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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리브 Aug 29. 2024

듣고 싶은 이야기(상)






타렉이란 녀석을 알게 되기까지 사실 나는 그곳에서 친구라고 부를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 기간 동안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아무리 생각을 해내려 해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는 사람도 없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은 아시아인을 썩 내키지 않는 눈치다. 아마도 나는 길을 걷고, 상점에 들려 뭔가 먹을 것을 사서 기숙사까지 가져오고,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하루 종일 창 밖을 바라보곤 했던 것 같다.


창 밖에는 아무리 쳐다봐도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을 만큼 넓은 들판이 있었고, 푸른 나무들과 잡초들이 보란 듯이 잘 자라고 있었다.


나는 전화기는 가지고 있었지만, 전화벨이 울리는 적은 거의 없었다. 가끔 한국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올 뿐이었다. 기숙사의 몇몇 한국 학생들은 한인 교회를 통해 모여서 놀러 다니기도 하고 커플이 탄생하기도 해서 나름 즐겁게 지내는 듯 보였지만 나는 왠지 잘 어울리지 못했다.


나는 그저 어학원가서 수업을 듣고 도시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다가, 기숙사로 돌아와서 밥을 짓거나 감자를 삶거나 해서 저녁을 대충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싸구려 맥주(물보다 값이 싼 맥주가 존재한다는 얘기를 해도 아무도 믿지 않았다)를 취할 때까지 마시다가 쇼팽의 왈츠를 틀어놓고 잠이 들곤 했다.


넓은 공과대학 캠퍼스 구석에 덩그러니 놓인 학생 기숙사는 놀랍도록 저렴한 가격에 어느 정도 청결하고 괜찮은 곳이었지만, 왠지 모를 싸늘한 분위기가 건물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물론 모든 방에는 이런저런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이상하리만큼 기숙사에 사는 다른 학생과 마주치는 일 매우 드물었다.


타렉은 튀니지인이며 아랍인이자 북아프리카인이었는데 나중에 어느 것으로 불리는 것이 더 좋으냐고 물어봤을 때, 그는 아랍인으로 불러 달라고 했었다. 녀석은 나와 닮은 점이 많았다. 유학을 보내 줄 만큼 집안 형편이 여유롭지 않았지만 그런건 신경쓰지 않고 어떻게든 혼자 힘으로 하고 싶은건 해보는 편이었다. 그리고 운 좋게 많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우리는 나이도 같았고 키도 비슷했다. 무엇보다 톨스토이 같은 고전을 항상 읽고 있는 점이 비슷했다.


나도 가진 돈이 충분하지 않았지만 녀석은 지독하리만큼 돈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녀석에게 먹을 것을 주고 싶어 했는데 그는 한사코 거절했다. 그렇지만 내가 그의 기숙사 방에 놀러 갈 때마다 (실제로 갈 곳이 학교와 마트와 그 녀석의 기숙사방 정도밖에 없었던 것 같다) 어떻게든 내가 먹을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무렇지 않게 도마와 칼을 꺼내서 마늘을 쪼개기 시작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방구석구석에서 양념과 재료들을 꺼내 섞어서 튀니지식(으로 추정되는) 요리를 만들어 주곤 했다. 녀석은 정말 돈이 없어서 재료가 형편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맛이 좋았다.


그는 음식을 많이 먹지 않기 때문에(정말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언제나 내가 먹는 동안 녀석의 자랑인 낡은 야마하 키보드를 꺼내서 연주를 하곤 했다. 키보드를 포함해서 녀석의 방에는 텔레비전이나 요리 기구 등의 별의별 진귀한 기구들이 많았는데, 친구들이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할 때 주고 간 것들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그 많은 물건들은 항상 좁은 방 이곳저곳에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건물 자체가 워낙 오래된 탓에 방이 깨끗하다고는 할 수는 없었지만 녀석의 방은 적어도 깔끔했다. 녀석에 방에 가면 뭔가 가지런해지는 기분이 들곤 했다.






어학원의 중간 테스트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난 뒤, 나는 마트에 가서 몇 달 동안 바라보기만 했던 마티니 한 병을 샀다. 그리고 기숙사로 돌아온 뒤, <급한 일이 없다면 내 방으로 와 주면 좋겠다>라고 쪽지에 적어 녀석의 방문 밑에 밀어 넣고 돌아왔다. 타렉과 내가 사용하는 돈이 들지 않는 통신 수단이었다. 녀석도 나도 걷는 것을 좋아하는 데다가 종이에 펜으로 할 말을 적는 일은 의외로 즐거운 일이었다.


타렉은 원래 술은 마시지 않지만 좋은 친구와 함께라면 가끔 취하도록 마시곤 한다고 했었다. 유리은 원래 두 개였는데 그중 하나를 실수로 깨트렸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에 술을 따라서 번갈아 가며 한 모금씩 홀짝거리며 마셨다. 말로 표현할 방법은 없지만 그동안 마셔 본 술 중에 가장 맛이 좋았다. 한참 술을 마시다가 녀석이 문득 말을 꺼냈다.



“우리가 이런 멋진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는 건가?”


“갑자기 무슨 말이야?”


“기숙사, 피아노, 마티니 같은 거지.”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린 일주일을 바게트 빵 몇 개로 버티기도 한다고.”


“그래 그건 그렇지만 들어 봐. 고대의 우리 조상들은 빵 한 조각을 먹기 위해서는 힘들게 농사를 지어야 했어. 고기를 먹으려면 야생 동물과 싸워서 사투를 벌어야 했단 말이지. 나무 막대기를 물속에 던져서 생선을 잡는 것이 일상이었다니까.”


“뭐 그렇긴 하지.”


