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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리브 Jul 20. 2024

유리




날카로운 금속몸속에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느껴진다 라고 느끼는 것도 잠시 곧바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그리고 고통과 함께 음의 포감이 나를 집어삼키 시작했다. 검붉은 피가 몸을 타고 내려가 바닥에 줄줄 흘러내다. 서서히 숨이 가빠오는 것도 느껴졌다.


검은 모자에 검은 마스크를 쓴 얼굴에서 또 다른 종류의 공포감이 느껴졌다. 본인도 처음 겪는 일인 듯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기 시작했다.


떨리는 손으로 드백에서 지갑이나 돈 되는 것을 챙기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저히 되겠는지 그냥 던져버리고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못가 발이 꼬여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서 뒤를 한번 돌아보더니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사라진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나마 지금 상황에서 나를 구해줄 수 있는 게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찌른  말고는 없는 것이 절망적이었다.


전화기라도 들고 가라는 그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은 없었다. 언제부턴가 전화기로부터 벗어난 시간들이 점점 더 소중하고 간절했다.


이제 어떡하지 일단 좀 누워서 생각을 해봐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자꾸 잠이 오려고 한다. 요즘에 잠을 통 못 자긴 했는데 그럼 잠깐 눈을 붙여볼까 그래도 괜찮을까.


희미해져 가는 시야로 갑자기 시커먼 것이 덮쳐왔다. 아무래도 아까 그놈인 것 같은데 이번엔 다른 것을 노리고 온 것이 느껴졌다. 거친 숨을 헐떡거리며 바쁘게 손놀림을 재촉했다. 그래 그냥 가긴 아까웠겠지.






상처가 욱신거리고 시야가 혼미해지고 있었지만 정신을 집중해 보려고 애썼다. 최대한 깊게 숨을 쉬었다.


있는 힘을 다해 날카로운 그것을 나에게서 뽑아 그놈을 향해 휘둘렀다. 찔렀어야 했는데 찌르고 싶었는데 찌를 힘이 없었다. 그래도 뭔가 중량감이 느껴지는 것이 완전히 무효 타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얼굴이 엄청난 통증이 가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얼굴 왼편이 불에 데인듯 화끈거렸다. 이쁜 얼굴은 건드리지 말지 이 와중에 광고계약건이 걱정이 되었다. 왼손에 돌멩이 같이 묵직한 것이 잡히길래 온 힘을 다해 휘둘렀다. 이번엔 제법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녀석이 느끼는 당혹감과 공포감도 느껴졌다.

그래 나는 진심이다 너는 어떠니.


끙끙대던 녀석이 간신히 몸을 일으켜서 온 길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벌써 포기하는 거야 이 나약해 빠진 놈.

하하하 소리 내서 웃고 싶었지만 웃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멀리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스산한 바람들이 교향곡처럼 불어왔다.


지혈을 해야 해 라고 내가 나에게 절박하게 소리치고 있었지만 소리쳐봐야 그럴 힘이 없었다. 사실은 지혈보다 나중에 발견되었을 때 내 모습이 어떨지 걱정이 되었다. 얼굴이 멍이 심하게 들었을까 누가 와서 옷매무새라도 좀 단정하게 해 주면 좋겠 아무래도 전화기를 가져올 그랬나 보다.


갑자기 옛 생각이 나서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 정도면 괜찮은 인생이었지 하는 거 다 해 보고 남들 못해본 것도  해보고 마지막까지 너무 완벽하게 극적이잖아 이 정도면 된 거 아닐까. 아니야 웃기지마 무조건 더 살고 싶어 인간적으로 거짓말은 하지 말자  10년만 더 아니다 그냥 계속 살고 싶어 아직 죽기 싫어 누가 좀 제발


눈물이 흐르려고 하길래 입술을 깨물고 참았다. 갈 때 가더라도 울면서 가지는 말자. 그런데 너무 추웠다. 겨울도 아닌데 왜 이렇게 추운 거지. 무 춥고 너무 달덜달다르 떠르떨려 구 없나 누가 좀 따듯하게 안아주면 좋겠다.


이번엔 킁킁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날것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뭐야 안돼 더러워 오지마 오면 혼내 줄 거야 라는 내 머릿속의 생각과는 관계없이 그놈은 거칠고 축축한 혀로 얼굴을 핥기 시작했다, 너무 꺼끌꺼끌한 감촉 저리가 징그러워 그리고 소름끼치는 고약한 냄새. 


아무래도 피를 너무 많이 흘린 것 같았다. 정말 이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이 없다.


머릿속으로는 수십 번도 더 이 을 번쩍 들어서 저 멀리 집어던졌는데 아무리 집어던져도 조금 지나면 그대로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너무 힘들다.


그래 쇼팽의 발라드가 있었지 발라드 1번을 떠올리기로 했다. 수천 수만 번 들었던 피아노 선율이 귓가에 들려왔다. 때로는 우아하게 슬프게 그리고 격정적이고 감동적으로 연주하다가 다시 차분하고 아름답게.


참았던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금만 아주 조금은 괜찮겠지. 울 수도 있는 거지 뭘 그래. 아니다 그냥 많이 울자 펑펑 울어보아.






냄새가 너무 고약했다. 너무 싫은 냄새. 이런 냄새가 마지막으로 맡게 되는 냄새라는 게 진저리 나게 싫었다.


이렇게 삶을 마감하게 될 줄 몰랐는데 할 수 있는 거라곤 꼴사납게 몸을 비틀어대는 것 이외에는 없었다. 어느 정도 탐색이 끝났는지 녀석이 슬슬 식사를 시작하려나 보다. 작고 날카로운 것이 몸통 어딘가에 박히는 것이 느껴졌다. 따끔거리지만 이미 전신마취가 되어 있어서 괜찮았다. 비싼 돈 들이고 공들여가꾼 살덩이들이라서 맛은 좋을 거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영화 같은 데서 많이 들리던 소리인데 슨 소리지 환청인가


그래 내가 제정신일리가 없지 그래도 이건 너무 그 뭐랄까 두두두두두두 이건 진짜 헬기소리인데









- 유리야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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