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가 진짜였고, 어디까지가 가짜였을까.
-정말 괜찮겠어? 나 그냥 휴가 낼까?
“괜찮아요. 민서도 같이 가준다고 했고, 처음 가는 곳도 아닌데요, 뭐.”
-내가 걱정돼서 그러지. 민서 씨를 못 믿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시은은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엄마 장례식을 함께 해준다고 당직도 휴가도 이미 한차례 바꾼 걸 모르는 것도 아닌데.
걱정이 가득 담긴 얼굴이 눈앞에 그려질 만큼 선명히 건네지는 애정에 시은은 기차를 탈 때보다 한결 편안한 얼굴로 의자에 몸을 기댔다.
“괜찮아요, 정말. 그냥 엄마 고향에 한번 가보고 싶어서 다녀오는 건데요.”
-가까우면 퇴근하고 같이 가는 건데.
어머니 고향이 B시인지 처음 알았네.
전화기 너머로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에 시은 역시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게.
그래도 가족인데 엄마 고향이 어딘지도 몰랐네요.
속으로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시은은 다시 그를 안심시킨 후 전화를 끊었다.
“야, 눈꼴시어서 못 듣겠다. 목소리에 꿀이 뚝뚝 떨어지네, 아주.”
전화가 완전히 끊긴 걸 확인한 민서가, 옆자리에서 팔을 벅벅 긁었다.
“좋은 사람이야.”
“두 번 좋았다가는 내가 닭이 되겠다, 닭. 적당히 좀 하시라 그래. 주변 사람들도 생각해야지.”
질렸다는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은 민서는, 이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됐다. 둘이 좋다는데 뭐라 그러겠냐. 내가 네 엄마도 아니고.”
손을 내저으며 의자에 털썩, 소리가 나게 몸을 묻은 민서는 이내 무언가 생각하듯 진지한 얼굴을 했다.
“어머니 하니까 생각난 건데, 진짜 생각할수록 이상하긴 해.”
“뭐가?”
“그냥, 다. 그렇게 마음에 들어 하신 찬혁 오빠한테도 아무 말씀이 없으셨던 건 둘째치고, 어떻게 너랑 사는 내내 고향 얘기, 입양 얘기 같은 걸 한 마디도 안 하셨을까?”
맨날 내가 너 어머니랑 안 닮았다고 하면 넌 아버지 닮아서 그렇다고 하셨는데.
민서의 말에 시은도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엄마. 나도 아빠가 있긴 했어?’
‘그럼. 예전에 집이 불에 타서 사진이 하나도 없긴 한데, 아빠가 있었지. 아빠 없이 네가 어떻게 세상에 나오니?’
시은은 아빠에 대해 물으면 언제나 그렇게 답하곤 하던 엄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다정하고, 친절하고, 밝게 웃을 줄 알던 아빠.
다른 사람을 구하려다 차에 치여 돌아가신, 세상 누구보다 멋지고 용감한 아빠.
그런 아빠의 이야기를 할 때면 엄마의 얼굴이 슬퍼 보여서, 어느 순간부터 시은은 아빠에 관해 묻기를 그만두었다.
“예전에 너희 집 불나서 사진 다 탔다고 하셨었는데, 그런 거치고는 그보다 더 오래전 사진은 가지고 계시는 거 같고. 사진 속에도 아버님처럼 보이는 분은 안 계시고.”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한 거투성이란 말이지.
민서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게. 어디까지가 진짜일까.”
그 말에 시은 역시 나직이 중얼거렸다.
과연, 자신의 삶은.
그리고 엄마의 삶은.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가짜일까.
고민이 깊어가는 가운데, 기차가 조용히 B시에 도착했다.
도착한 B시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여행을 빌미 삼아 몇 번 오기도 했고, 업무상 한두번 정도 출장도 왔던 곳인 거 같은데.
그때도, 이렇게 조용한 느낌이었나?
이상하게 낯설게 느껴지는 역 주변을 가만히 둘러보던 시은은, 천천히 걸음을 뗐다.
“일단 보육원부터 가보자.”
그런 시은의 뒤를 따르며 민서가 가방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
“그 보육원, 알고 보니 이름이 바뀌었더라고. 워낙 오래전에 바뀌어서 검색해도 안 나왔던 거야.”
“……넌 그거 어떻게 알았어?”
“다 아는 수가 있지~”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걸 대체 무슨 수로?
시은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민서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수첩을 흔들었다.
“자료 조사는 온라인, 오프라인 가리면 안 된단다, 친구. 그럼 가볼까?”
어깨를 으쓱한 민서가 시은을 앞질렀다.
어딘지 비장한 표정으로 그녀가 시은에게 손짓했다.
시은 역시, 그런 민서를 따라가며 저도 모르게 얼굴을 굳혔다.
부디, 제가 그 모든 진실을 감당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