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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예예 Aug 05. 2022

사내 글쓰기 모임 시작한 이유

회사 동료랑 이런 얘기가 가능한가?

Intro

시작은 치킨이었다. 각자 다른 팀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들과 저녁으로 치킨을 먹으러 나왔다. 우리가 갔던 치킨집은 유난히 음식이 늦게 나오는 편이었는데, 덕분에 좀 더 대화가 깊어졌다.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하면 대화 주제도 음식으로 바뀌기 쉽고, 집중도도 떨어졌을 테니까. 시끌벅적한 치킨집에서 치킨도 없이, 술도 없이 했던 이야기는 30분 정도 이어졌고, 그 끝에는 글쓰기 모임이 남았다. 우리 세명은 당장 다음 날부터 글쓰기 모임을 하기로 했다.  


글쓰기 모임 이름은 꽤 거창하다. '세상을 바꾸는 글쓰기 모임' 줄여서 세. 바. 모. 아직 어떻게 세상을 바꿀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세상을 바꾸고 싶은 세 명이 글을 쓰기로 해서 지은 이름이다. 시작은 치킨이었고, 끝은 글쓰기 모임이었다면 중간은 하나의 질문이었다.


"앞으로 하고 싶은 게 뭐예요? 시키는 거 말고 스스로 하고 싶은 거요."


1

동료 K는 호기심 많고 엉뚱한 동시에 궁금한 것과 하고 싶은 일에 집요함을 발휘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앞으로 자신에게 남은 날들을 세고 있다고 말하며 사용하고 있는 어플을 보여줬다. 그가 보여준 휴대폰 화면에는 항목별로 남은 날들이 떠있었다. '35세까지 남은 날 D-000', '60세까지 남은 날 D-000'. D-Day는 항목별로 나뉘어 일 단위로 카운트되고 있었다. 남은 시간을 생각할 때 연 단위로는 생각해봤어도 일 단위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연으로 치자면 한 자리 수로 셈할 수 있는데 일 단위로 세보니 세 자릿수가 되었다. 숫자는 더 커졌는데 더 긴박하게 느껴졌다. 한 해보다 하루가 더 빨리 간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늘만 해도 그다지 특별할 거 없는 하루를 보냈는데 이런 하루를 100번 정도 보내면 3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뒤라니. K의 말대로 우리의 젊은 날은 얼마 안 남은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방법으로 시간의 소중함을 상기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흔한 듯 참신한 방법이었다.


숫자들을 보며 K의 건너편에 앉은 C도 놀란 눈치였다. C는 질문가였다. 남들보다 이유가 더 중요한 사람, 이유를 자주 묻는 사람이었다. 예상대로 C는 K에게 물었다. "이 날짜들을 왜 세는 거예요? 이유가 있어요?" K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제가 생각하는 인생의 중요한 분기별로 날을 세봤는데 너무 얼마 안 남았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세기 시작했어요." 그는 자기에게 남은 날을 세면서부터 일어난 변화를 말했다. 자려고 누워서도 내가 정말 원하는 걸 하려면 지금 어떤 능력을 키워야 할지, 어떤 경험을 해야 할지 고민들이 둥둥 떠오른다며 마음이 급해졌다고 했다. 조급한 마음만 남은 건 아니었다. 그의 말의 요지는 '내가 정말 원하는 것'에 있었다.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그는 그냥 사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고, 그럼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을 무엇인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K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C와 내게 물었다. "두 분은 앞으로 하고 싶은 게 뭐예요? 시키는 거 말고 스스로 하고 싶은 거요."


2

C와 나는 순간 당황했던 것 같다. 이렇게 순수한 질문, 너무 오랜만이었다. 회사에서 받게 되는 '뭘 하고 싶냐'는 질문은 내가 회사에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지를 묻는 말이었다. 회사 안에서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 찾아야 하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K의 질문은 회사 안이 아닌 바깥으로 향해 있었다. 그는 자기가 한 질문에 다른 질문 하나를 덧붙였다. "내가 세상에 주고 싶은 가치요. 세상을 어떻게 하고 싶다든지?"


3

찬물 한 모금을 들이키며 질문가 C가 K에게 먼저 되물었다. "K님은요?" K는 약간 망설이고 눈치를 보는 듯하다가 말했다. "헛소리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음 전 세상을 바꾸고 싶어요." 그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정치인의 입에서만 들었던 말이고, 한 번도 진정성을 느낀 적이 없는 대사인데. 그는 진짜였다. 오래 고민하고 생각해 온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진정성이었다. C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꿈꾸는 사람을 너무 오랜만에 본 데다가,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다는 것에 대한 놀람이자 환호가 나왔다. "와. 정말 멋지네요. 진짜로요. 정말 멋져요!" 멋진 꿈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저렇게 큰 꿈을 진심으로 꿀 수 있는지, 놀라웠다. C도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꿈을 어떻게 키워가고 있냐는 물음으로 대화는 이어졌고, 그러던 중 마침 치킨도 나왔다. 치킨을 먹으면서 계속 우리는 미래를 얘기했다. 미래를 위해서 우리는 지금 어떤 시도를 해 볼 수 있을지, 어떤 역량을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들을 다 같이 풀어놓았다.


4

 사람의 고민들은  곳에서 만났다. 셋의 공통점은 배움을 엄청 좋아하고 즐긴다는 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인풋은  충분한 상태였다. 우리의 갈망은 아웃풋에 있었다. 우리 모두 변화를 원했다. 그동안 배우고, 듣고, 익혔던 것들이 안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무언가 되었을  같긴 한데, 무엇이 되었을까? 확인해보려면 글쓰기 만한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알고 보니  사람 모두 글쓰기 욕망이 있던 사람들이었다. 질문가이자 행동가 C 먼저 글쓰기 모임을 하자고 제안했고, 나는 C 말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K 망설임 없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지잉"  명의 휴대폰이 함께 울렸다."세바모, 7 20 수요일, 오전 8:30"C 나와 K에게  자리에서 바로 보낸 일정 메일이었다.  

 

Outro

어떤 글을 쓰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사실 아웃풋이 나중에 글이 아닌 다른 것으로 나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모임 이름도 세. 바. 모 니까. 세상을 바꿀 준비를 하는 방법으로 우선은 글쓰기를 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쾌감이 있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보면 머릿속에 있던 것 그 이상의 것을 글로 짓게 된다. 분명 생각하고 있었고,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지만 미처 모르고 느끼지 못하고 것들을 글을 쓰면서 발견하게 된다. 짜릿하다. 우리의 글짓기는 어떤 발견의 여정이 될까?


빛나라! 우리의 앞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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