 싶은 친구들이 떠오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