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놀룰루 경유시간은 단 5시간이긴 하지만 수많은 인터넷검색과 상상 속시뮬레이션을 돌려본 끝에 충분히 의미 있을 만큼의 짧은 여행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예전에 한번 왔었을 때의 기억을 되살려보면 사실상 와이키키해변에만 앉아있어도 하와이의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하다는 기억이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와이키키해변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궁금했던 건 역시 부모님의 감상이었는데 역시나 아버지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말씀을 하셨다.
- 좋긴 한데제주도랑 다를게 뭐냐?
- 네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충격은 적지 않았다.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모두가 여유롭고 행복한 바이브를 물씬 풍기고 따스한 햇살에 적당한 기온과 부드러운 바람이 부는 완벽한 해변인데 사실 제주도도 그에 못지않다는 것이 문제긴 하다.
제주도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그야말로 전 세계인들이 해변을 즐기기 위해 글로벌하게 모여있다는 것인데 부모님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으시니 별 수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전 세계 어느 곳을 가도 유명 관광지마다 북적거리는 한국인들이 하와이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다. 분명히 적지 않은 숫자일 텐데 한국인이 아닌 척 분장이라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시도 때도 없이 시끄럽게떠들어대서 눈살 찌푸리게 하는 중국인들도 하와이에서는 보기 어려웠다. 명품을 처바른 게 아닌 진짜 고급진 복장에 여유롭고 세련된 중국인들을 보게 되는 것이 처음 하와이에 갔을 때 굉장히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다시 찾은 하와이는 여전히 여유롭고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비유해 보자면 우리나라 가을철 단풍시즌에서의 그 압도적인 아름다움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벚꽃시즌에서의 만개한 벚꽃들도 아름답지만 단풍시즌에서의 그 압도적인화려함과는 비교하기 어렵다
압도적인 아름다움에는 사람들도 어쩌질 못한다. 성질이 급하던 사람도 누그러질 수밖에 없고 못된 짓을 하려던 사람도 웬만하면 좀 미루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산에서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를 버리던 사람들도 아름다운 단풍 속에서는 현저하게 그 숫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그렇게 되면 아름다운 곳은 더욱 아름다워지면서 선순환된다.
하지만 한반도는 사계절로 인해 아름답다가 춥다가 평범하다가를공평하게 반복하게 되는데 태평양 한복판의 하와이섬에는 계절이 없으니 아름다움만 계속된다.
와이키키 해변에 맥도널드가 하나 있는데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아무튼잠시 쉬어가기에무난하다고 생각한다. 패스트푸드를 드시지 않던 부모님도환갑이 지나실 때쯤부터 가끔은 햄버거와 돈가스 그리고파스타도드시기 시작했다.
문제는 맥도널드에 화장실이 있다는 택시기사의 말을 믿은 것이 잘못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와이키키에서 공중 화장실을 찾아 정신없이 해변을여기저기 뛰어다녀야 했다. 결국엔 찾아내서 부모님을 모셔다 드리긴 했다.
엄청난 각오와 정신무장을 하고 왔기에 이런 것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맥도널드 직원에게 따듯한 물 한잔을요구하시는 어머니를 만류하는 것도 전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코로나 이후 미쳐버린 물가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공항 택시비 60달러는 그렇다 치고 맥도널드에서 별로 많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30달러 넘게 결제한 것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어차피 뉴욕 여행을 마치고 다시 돌아올 곳이기에 크게 욕심은 부리지 않고 그냥 해변에 앉아서 쉬다가 공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어머니는 피곤하신지 말씀이 없으셨고 원래 말씀이 없으신 아버지는 그냥 풍경을 바라보기만 하셨다.
생각해 보니 조금 불편한 점이 있으셨더라도 회사 눈치 보며 보름이 넘게 휴가를 내고 가이드로 따라온 아들에게 뭔가를 더 해달라고 하시긴 어려웠을듯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처음 하와이에 도착했을 때 어떠셨냐고 물어보긴 해야 되겠다.
다시 하와이로 돌아올 일정에 맞춰서 하룻밤을 묵어갈 호텔은 이미 예약해 놨고 렌터카도 특별히 머스탱 컨버터블로 예약을 마쳤다. 오픈카를 예약했다고 말씀드리니 의외로 두 분 다 매우 기뻐하셨다.
이제 다시 호놀룰루 공항으로 돌아가서 뉴욕행 국내선을 타게 되었다. 걱정반 근심반으로 가슴 졸이는 비행을 맞이했다. 뉴욕은 꼭 좋아하셔야 될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