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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예예 May 25. 2022

“여보, 저 혼자 있고 싶어요.”

시간이 필요해요

퇴근 후 집에 들어와 30분 정도 같이 수다를 떨다가 대화가 마무리될 때쯤 남편이 말했다. “여보 저 이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요.” 거의 매일 있는 상황이다. 회사에서 회의가 좀 많았다든지 약속을 다녀왔다든지 어떤 이유에서건 더 지친 쪽이 먼저 이 말을 꺼낸다.


‘활발한 내향인’의 하루

우리 부부는 둘 다 활발한 내향인이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즐기면서도 홀로 충분히 시간을 보내야 에너지가 회복된다. 주변의 외형인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는 혼자 있을 시간이 1.5배는 더 필요한 것 같다. 친구와 아무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해도 받는 에너지보다 빠져나가는 에너지가 많다. 나란 존재의 에너지 효율이 그렇다. 돌아오는 전철을 타자마자 이미 방전이란 걸 느낀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면 반겨주는 남편을 만나 살짝 에너지가 차올라서 오늘 어땠는지를 조잘조잘 이야기하게 된다. 남편 발 급속 충전 에너지는 약 40분 정도?! 이내 말하느라 기운을 빼서 혼자 타임이 필요해진다. 그럼 눈치 빠른 남편이 먼저 물어봐준다. “여보 혼자 있고 싶어요?”


그는 사실 올빼미형 인간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그냥 새벽시간을 내 시간으로 확보했다. 하지만 몸이 너무 피곤해 새벽에 일어나 내 시간을 갖지 못한 날이면 하루 만족도 자체가 훅 떨어졌다. 그런 날들이 쌓이자 별 거 아닌 일에도 짜증이 나고 약간의 우울감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알고 보니 남편도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내가 새벽 시간을 갖는 대신 그는 심야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시간을 갖기 위해 더 늦게 잠들게 되었고, 내 시간을 지켜주기 위해 더 늦게 일어나야만 했다. 일찍 일어나는 게 체질인 그도 자기 리듬이 깨진 상태였다. 그의 사정은 나중에 대화를 하다가 알게 됐다. 평생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던 사람이 왜 요즘 늦게 자나 했는데 나를 위한 배려였다. 모두가 행복한 가정을 위해 해결책이 필요했고, 서로의 상황을 듣고 보니 해결은 쉬웠다. “그냥 말하면 되겠는데?”


혼자 있고 싶다고 널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야 

약속한 건 아니었지만 혼자만의 시간에 무얼 하든 간섭하지 않는다. 넷플릭스를 보건 인스타그램을 하건 친구랑 통화를 하건 상관없다. 뭘 하든 그 사람이 충전이 되는 활동이라면 된다. 그렇게 각자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면 먼저 에너지가 충전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찾아간다. 상대가 시간을 더 필요로 하면 돌아가서 내 시간을 더 누리고, 그도 충분히 회복되었다면 “보고 싶었어요!”하며 부부상봉의 기쁨을 누린다.


넷플릭스를 보는 그와 책상 앞의 


혼자 있고 싶은 것과 사랑은 별개다. 사랑해도 혼자 있고 싶을 수 있다. 나와 남편은 부부라는 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지만 결국 나와 너로 만난 두 사람이다. 독립된 두 존재인만큼 각자의 시간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 나는 그가 좋은 남편이길 바라지만 동시에 행복한 존재이길 바란다. 그 또한 같은 마음일 것이다. 우리는 누구보다 서로를 소중히 여기니까. 서로가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한 존재란 갈 일치감치 깨닫고 배려해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앞으로도 우리 잘 떨어져 있다가 반갑게 상봉하자!


*이 글도 혼자 타임에 썼다.


+ 덧붙이는 생각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할 생각을 못한 이유는 우리 가족문화의 영향이었던 것 같다. 우리 집에서 방문을 닫는 건 금기였다. 파워 외향인이었던 엄마는 외출 후 돌아와서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에게 있어 방문을 닫는 행동은 ‘난 당신과 같이 있기 싫어요!’ 같은 뜻이었다. 드디어 집에 들어왔는데 왜 사랑하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않고 혼자 있겠다는 건지, 실컷 놀고 들어와서 왜 지쳐 있는 건지. 그런 서운함을 토로하는 말들을 듣기  함께하는 시간이 곧 사랑이고, 나에 비해 혼자만의 시간이 적게 필요했던 성향의 엄마는 아마 날 이해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결혼 전의 나는 내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고 엄마를 설득하는 대신 새벽에 일어나는 걸 택했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일어나서 그제야 방문을 닫고 책을 읽고 요가를 하는 걸로 온전한 내 시간을 보냈다.


부모님께 받는 내리사랑으로 많은 걸 누렸지만 한편으로는 내 삶의 크고 작은 결정 권한도 함께 드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내 시간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참 양면적이라 덕분에 난 새벽 시간의 묘미를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았던 순간들이 늘 나쁜 것만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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