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정의 대화법, 비폭력대화
긴 연애 기간 동안 별 다툼 없이 사이좋게 잘 지냈다. 하지만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연애 때는 데이트 후 애틋한 ‘헤어짐’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터넷에 떠도는 ‘결혼하면 여자친구가 집에 안 가요.’ 짤처럼 결혼이란 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계속해서 한 집에 함께 머물러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게다가 우리가 동거한 3년은 다른 신혼부부의 3년보다 더 밀도 높은 시간이었다. 코로나19로 꼼짝없이 둘이 온종일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하루 종일 함께 있으니 참 행복했다. 하지만 연애 때보다 자잘한 갈등들이 잦아졌다. 연애는 오래 했지만 같이 사는 건 처음이기도 했고,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는 데이트 때는 못 보고 느꼈던 사소한 말투, 단어 사용부터 습관까지 쉽게 갈등 유발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갈등 원인을 찾아보면 대부분 오해였다.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인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닌데 상대방은 완전히 다른 의미로 알아들어서 문제가 생기는 게 다반사였다. 각자가 가진 대화의 프레임이 달랐기 때문에 제 아무리 좋은 뜻으로 말한 말이라도 상대에게 그 말이 닿으면 무례한 표현이 되기도 했다. 그나마 각자 컨디션이 좋을 때는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말하는지 헤아려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문제였다. 일단 머릿속에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하지?’라는 불쾌한 물음표가 뜨면 해결을 위해 사려 깊은 대화가 필요한데, 이런 류의 대화란 에너지 소모가 상당한 활동이므로 마음을 먹어야 시작할 수 있었다. 감정을 다스리며 상대방이 쓰는 말의 의미, 제스처를 살피고 나의 의사도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게 잘 전달하기 위한 노력. 갈등 해결을 위한 대화란 참 품이 많이 드는 일로 여겨졌다. 그렇다고 속상한 마음을 쌓아둘 수도 없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 서로를 더 이해하고, 사랑하고, 행복하기 위한 방법.
결국 대화의 프레임을 맞추는 작업이 필요하단 결론에 이르렀다. 각자의 원가정에서 자주 쓰는 말, 단어의 용례를 설명하기란 끝이 없고 “우리 집에서는 이렇게 말해!”라고 하는 말은 갈등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니까. 장가네 언어와 정가네 언어가 아니라 우리 집 언어가 필요했다. 우리 가정의 대화법을 찾기로 했고, 그때 알게 된 게 <비폭력 대화>의 방법이었다. 강렬한 이름 때문에 <비폭력 대화> 추천을 받아도 튕겨나가는 사람이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우리 부부도 그중 하나였다.) 그 어떤 방법 보다도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비폭력 대화>는 나의 마음을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잘 표현하고, 상대의 마음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대화방법이다. 비폭력대화를 훈련하다 보면 관계에 있어 내가 어떤 점을 중시하고 바라는 사람인지 그리고 상대방의 그것은 또 무엇인지도 알아갈 수 있다.
비폭력대화는 관찰-느낌-욕구-부탁으로 이루어진다. 갈등상황이 있다고 할 때, 비폭력대화 방식은 일단 상대와 나의 상황과 상태를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예를 들어 남편이 약속한 ‘키친타월 구매’를 말없이 안 했다고 할 때 ‘게임할 시간은 있고 키친타월 살 시간은 없나’ 하기 전에 ‘민욱이는 키친타월을 안 샀네’라고 현재 내가 보고 있는 현상만 관찰해 보는 것이다. 대게 어떤 사람의 행동이 불편하면 순식간에 평가의 말을 내뱉기 쉬운데 먼저 사실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고 나서 이 행동을 보았을 때 들었던 나의 느낌을 살핀다. 이때 나의 마음은 불편하고, 언짢고, 화도 나고, 당황스러운 감정들이 얽혀있었다. 내 감정을 알아차렸으면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나의 욕구를 찾아본다. 나의 욕구는 이랬다. ‘오늘 저녁을 준비할 때 키친타월로 고기 물기를 빼고, 고기를 구우면서 키친타월로 닦을 생각을 하며 저녁장을 봐왔는데 키친타월이 없어서 요리가 걱정된다. 키친타월이 오늘 꼭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한 관찰, 느낌을 표현하면서 욕구를 부탁하면 된다.
