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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예예 Jul 31. 2022

제주에서 추천하는 딱 한 곳

순환의 에너지를 믿는 곳, 제주 901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구매 기준은 '가치'다. 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를 보고 구매한다. 나의 소비가 어떤 가치에 이바지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만드는 이들이 어떤 꿈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들이 믿는 가치를 동의하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소비하고 싶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 가장 자랑하고 싶었던 곳은 제주 901이다. 제주 901은 브런치카페, 요가 스튜디오, 스테이로 구성되어 있는 공간이다. 스테이도 하고 요가 수업도 듣고 싶었지만 일정이 안 맞아서 브런치카페만 다녀왔다. 맛도 공간도 서비스도 모든 것들이 속속들이 멋졌지만, 함께 이 공간에 머무르는 손님들까지 멋졌다. 역시 좋은 공간에는 좋은 사람들이 모인다.

제주 901 블로그


제주 901의 멋

제주 901에서 '901'의 뜻은 0에서 시작된 숫자가 9가 되어 차면 0으로 비우고 다시 1로 시작하는 순환을 의미한다. 9로 가득 찬 사람들이 와서 0으로 비우고 1로 시작까지 하고 떠나는 공간. 그래서 그런지 공간마다 순환의 한 단계를 담당하고 있는 것 같다. 쉼으로 비우는 스테이, 식물성 자연 효소로 먹으며 채우는 카페, 몸과 마음을 살피고 채우는 운동공간. 쓰다 보니 카페만 다녀온 것이 또 아쉬워진다. 카페 곳곳에서 제주 901이 지향하는 가치들을 엿볼 수 있었다. 카페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적혀있는 '몸과 마음을 함께 비우고 살피는 시간'이라는 문구, 큰 규모는 아니지만 바람이 통하는 길, 소박하게 꾸민 화장실, 다양한 식물들과 담백한 음식까지. 같이 간 남편이 물티슈가 필요해지자 "여기는 물티슈 안 쓸 것 같지 않아?"라고 물어서 피 씩 했다. 온 공간이 '여기는 자연의 순환을 지향하는 곳이에요.'라고 속삭이는 게 그에게도 들렸나 보다. 이곳이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볼 수 있었던 게 인상에 남는다.



제주 901의 맛

카페 901의 메뉴들은 모두 동물성이 함유된 재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식물성 원재료만을 사용한 음식을 만든다고 한다. 합성 감미료라든지 정제된 식품 첨가물도 쓰지 않아서 음식 맛이 썩 좋다. 우리는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은 샐러드와 샌드위치, 디톡스 스무디를 먹었다. 남편이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한 입씩 먹더니 어서 먹어보라고, 좀 다르다고, 아무튼 맛있다고 서두를 정도였다. 생기 있는 맛이었다. 물론 얼마나 좋은 재료로 만드는지 알고 먹는 것이기도 했지만 모든 음식이 신선하고 향긋했다. 절로 기분이 좋아진달까. 큰 창으로 볕도 충분히 들어오고 저 멀리 녹녹한 풍경이 들어오는 것도 내부와 바깥이 이어진 것처럼 조화로웠다.


(좌)퍼플파워볼 (우)샌드위치세트메뉴


제주 901에서 들은 옆자리 테이블 대화

본의 아니게 옆자리 테이블 대화를 듣게 됐다. 40대쯤 되었을까 싶은 여성과 20대쯤으로 보이는 여성 두 분의 대화였다. 들리는 호칭으로 추측할 때 이모와 조카 사이 같았다. 차분하게 이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 목소리가 큰 것도 아니었는데 내용이 재미있어서 그런지 잘 들렸다. 대화에 끼고 싶을 정도로 좋은 대화였다. 카페나 식당에 가면 두 사람 다 휴대전화만 보고 있거나 큰 목소리의 대화, 가십성 대화만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옆 자리 테이블에 있었던 두 여성의 대화는 달랐다. 살아온 지혜를 말하는 이모도, 집중해서 듣는 조카도 모두 멋져 보였다. 남편도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눈빛을 마주치고 카톡을 주고받았다.

그: ‘옆자리 대화 너무 좋아’

나: ‘맞아 맞아’

그: ‘나 껴달라고 할 뻔했어!’

*아래는 옆자리 테이블에서 이모로 추측하는 분의 말이다.


주제 1. 다름이 주는 새로움과 재미

“나는 다르다는 게 좋아. 아들을 키우면서 ‘이 친구는 다른 아이들이랑 이런 점이 다르구나.’ 하거든. 그게 참 재밌어. 모두가 다르다는 게 새롭고 재미있는 것 같아. 그리고 아들도 친구들한테 다른 엄마들 얘기를 듣고 엄마는 이런 점이 다른 엄마들이랑 다른 것 같다고 얘기하더라고. 걔도 나를 알아가고 있는 거지. ‘우리 엄마는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같아지려고 애쓰는 걸 보면 좀 안타까워. 다름이란 게 참 새롭고 재밌는 건데 말이야. 다름을 바꿔야만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모든 것들이 불안해지기 쉬운 것 같아.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더 어려워져.”


주제 2. 좋은 사람들 간의 연결이 가져다주는 것

“결국은 곁에 좋은 사람들이 있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좋은 경험들. 명상을 하고 요가를 하고 좋은 전시를 가고 그런 것들이 다 지인분들을 통해서 소개받거나 혹시 내가 연락해도 되냐고 해서 시작하게 된 거거든. 좋은 것들을 서로 나눌 수 있는 거. 나누다 보면 또 좋은 것들이 늘어나고. 좋은 사람들을 가까이하는 게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 같아.


무심하고 조화롭게 놓인 식물들


여행을 한다고 했을 때 기대하는 것 중 하나는 좋은 대화다. 여행지에서 보고 느낀 좋은 것들을 대화 주제로 삼아 서로가 느낀 감흥을 나누면 그 여행은 더 풍성해진다. 몸도 마음도 여유가 있으니 흡수력마저 좋다. 보고, 듣고, 나누었던 것들로 내 안을 채운다. 여행 메이트였던 남편과 나누었던 모든 대화들이 좋았지만, 카페에서 들었던 옆 테이블의 대화도 참 좋았다. 아직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좋은 사람들 곁에 그와 결이 비슷한 좋은 사람들이 있듯이, 가게나 상점 같은 공간도 비슷한  같다. 비우고 채우는 순환의 힘을 믿는 공간에는 그와 어울리는 손님들이 있었으니까. 여행지에서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맛있는 음식과 멋진 공간과 지혜로운 대화를 들을  있어서 행복했다. 제주 여행을 앞두고 있는 분들에게   곳을 추천하라면, 제주 901 추천하고 싶다. 어떤 형태로건 비움과 , 순환의 에너지를 채울  있을 거라 기대한다.


탁 트인 창과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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