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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천희 Nov 14. 2019

나는 타자를 잘 치면 컴퓨터를 잘하는 줄 알았다.

공대생의 입시 미술 도전기 -1-

초등학교 수업 과목 중에는 컴퓨터 수업이 있었다. 워드프로세서, 엑셀, 파워포인트 등의 프로그램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 수업 시간 50분 중 20분은 타자 연습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한컴타자연습"이라는 프로그램으로 타자 연습을 했는데, 한글 워드 프로세서를 만든 "한글과 컴퓨터"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이었다. 그 당시에는 지금은 보기 힘든 도스에서 돌아가는 듯한 UI에서 타자 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자리 연습부터 시작해 짧은 글, 긴 글도 연습하고 영어 타자도 연습했다.


컴퓨터 타자 수업의 특이한 점은 자기가 기록한 타수를 선생님께 알려드리면 교실 앞쪽의 빔프로젝트에 보이는 엑셀 파일에 내 타자 점수가 기록되는 시스템이었다. 엑셀 표에는 내 타자 기록의 평균뿐만 아니라 반에서 몇 등인지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타자 점수와 반 등수를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수업 시스템이 타자를 못 치는 아이들에겐 가혹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타자를 잘 치는 사람은 남들보다 좋은 손재주를 타고 나는 걸까?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 유난히 타자가 빨랐다. 한글 짧은 글은 900타가 넘었고, 영어 짧은 글은 500타가 넘었다. 타자가 빠르기도 했지만 나만의 꼼수도 있었다. 타자 연습 메뉴를 들어갔다가 나왔다 하면서 짧은 글을 찾아내었다. 예를 들어 "쇠 귀에 경 읽기" 같은 글을 후다닥 쳐버리면 훨씬 더 높은 타수를 기록할 수 있었다.


나는 영어와 한글 타자 모두 반에서 무조건 1등이었다. 학년이 바뀌어 반이 바뀌어도 항상 1등이었다. 아마 전교에서 타자가 가장 빨랐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컴퓨터에 타고난 재능이 있는 줄 알았다. 물론 타자 속도와 프로그래밍 실력에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중학생이 되고 학급 내 게시판에 "정보 영재"를 뽑는다는 공지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관심이 생겨서 지원을 했다. 주말에 어느 중학교에 가서 시험을 쳤다. 나는 시험 준비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시험 문제는 적당한 난이도에 꽤 재밌었다. 지금 기억나는 문제로는 여러 가지 확장자들을 영상, 그림, 음악 파일 등으로 분류하는 문제와 우물 바닥에 있는 달팽이가 언제 우물 밖으로 나오는지를 알고리즘으로 계산하는 문제가 나왔던 것 같다. 알고리즘 문제를 굉장히 재밌게 풀었다. 물론 그 당신에는 그게 알고리즘 인지도 몰랐지만.


문제를 재밌게 풀어서 때문이었을까? 영재 교육은 구 단위와 시 단위로 나뉘어 받을 수 있었는데, 나는 높은 성적을 받은 학생들이 들을 수 있는 교육인 부산시의 정보 영재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영재 교육에는 수학, 과학, 정보 등으로 나뉘어 있었고, 그중 가장 경쟁이 치열하고 난이도가 높은 과목은 수학이었다. 수학 영재 교육을 받기 위해 학원을 다니며 준비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에 비해 정보 영재는 경쟁률이 덜 치열하고 난이도도 수학에 비해선 쉬웠다.


정보 영재 교육은 2주에 한 번 토요일에 부산시 교육청에 가서 4시간씩 수업을 들었다. 교육을 해줬던 분들은 학교 선생님들 이셨던 것 같다. 남자 선생님 두 분께서 수업을 해주셨다. C언어와 자바스크립트를 배웠다. 1년 동안 한 가지의 프로젝트를 정해서 연말에 제출해야 하는 과제도 있었다. 1년 과정을 통과하면 다음 커리큘럼을 배우는 반으로 갈 수 있었다. 통과 못하면 그 반에 남아서 같은 수업을 한번 더 들어야 했다.


한 반엔 15명 정도의 학생들이 있었다. 부산 각지에서 모이는 아이들이다 보니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수업장이 굉장히 조용하고 학생들끼리도 친해지기 어려웠다. 나는 내 옆자리 친구와 친해졌는데, 작년에 수업에 통과를 못해서 한 번 더 같은 반 수업을 듣는 친구였다. 공부나 수업보다는 노는데 더 열심인 친구였다. 수업 시간에 거상 무료 서버에 접속하기 위해 계정에 비밀번호를 1234로 등록해서 열심히 로그인을 했다. 비밀번호가 1234 였던 이유는 무료 서버라서 접속이 어려워 로그인 시도를 쉽게 하기 위함이었다. 로그인에 성공하면 수업 시간에 열심히 게임을 하곤 했다. 어느 날은 게임 로그인 시도를 안 하길래 왜 안 하냐고 물으니까 비밀번호가 너무 쉬워서 해킹을 당했다고 한다.


