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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예예 Jul 10. 2022

남편은 '협의'를 말했다

협의로 내리는 결정

각자 바라는 게 다를 경우, 대부분의 의사결정은 한쪽이 다른 한쪽의 의견을 따라주는 걸로 끝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먹을 때면 그가 양보한 것이고, 그가 가고 싶은 곳을 갈 때면 내가 그에게 맞춰준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남편은 나와 생각이 달랐다. 다른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 


"여보 생각은 어떤데요?"

이야기의 시작은 함께 부부모임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서 나눈 대화였다. 남편은 기대했던 것과 모임의 진행방식이 달라서 아쉬웠다며 당신은 어땠냐고 물었다. 나는 그의 의견에 공감의 표시로 고개를 한번 끄덕이곤 그래도 진행을 맡은 분들이 열심이었다고 모임 주최자들을 대변하기 시작했다. 말을 하면 할수록 그의 표정이 더 안 좋아졌다. 역시나. 그가 숨을 크게 들이쉬곤 말했다. 


"난 여보의 생각이 궁금했을 뿐이에요. 그분들이 열심히 준비했다는 것, 그 사람들이 좋은 사람인 것과 모임에 대한 만족도는 다른 얘기예요. 여보가 다른 사람들을 대변하기 시작하며 나는 여보의 생각도 알 수 없고, 너는 그 모임에 만족했어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상해요." 


그의 말 뜻은 이해했지만 나도 기분이 나빴다. 나는 그와 모임 사이 갈등을 중재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느끼는 아쉬움이 줄어들길 바랐고, 노력해 준 사람들이 좀 더 인정받길 원했다. 하지만 이 생각은 그의 물음에 대한 답변 뒤에 해도 늦지 않을 말들이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그는 오늘 같이 다녀온 모임이 어땠는지 내 생각을 묻고 있었고, 난 그에 대한 답변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아뇨, 저도 결정했어요."

왜 난 모임의 주최자들을 대변했을까. 바로 내가 그에게 이 모임에 가자고 권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가자고 한 모임인데 그가 이 시간이 만족스럽지 않았다면 책임은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내 머릿속에서 나는 서비스를 소개한 사람이고, 그는 서비스를 사용한 고객이었다. 나 스스로도 몰랐던 생각의 과정이었다. 항변에 가까운 내 말을 듣고 그는 이제야 이해가 된다고 말하며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근데 오해가 있어요. 물론 제안한 건 여보였지만, 나도 참여하기로 결정했어요. 여보만 결정한 게 아니에요. 나도 결정했어요." 그의 말은 자신도 제안을 수락하며 기대를 가졌고, 억지로 당신의 결정을 따른 건 아니라는 거였다. 맞다. 그는 스스로 모임에 가기로 결정했다. 모임에 기대를 가진 것도, 실망한 것도 모두 그였다.


어떤 기대

개인이 아닌 단체, 조직의 의사결정은 대게 한 사람의 결정권자가 하거나 다수결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협의'다. '협의'는 서로 협력해서 의논하는 것이다. 남편이 내게 말하고 싶었던 건 '협의'였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결정을 수동적으로 따르거나 전적으로 맞춰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 몫의 결정을 하는 것. 돌아보면 나도 내키지 않는 그의 제안을 들어주면서 나름의 기대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나는 전혀 먹고 싶지 않은 닭 라멘을 먹고 싶다는 그를 따라가며 '오랜만에 먹으면 좀 다르려나'하는 작은 기대 말이다.

그가 좋아하는 닭 라멘


협력하는 마음

사랑에는 당연히 일방적인 희생이 따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너의 결정을 맞춰 줄 때가 있으면, 너도 그런 순간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물론 희생이 필요한 때도 있지만, 그런 경우보다 협의 가능한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나도, 너도 결정한다. 우리는 각자의 의사가 있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협의를 하고 나면 한 명이 모든 책임을 안을 필요도, 누군가 미안함을 느낄 필요도 없다. 자기 결정이니까. 부부가 되어 보니 함께 풀어야 할 퀘스트가 계속해서 열리는 느낌이다.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협력해서 퀘스트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협의를 통해 합의에 다다르는 것이 기대된다. 이제 더 또렷하게 협의과정을 통해 합의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결정 상황에서 때때로 들곤 했던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인 마음도 비로소 털어냈다. 한결 가벼워졌다.     


*협의:

둘 이상의 사람이 서로 협력하여 의논함.


*합의:

1) 서로 의견이 일치함. 또는 그 의견.

2) 둘 이상의 당사자의 의사가 일치함. 또는 그런 일.


*희생:

1. 다른 사람이나 어떤 목적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 재산, 명예, 이익 따위를 바치거나 버림. 또는 그것을 빼앗김.

2. 사고나 자연재해 따위로 애석하게 목숨을 잃음.

3. 천지신명 따위에 제사 지낼 때 제물로 바치는, 산 짐승. 주로 소, 양, 돼지 따위를 바친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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