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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천희 Jun 16. 2024

우리가 스튜디오에서 웨딩 촬영하지 않은 이유

결혼을 준비할 때 스드메 중 하나인 스튜디오 촬영은 필수처럼 여겨진다. 우리도 웨딩 플래너님께 스튜디오를 상담받았다. 우리가 원하는 취향을 말씀드리니 잘 어울릴 것 같은 스튜디오의 포트폴리오 앨범을 보여주셨다. 앨범은 엄청 두꺼웠고, 스튜디오의 종류도 엄청 많았다.


화려한 전문 스튜디오에서 경력이 많은 프로 사진작가님이 찍은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많은 시간과 큰돈을 들여 제대로 각을 잡고 찍은 사진들이었다. 평소에 여자 친구와 데이트할 때는 찍을 수 없는 비일상적인 풍경이었다.


전문 스튜디오에서 화려하게 찍는 것은 우리의 취향이 아니었다. 과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장면의 스냅사진을 찍고 싶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진에 큰돈을 들이고 싶지도 않았다. 결혼사진 열심히 찍어도 나중에 막 자주 찾아보거나 하진 않을 것 같았다. 결혼식이나 청첩장, 결혼식 갤러리 전시에 보여줄 적당히 멋진 사진 몇 장이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스냅사진 업체를 찾아봤는데 가격이 최소 30만 원에서 시작했다. 집에 DSLR이 있는데 우리가 찍어서 돈도 절약해 볼까? 재미도 있을 것 같고. 그래서 우리끼리 셀프 스냅 촬영을 해보기로 했다.


필수 준비물은 이러했다. 산 지 10년 된 DSLR 카메라, 2만 원짜리 삼각대, 2500원 자리 카메라 리모컨.


셀프 촬영은 총 3번 했다. 처음에 촬영했던 곳은 서울역 근처에 "윤슬"이라는 작품이 있는 곳이었다. 쇠 구조물 아래에 움푹 파인 곳인데 서울역에서 가까워 찾아가기 편하고, 아직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 촬영하기에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여기 바닥에 빛이 윤슬(찰랑거리는 바다에 비치는 빛)처럼 예쁜데 그걸 모르고 계단에서 찍었다 ㅎㅎ

그래서 윤슬 느낌은 안 나왔지만, 밝은 햇빛에서 예쁜 사진을 찍었다. 처음 찍어보는 거라 허접했지만 찍는 과정이 재밌었고, 앞으로도 이렇게 우리끼리 사진 찍으면 되겠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두 번째 촬영은 올림픽 공원의 나 홀로 나무였다. 봄이고 토요일 주말이어서 사람이 많지 않을까? 살짝 걱정했는데 나 홀로 나무가 있는 넓은 들판에서의 사진을 도전해보고 싶었다. 몽촌토성 역에 9시 15분에 도착해 부랴부랴 걸었는데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신나서 열심히 촬영했고 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양산을 들고 올까 말까 고민하다가 안 가져왔는데 너무 더워서 힘들었다. 나중에 촬영 끝나고 나서는 두통이 올 정도였다. 양산을 꼭 챙기자ㅎㅎ


여자 친구가 비누 방울 총을 사 왔는데 건전지가 필요한 걸 깜빡하고 안 가져오는 일이 있었다. 올림픽 체육관 쪽 편의점에서 구매해서 사진 찍을 수 있었다. 찍고 나서 보니 다른 사람이 옆에서 비누 방울을 날리고 있고, 비눗방울 총은 사진에 안 나오게 하는 게 더 예쁠 것 같았다. 셀프 촬영하면 이런 제약이 생기는 단점이 있었다.


세 번째 촬영은 어린이 대공원이었다. 여름이 오기 전에 야외 촬영을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있었다. 그래서 매주 주말 데이트마다 삼각대와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게 일상이 되었다. 이번에는 옷 코디도 서로 맞추지 않고 편한 옷을 입었다.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어린이 대공원에 가서 여유롭게 촬영을 했다.


직접 우리끼리 촬영을 해보니 셀프 스냅사진의 장단점을 알 수 있었다.


단점으로는 장면이나 구도에 제약이 있었다. 비누 방울을 우리가 날려야 했고, 삼각대를 이용하기 때문에 역동적인 구도에서는 촬영하기가 어려웠다. 경험이 많으신 프로 작가님들처럼 화려한 사진을 찍을 순 없었다. 삼각대와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게 조금 번거로웠다.


장점으로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찍을 수 있었다. 날씨가 좋은 날을 고를 수 있고 (전문가분께 예약을 하면 날씨가 안 좋더라도 촬영을 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곳, 구도, 동작, 장면으로 마음껏 여러 장 찍을 수 있었다. 스냅사진이 최소 30만 원이 드는데, 비용을 많이 아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사진을 찍는 게 재밌었다. 데이트를 즐기는 새로운 방법을 찾은 느낌이었다. 간혹 웃긴 비하인드 사진도 찍게 되는데 사진을 보며 서로 깔깔거리며 웃기도 했다. 이런 웃긴 사진들도 모아서 갤러리 결혼식 전시에 쓰려고 한다.


전문 스튜디오에서의 촬영을 하지 말라는 내용은 아니다. 셀프 촬영은 소품을 직접 구하고, 삼각대와 무거운 카메라도 들고 다녀야 하고, 예쁜 구도를 계속 고민해야 하고, 전문가만큼 높은 퀄리티를 보장할 수 없다. 시간이 없는 분들은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게 가성비가 훨씬 좋다.


이런 방법도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다. 우리처럼 결혼식에 대한 큰 로망이 없는 분들, 전문 스튜디오의 화려한 사진이 취향에 맞지 않는 분들, 비용을 절약하고 싶은 분들에게는 셀프 웨딩 스냅사진 촬영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각자 자신의 취향에 맞고, 원하는 방식으로 촬영하셔서 즐거운 결혼 준비 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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