“전 여보가 키친타월을 사두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저녁 요리할 때 이렇게 저렇게 써야지 생각하며 집에 왔어요. 근데 여보가 키친타월을 안 사둬서 당황스러워요. 키친타월이 없으면 제 계획대로 요리하기 어렵거든요. 전 오늘 요리에 키친타월이 꼭 필요해요. 편의점에 가서 키친타월 좀 사다 주면 좋겠어요.”
남편은 뭐라고 대답했을까? 그에게 이런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아아 쿠팡으로 주문해 두긴 했는데 아직 안 왔어요. 꼭 오늘까지 배송이 와야 되는 건지 몰랐어요. 미안해요. 지금 가서 작은 거 하나 사 올게요!”
언성 높일 거 없이 사건이 끝났다. 나는 나대로 내 마음을 다 전달했고, 그는 그대로 그의 마음을 다 전달한 온전한 대화였다. 이미 키친타월을 주문했다니 몰랐던 사실이자 다행이었고, 지금 가서 사 온다니 고마웠다. 이전의 나라면 어땠을까. 아마 꾹 참고 있다가 새벽에 일기를 쓰며 그제야 그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을 발견하며 스스로를 보듬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기 위안은 할 수 있어도 상대방에 대한 오해를 갖기 쉽다. 실제로 상대방에게 들은 사실 정보는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해가 쌓이는 것만큼 두려운 일도 없다. 게다가 상대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이제 갈등 상황이 생겨 우리 사이 공기가 차가워지면 우리는 비폭력대화를 시도한다. 상대가 비폭력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느끼면 그에 대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예를 들어 ‘저 사람이 지금 화나는 마음을 억누르고 사실만 관찰해서 얘기하려고 노력하고 있구나.’처럼 상대방의 시도를 알아차리기만 해도 대화를 풀어나가기 더 수월해진다. 물론 상대가 비폭력대화의 방법을 사용한다고 해서 당장 화가 가라앉고 미소 띤 얼굴로 대화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그 시점부터 우리 대화는 공통의 목적을 향해 간다. 나는 당신과 화해하고 싶고, 오해한 게 있다면 풀고 싶다는 마음. 서로의 바람을 알아차리고, 공감하고, 결국은 우리 사이에 평화를 찾고 싶다는 마음을 분명하게 확인하는 것이다. 비폭력대화를 통해 우리 부부는 더 두터운 신뢰를 쌓게 됐다. 이 신뢰는 비폭력대화가 믿는 신념이기도 하다. 사람은 연민을 가진 존재고, 서로에게 연민을 베풀 수 있다는 것. 연민은 사랑과 신뢰도 더 두텁게 만드는 마음 같다.
늘 비폭력대화로 대화를 할 순 없을 것이다. 창시자도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비폭력대화라는 그릇, 프레임이 마음에 자리하고 있다는 건 마음의 평수를 넓혀줬다. 이전보다 세상에 더 우호적인 사람이 되었달까. 세상, 사람들과 관계 맺는 데 있어 전보다 더 큰 신뢰의 씨앗을 갖게 된 기분이다. 신기한 건, 신뢰하는 마음이 커지니 모든 관계들이 더 편안해졌다는 것이다. ‘저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불안해하며 나에 대한 상대방의 평가를 짐작하는 대신 그저 그 사람이 방금 한 말이 어떤 의도와 욕구를 담은 말인지 관심을 갖다 보니 대화 자체가 더 편안해졌고, 관계에 대한 긴장도도 더 낮아졌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상대에게도 그대로 전해져서 좀 더 편안한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언제 한번 비폭력대화에 대한 경험을 꼭 쓰고 싶었는데 글로 남길 수 있게 되어 기쁘다. 가족은 물론 더 많은 친구, 이웃들과 평화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비폭력대화를 추천한다.
비폭력대화 훈련 모임이 궁금하다면?
비폭력대화는 책만 읽고 끝내기보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모임을 꾸려 워크북으로 한 챕터씩 훈련을 해보길 권한다. 실습을 한 것과 안 한 것은 0점과 100점의 차이만큼 큰 간극이 있다고 생각한다. 남편과 나는 회사에서 마음 맞는 동료와 셋이서 비폭력대화 워크북을 갖고 매주 한 번씩 모여 한 시간가량 연습 시간을 가졌는데 큰 도움이 됐다. 놀랍게도 세 사람 모두 비폭력대화의 영향력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는 공통된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폭력대화와 비폭력 대화 훈련 모임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남편의 브런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