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자주 쓰는 말들
부부는 언어라는 세계를 공유할 수 있다. 그것도 아주 긴밀하게. 그와 가정을 꾸리고 나의 언어 세계는 좀 더 다채로워졌다. 품을 수 있는 영역이 더 넓어졌다. 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혼하고 3년 남짓 흐른 지금, 이제 우리는 한 사람이 자주 쓰는 단어들을 똑같이 꺼내 쓰는 다른 한 사람을 보곤 한다. 그럴 때면 우리는 서로만 아는 눈빛을 주고받으며 피씩 거리기도 하고, 나의 단어를 자연스럽게 갖다 쓰는 너를 보면서 점점 닮아가는 우리 모습에 환희를 느끼기도 한다. 부부의 얼굴이 닮아가듯이 부부의 말씨, 사용하는 단어들도 닮아갈 수 있다.
언어는 그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의 성향은 물론 그가 삶에서 어떤 점을 중요하게 여기고, 신경 쓰고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본인도 모르게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관, 성향 따위의 것들이 말로 나온다. 말이 잘 통하는 사람과 결혼하라는 조언도 말속에 그 사람의 거의 모든 모습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신중하게 단어를 골라 말하는 그와 결혼했다. 그의 말들은 포용적이고, 사려 깊다. 지긋하게 밀고 나가는 끈기도 있다. 어떤 말들은 그의 본 가정에서 왔는데, 가정 특유의 용례가 있어서 배움이 필요했다. 그가 속한 가정의 말을 알아가는 건 그를 비롯한 새로운 식구들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일종의 문화권을 학습하는 것이었달까.
같은 한국어를 쓰지만 우리는 각자 고유한 언어세계가 있다. 그래서 남편이 유독 자주 쓰는 단어라든지, 나와는 미묘하게 다른 온도로 쓰고 있는 단어들은 종종 그 뜻을 물어본다. 왜 그 단어를 자주 쓰는지, 어떤 의도를 갖고 말하는지, 서로의 용례를 확인한다. 확인하고 나면 이 사람이 하는 말들에 대한 이해도가 한층 더 깊어진다. 내가 알고 있는 그의 품성, 생각이 한층 더 확장되고, 연결된다. 생동하는 그의 인격을 업데이트하는 기분이랄까. 한 사람이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지 이런 대화들을 통해 깨닫는다.
남편이 자주 쓰는 단어들 중 기억에 남는 단어들이 몇 가지 꼽아봤다. 모두 그를 드러내는 단어들이다. 막상 글로 쓰려니 지금 생각나는 게 별로 없어서 아쉽다. 나머지는 살아가면서 추가할 수 있는 날이 있겠지.
언어는 참 진실되게 그 사람을 반영한다. 특히 그가 자주 쓰는 단어의 경우 더욱 그렇다. 그는 어떤 선택에 대해 조언하거나, 정보를 제공할 때, 대체로 유리하다/불리하다로 표현한다. 스포츠 중계에서나 들었던 표현이지 일상에서, 특히 가정에서는 거의 못 들었던 단어였다. 그는 이 단어를 가능성을 표현하기 위해 쓴다.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좋다/나쁘다'에 비해 더 가능성을 많이 품고 있기 때문에 굳이 '유리하다/불리하다'를 골라 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가치 판단 때문이다. 좋고 나쁨은 가치 판단이지만, 유리함과 불리함은 상황에 대한 가능성일 뿐이다. 가치판단은 당사자의 판단에 달렸다.
예를 들어 상대가 A선택과 B선택을 두고 뭘 선택할지 고민을 털어놓을 때, 대체로 사람들은 "정말 고민되겠다~"라고 평가를 피하고 함께 안타까워하는데서 끝내거나, "그래도 이 편이 더 낫지 않나. A가 더 좋은 것 같은데..."라는 식으로 선택지들을 분석하고 평가한다. 하지만 '유리하다/불리하다'는 어떨까.
"이런 점에서는 A선택이 유리하겠다. 하지만 저런 점에서는 B선택이 유리할지도."
화자의 의견이 좀 더 간접적이다. 듣는 이 입장에서 화자의 말은 판단보다 정보로 들어온다. 그래서 그와 고민을 이야기하다 보면 선택지들을 더 분석하고 객관적으로 뜯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려운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쓴다. 어렵고 힘들다고 하다가도 결국은 쉽지 않다는 말로 끝맺음을 한다. 나도 이제는 많이 쓰게 된 말인데 쓰다 보니 ‘어렵다’는 말보다 훨씬 힘이 난다. 부정표현인데도 비교적 어감이 긍정적이다. ‘어렵다’는 포기한 것 같은데 ‘쉽지 않다’는 아직 포기한 것 같지 않다. 어렵다고 하면 해결할 도리가 없는 것 같은데 쉽지 않다고 하면 해결 가능성이 더 높은 느낌이랄까? “쉽지 않다.”는 말에는 ‘그럼에도 나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가 뒤에 함축되어 있다.
활용 편은 이렇다.
"다이어트는 쉽지 않아. 그래도 오늘도 다시 시작이다~!"
연애할 때 맛있는 마크로비오틱 식당(현미밥과 채소 위주의 요리, 곡물이 식단의 60%)을 어렵게 예약한 적이 있다. 그때는 그가 얼마나 고기를 좋아하는지 잘 몰랐다. 새로운 것과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니까 소개하고 싶어서 데려갔는데 그의 반응은 영 미지근했다. “음…희한하다~ 우리 집 사람들 여기 오면 다들 희한하다고 할 것 같아.ㅎㅎ” 머릿속으로 한국어 번역기가 도르륵 돌아갔다. ‘희한하다고? 아 새롭고, 신기해하는 건 맞는 것 같은데 싫은 건가? 싫다기엔 그렇게 부정 뉘앙스의 단어는 아닌데…’
“희한하다.”는 그의 할머니에게서 온 표현이다. 남편의 식구 모두가 쓰는 말이기도 하다. 무언가 새롭긴 한데, 자신의 예상과 달라서 놀랍고 신기할 때 쓴다. 대체로 이 말을 할 때 그의 감정은 당황스러움, 놀람, 신기에 가깝다. 상대의 감정을 살필 때 주로 긍정/부정 둘 중에 하나로 판단을 내렸던 나는 그의 “희한하다~”는 말이 어렵고 헷갈렸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가 무언가 희한하다고 할 때는 “이건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문물인걸?! 놀랍다!”라는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희한하다는 말은 그에게 새로운 세계를 확장하는 말이었다.
그와 살면서 그의 목소리, 그의 말을 매일 듣는다. 그의 생각, 사고과정, 판단도 함께 듣는다. 그가 쓰는 말들에는 늘 듣는 이에 대한 배려가 우선된다. 자신의 말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려한다. 그 점이 내가 쓰는 말과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나는 감각이 예민한 사람이라 내가 느끼는 바를 최대한 표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단어를 고른다. 미묘한 감정, 느낌을 적확한 단어로 말하고 싶은 욕구가 크다. 그는 나와 달랐다. 상대방이 자기 말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지에 더 큰 관심이 있었다.
남편은 내게 여보 덕분에 세상이 더 다채로워졌다고 한다. 아름다운 것들을 더 많이 느낄 수 있게 되었다고. 나는 그 덕분에 내 안에 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만큼 듣는 이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그의 말들이 그러하니까.
우리는 서로의 말로부터 배운다. 서로를 더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확장시켜 나간다. 오늘도 우리는 어떤 대화를 나눌까. 어떻게 서로에게 배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