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예예 Dec 10. 2022

남편을 너무 믿지 마세요

아내를 너무 의지하지도 말고요

이 남자랑 부부가 된 지 2년이 되어간다.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면 성공적으로 여러 프로젝트를 해낸 TF의 모습과 비슷했다. 짧은 기간인데 정말 많은 일을 함께 해냈다. 부부가 되고 보니 부부는 함께 결정하고 해내야 하는 과업이 많은 관계였다. 결혼식 준비가 첫 번째 프로젝트라면 결혼 후에는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산발적으로 여기저기서 생겼다. 달마다 내야 하는 공과금, 대출금 같은 금융 관련 일부터 매일 해야 하는 집안일과 청소. 그리고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명절과 부모님 생신 같은 가족행사까지. 할 일은 늘 넘쳤다. 일이 많다 보니 효율을 따져서 분담부터 시작했다. 숫자를 재밌어하고 잘 다루는 남편은 금융업무를,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경조사를 맡는 식으로 각자의 흥미와 특기에 따라 일을 나눴다.

 

분담 실패

하지만 분담은 최선의 방법이 아니었다. 더 정확히는 '분담'에만 집중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일을 나누는데 집중하다 보니 내가 맡은 일은 최선을 다했지만 상대의 일에는 점점 무관심해졌다. '알아서 하겠지'라는 마음으로 그가 맡은 일은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무관심의 끝은 무지에 이르렀다. "대출이자율이 몇 퍼센트더라?" 하는 나와 "아 부모님께 안부 전화드려야 하는 날이에요?" 하는 그. 책임감 있는 서로를 너무 믿은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영역이건 간에 그 영역을 한 사람만 제대로 알고 있다는 건 언제든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책임을 맡은 사람은 막중한 부담감을 느낄 테고, 아닌 사람은 그 영역에 아예 흥미를 잃고 무지성이 될 수도 있으니까. 경각심이 들었고, 남편에게도 이 생각을 나눴다. 그도 동의했고, 우린 분담이 아닌 다른 가치를 추구하기로 했다. 분담보다 '공유'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가정에서 분담이 아닌

'공유'를 할 때 얻는 것들


하나, 고마움과 인정

이 사람이 잘하는 걸 더 인정해 주고 고마워할 수 있게 됐다. 그가 잘하는 것에 나도 관심을 가져보고 알아가다 보니 이 사람이 이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를 더 선명하게 알게 된다. 예를 들어 그는 빠른 비교와 선택을 잘한다. 살림살이처럼 갖고 싶어서라기보다 필요 때문에 빨리 구매를 해야 할 때 이 강점은 힘을 발휘한다. 나라면 물티슈 사러 쿠팡에 들어왔다가 온갖 청소용품에 시선을 뺏겨 끝없는 서핑을 즐기다 후회했겠지만, 그는 곧바로 목표를 향해 돌진한다. 나름의 기준에 따라 몇 개의 제품들을 비교하고 바로 구매한다. 실제로 그가 구매 결정을 해나가는 과정을 찬찬히 보여주면서 실시간으로 머릿속에서 드는 생각까지 같이 설명해 준 적이 있는데 하나의 알고리즘이 흘러가는 것 같았다. 한 사람의 머릿속으로 인풋이 들어갔고 아웃풋이 나오는 광경이었다. '아 맞다. 넌 논리에 맞게 코딩하는 사람이었지.' 참고로 남편은 AI 연구자다. 그냥 그에게 "물티슈 좀 사줘." 하고 맡겼더라면 이렇게까지 그의 강점을 정확히 알고 고마워할 수 있었을까.

 

빠른 비교와 선택을 하는 그


둘, 재미와 균형발전    

지식이 확장되는 재미가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지식의 보고라고 생각한다. 그의 지식을 내가 얻게 될 때, 내 지식을 그와 나눌 때 부자가 되는 기분이다. 지적 자본이 늘어나는 느낌이랄까. 우리는 늘 서로에게 배운다. 이제 남편은 수건 빨래는 울세탁 모드로 단독 세탁해야 오래 깨끗하고 보송하게 쓸 수 있다는 걸 안다. 콩나물을 생수에 담가 세 워쓰는 지퍼백에 보관하면 일주일도 거뜬히 간다는 걸 안다. 나는 여전히 살림 리더지만 그에게 살림 현황과 기술을 자주 공유하면서 함께 아는 지식을 늘려가고 있다. 우리 가정에서 공유를 중요한 가치로 삼으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더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동시에 배우게 됐다. 두 명뿐이지만 두 사람이 만드는 집단지성은 2인분이 아니다. 그보다 크고, 넓다.

 

요즘 읽는 책 소개하는 센서티브한 그


셋, 함께하는 기분

여전히 갖가지 영역에서 리드하는 사람과 돕는 사람으로 일을 분담한다. 하지만 각자 맡은 일들을 활발히 공유하다 보니 함께 가정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게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우리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리 두 사람이 동등한 책임을 나눠갖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와닿는다. 이제 우리는 서로가 맡은 일에 무심하지도, 무지하지도 않다. 오히려 상대방의 노고를 인정하고, 고마워하고, 서로의 강점을 배워나간다. 같이 성장한다.


함께 걷는 사이


부부의 팀워크, 공유

회사 일에서만 공유가 중요한 게 아니다. 가정에서도 중요하다. 남편은 평생 나와 수많은 일을 해내야 할 파트너다. 심지어 이 사람과 해야 할 일들은 삶의 만족도와 행복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친다. 남편과 좋은 팀이 되고 싶다. 서로를 인정해 주고, 응원하고, 격려하는 동시에 서로에게서 계속해서 배울 수 있는 멋진 팀. 팀원은 없다. 모두가 팀장이다. 우리는 지금 좋은 팀이고, 앞으로도 잘해보자! 

이전 06화 “여보, 저 혼자 있고 싶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