“사실 우리는 그다지 한 것도 없이 편한 세상에 태어나서 편하게 먹고 즐기다가는 거야. 그렇잖아?”


“뭐 그럼 지금 돌도끼를 만들어서 토끼라도 사냥하러 가자는 거야?”


“물론 그렇지는 않지. 단지 어느 정도 우리도 뭔가를 해야 할 것 같다는 거지. 지금까지 수 천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머리를 쥐어 싸매고 평생 노력한 끝에 전구를 만들거나 비행기를 만들거나 해서 세상을 좀 더 살기 좋게 만든 것처럼 말이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비행기가 없었다면 꽤나 골치가 아픈 상황이긴 했을 것이다. 나는 뱃멀미를 아주 심하게 겪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는 비행기가 없었다면 한국에서 평생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뱃멀미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사이에 타렉은 약속이 있다면서 조용히 방문을 닫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기숙사는 전기세를 별도로 부과하지 않다 보니 기본적으로는 전자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방을 검사한다던지 하지는 않기 때문에 다들 작은 인덕션을 사두고 적당히 요리를 해 먹곤 했다. 너무 추울 때는 냄비에 물을 넣고 한참 끓이면 차가운 공기가 가시곤 했다.


그렇게 살아보니 의외로 생활에 꼭 필요한 전자제품은 냉장고였다. 추운 지방이다 보니 기숙사의 학생들은 음식을 창문틀에 걸어 밖으로 내놓고 살았는데 어디에나 항상 있던 냉장고가 없으니 뭔가 견디기 려운 결핍이 느껴졌다. 기숙사 게시판의 광고를 보고 연락해서 저렴한 중국산 냉장고를 가져다 놓으니 소음 때문에 잠도 잘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큰맘 먹고 시내의 대형쇼핑몰을 찾아갔다. 굴지의 코리안 글로벌 기업의 제품을 사다 놓으니 조용하고 디자인도 이쁘고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위대한 코리아로 인해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런데 배송비용 너무 비 할 수 없이 작은 수레에다가 묶어서 끌고 전철을 이용해서 가져왔는데 그고 나니 이제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오랜만에 내 방에 놀러 온 타렉도 냉장고를 보고 연신 부러움과 감탄의 찬양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감자요리와 샐러드를 먹고 남은 재료를 냉장고에 넣고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리고 노트북으로 새로 나온 영화를 잠깐 보기로 했는데 2차 세계대전 배경의 전쟁영화였다.


“전쟁 영화에서는 항상 죽은 전우의 몫까지 살아남은 자가 짊어지고 가야 한다고 하잖아 그렇지?”


“물론. 굉장히 자주 나오는 대사지.” 나는 타렉이 가져온 초콜릿 쿠키를 먹으며 대답했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일상도 사실 전쟁과 다를 것이 없어. 오히려 전쟁보다 치열할 때도 많지. 그리고 매시간 수많은 사람들이 교통사고 라던지 이렇게 저렇게 죽어 가고 있고.”


“그 사람들 몫까지 우리가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는 거야?”


“그래 그런 거지.


“책임감 같은 걸 말하는 건가 저번에 얘기한 전구나 비행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전구와 비행기는 이미 만들었으니까 필요 없잖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이렇게 톨스토이나 읽고 있어도 되는 건가?” 나는 책상 위에 있던 <전쟁과 평화>를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지금 우리가 현재 무엇을 하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야. 우리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그리고 그것에 관해 연구하거나 남들과 토론하거나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 자체가 그렇게 되는 거지. 그다음에는 우리의 존재 자체가 세상에 영향을 주게 되는 거고, 결론적으로 세상은 좀 더 아름답게 변하는 거지.”


니체가 얘기한 것 같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나는 니체라도 들먹거리며 조금이라도 이해한 척을 하고 싶었지만, 녀석은 여자 친구의 전화를 받더니 눈인사만 끄덕하고 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나는 잠시동안 녀석이 닫고 떠난 파란색 나무문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불을 끄고 침대 속으로 기어 들어가 잠을 청하기로 했다.






도시 근교에서 가장 맘에 드는 곳은 <라크 드 에론> 이라는 이름의 호수였는데 목장과 들판과 호수가 함께 있는 멋진 곳이었다. 목장에는 말 대여섯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고, 호수 중간의 작은 섬에는 여러 종류의 보기 드문 새들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지내고 있곤 했다.


한적한 목장 길을 걸으며 나는 나 자신에게 여러 가지를 묻고 답하곤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이곳으로 떠나 오기 전까지 나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회사에 다니면서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누가 시키거나 권유한 것도 아니었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곳에 와서 별한 계획 없이 무것도 하지 않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평생 걸어 다닐 양의 대부분이 될 만큼의 거리를 걷고 또 걷고 있었다. 나는 무언가에 이끌려 그 어떠한 답을 듣기 위해 왔다는 느낌이 들곤 했지만, 어떤 것도 확실한 것은 없었고 단지 나는 정신없이 하루하루 타국에서의 삶을 지탱하는 것에 정신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타렉은 날마다 계속 고민하며 무언가를 만들어가면서 나에게 그것에 관해 설명하려고 했지만 명확하고 자세한 형태가 없다 보니 이해하기 어려웠다. 대체 뭘 해야 한다는 것인지 가진 것도 없고 출중한 능력도 없는데 어쩌라는 것인지 하지만 녀석은 우리가 가진 시간만으로 충분하다고 항상 강조했다. 방향에만 신경 쓰면서 한발 한발 나아가면 된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 방향이 맞긴 한걸까. 중간에 살짝 방향을 틀 수 있는 거겠지. 너무 많이 돌아가게 되려나. 어차피 처음부터 확한 방향을 알 수는 없다. 일단 가보는 수밖에 없다. 가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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