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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예예 Oct 22. 2023

남편의 글: 문제 해결 공동체로서의 부부

각자의 문제가 우리의 문제가 될 때

시작은 결혼식

대부분의 시작은 결혼식 준비였을 거다. 나는 종종 결혼식 준비를 연애 대상과 1년 기간의 2인 프로젝트에 비유한다.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 결정해야 할 것이 정말 많다. 양가 부모님이라는 이해 관계자도 있고, 평소 알고 지냈던 지인들까지 사려 깊게 고민해야 한다. 당연히 모두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거나 설득해야 하는 일이 많고, 계획적으로 돈을 써야 하면서 각각의 시기에 맞게 일정을 지켜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만나본 적 없던 배우자의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를 만나기도 한다. 나는 결혼 준비 기간에 서로의 일하는 모습을 처음 보는 것 같다고 일기에 적었다.


각자의 문제가 우리의 문제가 되는 이유

결혼식 이후에도 부부가 함께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가 많다. 양가의 크고 작은 경조사나 주거 문제와 같은 공동의 문제부터, 각 개인의 커리어와 직장에서의 크고 작은 문제와 고민에 대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연애 중엔 헤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 그래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되는 것 같다. 의아하거나, 반대하고 싶은 상대방의 결정이 있더라도 ‘그래, 너의 선택과 책임이지’라고 은연중에 생각한다. 상대방의 일상이 조금 변하더라도, 내게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 나는 한 발짝 떨어진 거리에 서서 응원한다. ‘적당히’ 함께 책임지는 관계, 수틀리면 헤어짐이라는 방법이 있다.


결혼은 다르다. 상대방의 결정이 나에게 훨씬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휴직을 하게 되면 당장의 수입이 절반이 된다거나, 가구를 사면 함께 조립해야 한다거나, 회사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거나 손해를 보게 될 때 함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나는 가장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다. 그래서인지 더 적극적으로 서로의 문제와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내게도, 내 인생에 아주 중요한 일이니까. 잘못된 결정을 하면 내게도 치명적이니까.

2021년 말, 부부 성장 워크샵 중

협력의 경험들

중요한 미팅을 앞둘 때

혼자 멘탈 시뮬레이션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특히 중요한 미팅을 앞두거나 긴장하게 만드는 상대가 있을 때, 낯설고 어려운 경험일 때 그렇다. 그럴 때 배우자의 도움을 받아 부담되는 상대방의 연기를 부탁하고 역할극을 하기도 한다. 기억에 남는 역할극은 연봉 협상 면담과 평가 면담이었다.


평가 면담 역할극에선, 평가자 입장에서 ‘이 사람이 영향력 있는 성과를 낸 것 같은지’, 연봉 협상 면담에선 ‘이 사람의 연봉을 올려줘야겠다는 마음이 드는지’를 생각하고 피드백한다. 그리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계속 반복한다.

신기한 건, 역할극 전에 아무리 말로 ‘이렇게 이야기하면 되겠다’라고 정리해도 상황에 들어가면 전혀 다른 행동을 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연습이 끝나면 아내와 이런저런 소감을 나눈다. 꼭 연습이 필요한 거구나 싶기도 하고, 실제 행동에 대한 메타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화하다 보면 종종 사람들의 다짐을 듣게 되는데, 역할극 경험을 떠올리면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 사람은 이 말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까?’


글을 쓸 때

글쓰기도 일종의 문제 해결이다. 목적과 결과가 있다. 이메일을 쓸 때 답변을 받는 게 목적인지, 블로그 글을 쓰더라도 조회수라던가, 글을 읽고 독자가 느끼는 감정이라던가 나름의 목적이 있다.

글쓰기를 함께 쓸 때가 많다. 소극적인 방법으로는 한 사람이 쓰고 피드백을 받고 첨삭하며 고치는 방법도 있고 때론 한 화면을 보면서 아예 같이 쓰기도 한다. 이 글도 마찬가지.


교육을 듣거나 과제를 할 때

교육을 들으면 그 내용을 저녁에 아내에게 바로 설명해 본다. 이 과정에서 내가 제대로 소화한 지식을 가리게 되고, 다 이해한 줄 알았지만 모르는 내용을 발견한다. 이때 생긴 질문을 다시 교육 과정에서 물어보거나 좀 더 공부한 뒤에 주말에 한번 더 공유한다. 동일한 내용을 그 주에만 벌써 3~4번 반복해서 공부하게 된다.


과제나 훈련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AC2 교육을 들을 때는 코칭, 상담 등 직접 해보고 연습해야 할 일이 많았다. 이 때도 1차로 실습할 대상이 배우자였다. 과정 후에도 코칭 연습을 이어갔다.


좋은 부부란 뭘까?


둘이 만드는 새로운 방향성

두 명이 함께 의사결정을 하게 되는 경우 혼자 할 때보다 실패 확률이 적어지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친구에게 메뉴 제안을 하고 싶거나, 회사 동료 집들이 선물을 할 때 혼자서 한 결정보다 나았다. 한 사람이 아이디어를 내면, 다른 한 사람을 설득한 아이디어이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적어진다. 게다가 아내는 나를 잘 알고, 나를 응원하면서 힘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라서 더 힘이 난다.


둘임에도 이렇게 다르다. 이야기하기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정보가 생긴다. 다양성의 효과와 우연이 발휘되는 순간을 보면서 협력의 위대함을 느낀다. 아내와의 협력 경험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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