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저도 알 것 같아요
참 크래커는 어른 과자다. 참 크래커를 좋아하던 사람들을 떠올리면 모두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바라본 40대 엄마, 60대 교회 권사님들, 그리고 사회초년생 시절 우러러본 30대 초반의 팀장님까지. 모두 나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인생 선배들이었다. 과자를 먹고 있던 그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이렇다 하게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무심한 표정. 스낵처럼 와그작와그작 한 주먹씩 입에 넣고 씹는 것도, 어딘가 몰두하며 하나씩 쏙쏙 꺼내 먹는 것도 아닌 멍한 얼굴로 크래커를 한입씩 심심하게 씹어먹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이제 그 시절 팀장님 나이가 된 나도 같은 얼굴로 참크래커를 먹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이제 나도 기억 속 어른들 무리에 낄 수 있게 된 걸까.
참크래커의 맛을 한번 얘기해 볼까. 참크래커는 짜다. 굳이 다른 맛을 덧붙이자면 기름진 맛을 들 수 있는데 짠맛이 너무 강해서 ‘짜다’는 말로 참크래커의 맛을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참 단순한 맛의 과자다. 하지만 맛이 단순하다고 해서 이 과자가 주는 충격이 약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단순해서 강력하다. 그리고 크래커를 한 입 물면 혀 끝에서 바로 녹아내리는 소금알갱이는 짠맛을 극대화한다. 먹자마자 바로 짠맛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혀끝에서 강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여타 과자들이 짠맛을 매콤 달콤한 자극적인 맛들을 살리는 용도로 사용할 때 참크래커는 짠맛을 단독으로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다. 소금을 양념의 일부로 섞지 않고 오로지 소금 본연의 짠맛으로 승부하는 이 강단 있는 레시피. 멋지다. 사실 이건 짠맛이라 가능한 일이다. 달콤, 매콤한 다른 맛들은 짠맛의 도움 없이는 제 힘을 온전히 발휘하기 어렵지만 짠맛은 단독으로 나설 수 있다. 혼자 ‘짠!’할 수 있어서 짠맛인가 싶을 정도로 혼자서도 제 존재감을 확고하게 지킬 수 있는 맛이다. 짠맛은 힘이 세다.
참 크래커는 독보적인 과자다. 별거 아닌 듯한 외관과 맛으로 어느 편의점이나 마트를 가도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1986년 출시된 과자이니 신상 과자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법도 한데 꾸준히 생산되고 있다. 외관도 30여 년간 그대로다. 흰 배경. ‘참’이라는 한 글자. 그리고 크래커 한 조각 이미지 달랑. 거의 리뉴얼이 없는 과자 디자인에서 위풍당당함이 느껴진다. 건재한 참 크래커를 보면 머릿속에서 대사가 자동 생성된다. ‘지금 이대로도 난 충분히 괜찮아. 굳이 애써 유행에 맞춰 내 정체성을 바꿀 필요 없어. 내 나름의 역할이 있고, 난 이 역할에 만족해.’ 어떻게든 사람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 알록달록 저마다 뽐내는 과자매대에서 저렇게 깨끗하고 단순한 외양으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참크래커. 참 우아하고 멋지다.
참크래커를 먹던 어른들이 심심한 얼굴로 어떤 하루를 보내던 중이었는지 가만 떠올려본다. 집안일을 하다가 잠시 식탁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엄마, 예배 봉사 후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권사님들, 주간 보고 후 자리에 앉아 주말 데이트 스팟을 검색하던 팀장님. 큰일 없이 흘러가는 여느 날이었던 것 같다. 에너지를 확 끌어올릴 수 있는 단맛이 필요한 것도, 스트레스를 풀어 줄 매콤한 고자극 시즈닝 맛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자기 할 일을 하다 다소 출출하고 입이 심심해졌던 그런 순간. 다음 날 생각나지도 않을 잔잔히 흘러가는 일상의 한 장면에 참크래커가 함께 하고 있었다.
어른들은 인생의 쓴맛을 알아야 어른이라고 했다. 소주의 쓴맛이 달다고 느끼면 그제야 인생을 안 거라나 뭐라나. 나는 인생의 쓴맛보다 짠맛을 논하고 싶다. 인생의 쓴맛이 유난히 힘든 한 시절을, 인생의 달콤함이 사랑이 넘치던 호시절이라면 인생의 짠맛이란 일상의 고단함과 닮았다. 한 주가 흐르고 나면 기억도 가물가물할 하루분의 힘듦, 피곤함, 어려움 따위의 것들. 사실 큰 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를 살아가는데도 힘이 필요하다. 별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라 해도 돌아보면 낑 하고 버텨낸 순간들이 있다. 이렇게 버텨낸 시간들이 무사한 하루하루를 만든다. 그리고 일상을 떠받드는 굳건한 힘으로 자리 잡는다. 어른이 되는 건 매일의 작은 피로감을 눈 딱 감고 휘 지나갈 수 있게 되는 거 아닐까. 전에는 이 일이 너무 어려워서 일을 마치자마자 훅 뻗어 버렸다면, 이제는 크래커 하나 냠냠 씹으면 회복되는 것처럼. 그렇게 찬찬히 훌쩍 자라 자기 몫의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참크래커의 강렬하고 단순한 짠맛은 일상을 버티는 힘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