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예예 Apr 18. 2022

나만 좋아하니

순두부찌개, 나의 소울푸드

*비도 오고 기온은 낮고 짐은 많고 외근을 나와 만 삼천보 걷고 저녁으로 순두부찌개를 먹고 쓴 글


집에서 만들기 쉬워도 괜스레 사 먹고 싶은 메뉴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순두부찌개다. 1인용 뚝배기에 바글바글  끓는 채로 나오는 빨간 순두부찌개를 좋아한다. 특히 오늘처럼 추적추적 비 오는 날, 만보 이상 걸은 날, 든든한 백반이 먹고 싶은 날. 사실 이유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데 대략 좀 쳐진 날에 더 맛있는 것 같다. 아무튼 오늘은 이 세 개가 다 해당하는 날이었다. 이틀 내내 내리는 비에, 스산한 날씨에, 겹겹이 껴입은 옷에, 우산까지 들고 코엑스에서 열리는 엑스포를 다녀왔다. 드넓은 전시장과 많은 볼거리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 외근을 마칠 때쯤 따뜻한 찌개백반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걸음을 옮긴 식당가에서 칼칼한 해물 순두부 사진이 보였다.


내가 기대한 순두부찌개가 아니야

백화점 푸드코트는 청결도, 맛에서 웬만치 해낼 것을 기대하며 맛깔나 보이는 사진의 해물순두부를 주문했다. 음식 사진의 퀄리티와 실제 음식 맛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 지쳐있지 않았더라면 이 사실을 되뇌며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찌개와 반찬들 모두 너무 짰다. 시장이 반찬이 아니었다면 남겨도 이상하지 않은 맛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난 뭐라도 씹어야 할 만큼 허기졌고, 짠맛을 달랠 흰밥은 적당히 따듯해서 바로 한 숟갈 퍼 먹을 수 있었다.  밥 한 숟갈, 순두부 한 숟갈, 숙주나물 한 젓가락 간을 맞추며 세 숟갈쯤 먹으니 좀 기분이 나아졌다.


뚝배기, 네가 살렸다

순두부는 내가 원하는 만큼 뜨끈했다. 뚝배기 덕분이었다. 뚝배기 없이 찌개가 한국 백반에서 지금의 위상을 차지할 수 있었을까? 찌개는 뚝배기에 담겨야 제 맛이다. 온도와 맛의 상관관계란 어떤 음식이건 중요할 테지만 뜨끈하지 않은 찌개는, 아... ‘보글보글’ 사운드 없는 찌개는 영 아쉽다. 밥 반공기를 비우도록 뜨끈한 뚝배기를 보니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천천히 먹어도 뚝배기는 끝까지 따듯할 테니 꼭꼭 씹어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물 한 모금을 들이켰다.


찌개의 길

근데 순두부는 별 씹을 게 없는 음식이긴 하다. 입안에서 호호 식히기 무섭게 목 뒤로 몽글몽글한 형체 그대로 넘어가버리고 마는데 뭘 씹나. 순하디 순해서 순두부인가 싶을 정도로 순한 맛과 모양의 순두부. 하지만 순한 순두부도 국이 아닌 찌개가 되기 위해서는 결심이 필요했던 것 같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등 다른 강렬한 찌개들과 경쟁하기 위해서 한 끝이 필요했던 것이다. 누가 뭐래도 한식 대표 식재료인 된장,김치와 함께 찌개 라인의 대표주자가 되기 위해서 순두부가 선택한 건 고추기름과 청양고추다. 빨간 고추기름을 입고 어슷 썬 청양고추가 올라와 있는 순두부찌개, 칼칼하고 시원한 이 맛은 사실 순두부 자체의 맛은 아니다. 하지만 순두부는 다른 재료들의 강렬한 맛을 자신의 부드러움으로 아우른다. 그래서 순두부찌개는 다른 찌개류들에 비해 참 부드럽다.


밥 반공기가 남으면 할 일

마지막으로 내가 순두부찌개에서 사랑하는 재료는 달걀이다. 적당히 익은 촉촉한 달걀을 먹기 위해서는 밥이 반공기가 될 때까지 달걀이 터지지 않게 조심스레 순두부를 먹어야 한다. 밥이 반쯤 남았을 때 그제야 달걀을 조심스레 건져 올려 밥 위에 톡 올린다. 달걀 위로 약간의 순두부와 찌개 국물을 끼얹고 달걀을 터트리면 수란과 완숙 사이로 익은 달걀을 알맞은 간으로 먹을 수 있다. 순두부찌개에 달걀이 안 들어간다면 가격을 추가해서라도 넣을 것이다. 칼칼하고 시원하게 순두부를 먹고나면 달걀로 부드럽게 마무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순두부찌개로 이렇게나 글이 길어진 이유는

순두부찌개에 대해 이렇게나 말이 길어진 것은  주변에 순두부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서다. 여서 일곱 살쯤 먹었을까. 여름 저녁노을이  때쯤, 아파트 주차장에서 두부 트럭 아저씨의 “두부가 왔어요소리와 종소리가 울리면 엄마에게 5 원짜리를 받아 들고 뽀로로 내려가서  지은 따뜻한 두부  , 순두부  봉지를  오는 심부름을 도맡았던 기억이 난다. 신나는 심부름이었다. 고소한 두부 냄새도 따뜻한 온도도 몽글한 느낌도  좋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좋아했던  그날 저녁에 먹는 따뜻한 순두부찌개와 두부부침이었다. 기어이 과식을 하고야 마는 .

남편은 순두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른이 돼서야 순두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걸 알았다. 지금 내가 아는 사람들 중 순두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엄마뿐이다. 아빠는 순두부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엄마도 나만큼 순두부 먹는 날이 줄었을까?

출처: 비움반찬 순두부찌개 소개 사진(맛있어 보이길래...사먹어보진 않음)


작가의 이전글 아인슈페너의 성공비결 4가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