처음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을 때 초등학교 동창 선배 형이 나에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친구를 잘 만나라고 그랬다. 나는 노는 친구를 만났다. 핑계일 수도 있지만 그 친구와 함께 수업을 듣다 보니 나도 수업을 열심히 듣기보단 딴짓도 하고 그랬다. 심지어는 중간, 기말고사 같은 것도 있었는데 시험 시간에 그 친구와 버디버디 메신저로 서로 답을 공유하기도 했다.


수업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개발을 좋아하는 nerd 같았다. 어느 날은 컴퓨터가 곱하기 연산을 어떻게 빨리할 수 있을까에 대해 얘기를 하셨다. 첫 번째 방법은 가장 쉬운 방법으로 여러 번 더하는 것이다. 12*11 연산을 할 때, 12를 11번 더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 방법은 학교 수학 수업 때 배우는 방식으로 덧셈을 하는 것이다.

위의 방식대로 계산하면 3번만 연산하면 곱셈의 결과 값을 얻을 수 있다. 마지막 세 번째 방법은 굉장히 빠른 방법이다, 무엇일까?라고 선생님이 질문하셨다. 머리를 열심히 돌렸는데 생각나지 않았다. 선생님이 말한 마지막 방법은 곱셈의 결과를 저장해 두고 가져오는 방식이었다. 모든 곱셈에 대한 결값들을 저장해둔다면 그걸 가져오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프로그래밍 문법만 배운 것이 아니라 컴퓨터에 관한 재밌는 얘기들도 들을 수 있었다.


코딩을 처음 배운 나의 기분은 어땠나. 선생님의 얘기를 들을 땐 재밌었지만 프로그래밍 언어의 문법을 배우고 코딩을 하는 건 그렇게 재밌진 않았다. 보통의 평범한 다른 중학생들처럼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게 제일 재밌었다. 그렇지만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코딩이 적성에 맞는지 판단하기엔 이른 시기였다. 코딩이라는 수박의 겉만 핥은 정도였다.


여름 방학 때는 마치 특훈 합숙 훈련을 하는 운동부 친구들처럼 2주일 평일 동안 매일 수업을 들었다. 수업을 듣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여름방학 수업까지만 듣고 영어 학원을 다녀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어머니는 내가 컴퓨터 공부를 그만하기를 원하셨다.


한 번은 서점에서 해킹에 관한 책을 사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CD를 이용해서 친구 컴퓨터 해킹하는 법"과 같은 방법이 적혀있는 어떻게 보면 위험할 수 있는 책이었지만 어린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던 책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책을 사주시지 않으셨다. 내가 너무 사고 싶어서 몇 번을 졸랐는데도 말이다. 물론 책 내용이 위험해서 그러셨을 수도 있지만, 내가 컴퓨터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도록 하는 것 같아서 엄마에게 서운했다. 물론 정말 사고 싶었더라면 내가 직접 서점에 가서 용돈으로 몰래 사 올 수 있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어릴 때의 나는 어머니가 허락하는 일만 하는 미련한 모범생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컴퓨터 공학과가 아니라 의대를 가기를 원하셨다. 그 이유는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알게 되었지만 어머니의 삶과 연관이 있었다. 어머니는 대학 진학 시절 영문과에 가고 싶으셨다. 영어를 잘하거나 영문학에 관심이 있어서는 아니었고, 옛날에 여자는 좋은 대학에 가서 시집을 잘 가는 게 여자로서 성공하는 정석적인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영문학과에서 무엇을 배우는지는 하나도 모르셨지만 여자로서의 성공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어서 영문학과에 지원하려고 하셨다. 반면 외할아버지께서는 어머니에게 의대를 가라고 하셨다. 외할아버지는 이제 현실적으로 여성이 시집 잘 가는 것만으로는 잘살기 어렵고, 여성도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필요하다는 생각 하셨다고 한다. 결국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의 조언대로 의대에 진학하셨다. 그리고 현재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시고, 그때 외할아버지의 조언을 따른 것을 감사히 여기고 계신다.


물론 의사라는 직업이 괜찮기 때문에 나에게 의대를 권하셨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어릴 적에 겪으신, 자신이 원하는 학과가 아닌 외할아버지가 조언해준 학과로 진학했던 일도 의대를 권하는데 한몫했을 것 같다. 자신의 생각보다 어른의 판단이 맞다는 것이 어머니의 무의식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영문학과를 진학하려고 했던 어머니처럼 경험이 부족한 중학생이었기 때문에 내가 공부하고 싶은 컴퓨터로 진로를 정하는 것보다, 어머니가 생각하기에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이 더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는 컴퓨터 정보 영재 교육을 그만두고 영어 학원 주말반에 다녀보라고 하셨다. 멀리 수능 점수까지 생각한다면 영어 학원을 다니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관심이 생겨 스스로 지원하고 시에서 하는 교육까지 뽑혔던 컴퓨터 교육을 포기하기엔 아까운 기회였다. 과연 나는 무엇을 선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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