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곁에 있다면 안심이에요
올해 남편의 생일카드를 쓰면서 그가 마흔 중반쯤 되는 모습을 그려봤다.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어떻게 변했을까. 지금보다 더 주름진 얼굴에 여전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고 있겠지. 그리고 그의 곁에 있는 나는 어떨까. 우리 모습은 어떨까. 상상하면서 미소가 지어졌다. 이 사람과 함께 할 긴 시간이 기대 됐다. 지금까지 해 온 것보다 더 많은 결정들을 해나갈 것이고, 대화가 쌓일 것이다. 그러고 나면 우린 어떤 모습일까.
기분 좋게 멍하니 상상을 하다가 깨달았다. 그와 부부가 되고 난 후 미래를 기대하는 날이 더 많아졌다는 것. 10년, 20년 후 미래를 생각하면 두려운 마음이 더 컸었는데 이제 이렇게 평온하게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니. 큰 변화였다.
그날 쓴 생일카드에서 남편에게 또 고백했다. “여보는 내 용기예요.” 새로운 도전 앞에서 망설이고, 두려워하던 순간들에 그가 말해준 다른 가능성, 응원의 말들 덕분에 마음을 달리 먹을 수 있었다. 브런치 글쓰기도 그의 지지 덕분에 시작했다. 글이 읽히길 바라면서도 꺼내지 못할 때, 그가 첫 독자가 되어주었다. 지인과 회사 동료들에게 아내가 재밌는 글을 쓴다고 보여주며 영업을 해주기도 했다. 내가 멋지다고 인정하는 사람이 나를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니 큰 힘이 됐다. 글을 쓰고 나서 의도가 잘못 전해질까 봐 걱정될 때면 남편에게 글을 보여주고 감상과 의견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그는 회사일을 하는 것처럼 최선을 다해 피드백을 주곤 했다. 덕분에 내 글을 한 발짝 떨어져서 볼 수 있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차츰 독자들이 늘어났다. 읽는 이들의 반응에 쓰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재미가 붙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글을 알리기 시작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 인스타그램으로 업로드하며 지인들에게 글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또 다른 변화가 생겼다.
"쌤! 신혼일기 재밌게 보고 있어요!" 오랜만에 만난 전 직장 동료들에게서 글로 안부인사를 받았다. 친구들도, 가족들도 만나면 글 얘기부터 했다. 결혼 후 글을 쓰기도 했고, 부부 생활에 대한 글들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우리 부부의 일상에 대한 질문도 더 많이 받게 됐다. 질문에 답변을 하다 보면 그게 어느새 글 한편이 되어 있었다. 뿌듯하고 행복했다.
보여주는 글을 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써온 글들을 보니, 결혼생활 이야기 비중이 가장 컸다. 최근 내 삶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이 남편이라는 걸 보여주는 거 아닐까. 얼마 전 남편도 결혼 후 달라진 삶을 주제로 글을 썼다. 그의 글을 보고 놀랐다. 나만큼 그가 내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게 느껴져서. 서로에게 서로가 배어 있는 게 글에서 느껴졌다. 기뻤다. 사랑하는 사람의 일부가 되어가는 건 뭉클하고 감동적이었다.
매년 서로 연결되는 뿌리를 늘려나가는 기분이 든다. 자신의 성향, 경험, 배움을 나누면서도 같이 자라나고 있는 우리를 느낀다. 그와 살아가면서 그와 나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변해갈지 기대된다. 같이 여러 해를 보내다 보면 또 어떤 일들이 있을까? 무슨 일이 일어날진 몰라도 곁에 그가 있다면 안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