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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걸쇠 06화

경고

유독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by 정윤

민서가 찾아낸 보육원은 역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시내 외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버스와 택시를 갈아타며 1시간쯤 달리자 점점 시내와 동떨어진, 아무것도 없고 고요한 풍경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어쩌면 살풍경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만큼, 고요하고 외진 곳.

그전에는 시내에서 조금 떨어지긴 했어도 이렇게 멀지는 않았다고 했던 거 같은데.


시은은 민서가 전해준 정보를 되뇌며 창밖으로 스쳐 가는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젊은 아가씨들이 기특하네. 보육원으로 봉사도 다니고.”

“하하, 뭘요. 이 정도는 많이들 하시던데요.”

“아이고, 안 그래요. 여기 보육원은 자리 옮긴 다음부터 봉사자들도 뜸했다우.”


시은이 창밖을 보는 동안, 민서는 택시 기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보육원으로 봉사를 간다는, 뻔하지만 그다지 어색하지 않은 변명을 앞세워.


“여기가 그래도 시내 근처에 있었는데, 애 하나가 없어진 다음부터 봉사자도 안 받기 시작하더라고. 그러더니 아예 자리를 옮겼어.”

“아, 그래요? 저는 처음부터 여기로 와서 그런 이야기는 잘 몰랐어요.”

“다 옛날 얘기지, 뭐. 시내에 있을 때는 그 없어진 애기 엄마가 하도 난리를 쳐서 고생한 모양이더라고.”


여기도 아는 사람만 알지, 인터넷에는 나오지도 않아.

기사님은 안됐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그래도 아가씨들 복 받은 거요. 내가 이 동네 토박이라 여길 알지, 아니었으면 기사들이 네비 찍느라고 애 좀 먹었을걸.”

“그래요? 정말 다행이네요. 하긴 저번에 왔을 때도 기사님이 길을 못 찾아서 헤매시더라고요.”

“애먹었겠구먼. 여기는 아는 사람들도 잘 안 알려줘. 그 애기 엄마가 아직 시내에 살고 있거든.”


기사님이 못마땅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애 없어진 게 어째 선생님들 탓이야. 자기 잘못한 건 생각도 안 하고…….”


그러면서 덧붙인 말에, 시은은 고개를 홱,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없어진 아이. 선생님을 탓하던 엄마. 아이를 놓친 엄마.

그리고, 내막을 아는 듯 중얼거리는 택시 기사.


“아이가 엄마를 싫어했나 봐요.”


두근거리기 시작한 심장소리가 목소리를 타고 흘렀다.

시은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고자 큼, 하고 작게 헛기침을 했다.


“으응, 뭐. 요즘이야 신고하면 되고 사람들이 알아서 도와주기도 하지만, 옛날에는 별로 그런 게 없었잖수.”

그, 아동학대 같은 거 말이야.

기사님이 백미러로 힐긋, 시은을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애가 도망갈 만도 했지. 그 엄마가 얼마나 애를 잡아대던지. 그때 그 동네 살던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


넘의 집 일이니까 신경 안 쓰려고 했지만.


아이를 학대하던 엄마. 도망간 아이.

그게 얼마나 오래된 일인지, 얼마나 떠들썩하던 일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시은은 어쩐지 그 이야기에서 신경을 거둘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서, 위험한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바짝 마른 입술을 훑었다.


“뭐, 나도 어릴 때 얘기라 딱 거기까지만 들었지. 그 애기가 잘 컸으면 지금쯤 아마…….”


힐긋, 백미러로 다시 시선이 날아들었다.


툭, 던진 것 같은 시선이 아니라, 어쩐지 살펴보는 듯한 표정.

반응을 떠보고, 무언가를 알아내려는 것 같은 표정.


말이 끊긴 순간, 시선 끝으로 옅은 긴장이 서렸다.

정적 속에 옅게 깔린 긴장에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고.


무언가 벌어지려는 순간.


민서가 재빨리 움직였다.


“어, 도착했네요! 감사합니다, 기사님!”

“어? 어어, 그러네. 아가씨들이랑 이야기하느라 도착한 줄도 몰랐구만.”


그 표정 너머로 서서히 굳어지던 공기가 한순간에 풀렸다.

다시 허허로운 동네 택시 기사의 모습으로 돌아간 기사님께 요금을 건네고, 시은이 먼저 차에서 내렸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조심히 가세요.”

“어어, 아가씨들도 봉사 잘하고, 돌아갈 때 볼 수 있으면 또 보자고.”


가까스로 긴 숨을 내쉬는 시은을 제 등 뒤로 숨긴 채, 민서가 서둘러 택시를 보냈다.

열심히 손까지 흔들며 멀어지는 택시를 보던 민서는, 띠링, 하고 울린 택시 어플에 ‘다음에는 만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입력했다.


“한 번만 더 만나면 신상까지 털 기세시네.”

“말씀이 좀 많으시긴 하더라.”

“좀? 야, 좀? 조금만 더 있었으면 우리 나이 물어보실 뻔했어.”


아무튼, 덕분에 좋은 정보 얻었네.

중얼거린 민서가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고개를 들었다.


‘사랑마을 육아원’.


“이름을 이렇게 바꾸니까 못 찾지.”


민서가 작게 중얼거리며 천천히 커다란 철문을 밀었다.


끼익, 열리는 문소리가.

꼭 천둥이 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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