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빵떡의 맥주 탐험에서 첫 번째로 다뤄볼 맥주는 우리에게 코끼리 맥주로 유명한 "인디카 IPA"이다. 크래프트 맥주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도 맥주의 라벨에 있는 코끼리의 이미지가 워낙 강렬해서 맥주집 간판의 생맥주 간판이나 보틀샵에서 한 번씩은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인디카 IPA는 굉장히 잘 만들어진 미국식 IPA 스타일 맥주로 2011년에 첫 수입되어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맥주이다. 가격은 2018년 9월 성수 이마트 기준으로 4980원이다.
일단 한 모금 마셔보자.
먼저 코에 느껴지는 향은 미국식 IPA 답게 오렌지나 자몽의 향이 강하다. 거품의 양은 많진 않으나 나름 잘 유지되는 것을 볼 수 있고, 맥주의 색은 약간 앰버 에일에 가까운 연한 갈색을 띤다. 맥주의 맛은 홉의 쓴 맛이 어느 정도 강하면서 동시에 맥아의 단맛 또한 느낄 수 있다. 인디카 IPA는 IPA 치고는 쓴 맛이 강하지 않다는 평을 많이 듣는다. 홉의 맛이 강하진 않다. 하지만 세션 IPA 만큼 약하진 않다. 미국식 IPA 특유의 강한 홉의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치만 홉의 맛 뒤에 따라오는 과일 맛이 쓴 홉의 맛을 상쇄시켜 준다.
인디카 IPA가 강한 IPA 계열에 속하지 않는 이유는 사용된 홉과도 연관이 있다. Lost Coast 공식 홈페이지의 설명에 인디카 IPA는 콜롬버스, 센티니얼, 윌라멧 홉을 이용한다고 되어있다. 셋 다 미국에서 재배하는 홉으로 콜롬버스와 센티니얼은 Citrus한 향을, 윌라멧은 Earthy(땅의 풀 맛)한 향을 가지고 있다. 즉 citrus 한 홉과 그러지 않은 홉의 조화 덕분에 홉의 쓴 맛이 덜하다. 이 때문에 인디카 IPA는 밸런스가 좋은 맥주로 평가되고 있으며 덕분에 크래프트 맥주 입문자들에게도 매우 훌륭한 맥주이다. 블랑이나 호가든처럼 향이 특징인 맥주를 즐겨 마시는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맥주이다.
인디카란 맥주, 맛도 좋고 맥주 라벨 디자인도 사뭇 특이하다. 인디카란 맥주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 졌다. 우리의 '맥주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인디카 맥주를 좀 더 자세히 파헤쳐보도록 하자.
맥주의 이름인 인디카란 무엇일까? 인디카는 안남미라는 쌀의 영어 이름으로 인도차이나 지역에서 재배되는 쌀이다. 인도차이나는 인도와 중국 사이의 지역을 뜻하며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이 있다. 안남미 쌀은 전 세계 쌀 소비량의 90%에 육박하는 매우 대중적인 쌀 종류이다. (한편 한국인들이 먹는 쌀은 자포니카 쌀인데 전 세계 쌀 소비량의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안남미 쌀을 인도 음식점이나 베트남 음식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맥주는 왜 안남미 쌀의 영어 이름인 인디카라는 이름을 썼을까? 이는 이 맥주의 컨셉이 동남아시아 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맥주 라벨 디자인의 가운데 있는 피카소 그림 풍의 코끼리는 힌두교의 신인 가네샤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코끼리 뒤로 보이는 건물들은 인도의 세계적인 건축물인 타지마할의 모습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왜 Lost Coast Brewery는 동남아시아 그리고 인도 문화를 맥주의 컨셉을 잡았을까? 이는 이 맥주의 스타일인 India Pale Ale이 인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던 시절 영국인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맥주를 영국에서 인도까지 배로 옮기고 싶었다. 하지만 기존의 맥주는 오랜 이송 시간과 적도를 두 번이나 지나게 되면서 맥주가 상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기존의 에일 맥주에 방부 능력이 탁월한 홉을 다량 투하하여 맥주를 양조하였고, 인도까지 맥주가 상하지 않게 운반할 수 있었다. 이때 탄생한 맥주 스타일이 India Pale Ale이다.
그렇기 때문에 Lost Coast Brewery는 인디카 IPA의 맥주 스타일인 India Pale Ale과 인도와 연관성이 있다는 점에서 영감을 받아 이러한 동남아시아 문화를 컨셉으로 맥주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인디카 IPA는 입체파(피카소의 그림과 비슷한) 풍의 코끼리 이미지와 원색 계열의 강렬한 색채를 이용하여 맥주 진열장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자신의 매력을 자랑한다. 한편 맥주 라벨 디자인에 동물을 등장시키는 전략은 많은 맥주 회사에서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중 인디카 IPA처럼 코끼리가 등장하는 유명한 맥주로는 델리리움 트레멘스와 필라이트가 있다. 이 중 필라이트를 예로 들어 왜 동물을 맥주 라벨 디자인에 쓰는지 알아보자.
하이트 진로에서 나온 발포주(맥아의 함량을 낮춰 주세법상 맥주가 아니라 기타 주류로 분류되는 방법을 통해 가격을 낮춘 맥주)인 필라이트는 기존 하이트 진로사의 hite 맥주와 비교해보면, hite는 단순히 영어 글자만 맥주 라벨 디자인에 있어서 차가운 느낌을 주는 것에 반해(차가운 이미지를 통해 시원함을 어필하려 했을 것이다), 필라이트는 귀여운 코끼리 그림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친숙하고 접근하기 쉬운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다. 이처럼 맥주 라벨 디자인의 동물 이미지는 소비자에게 맥주를 어필할 수 있는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필라이트는 우리나라 맥주 중에서 동물을 사용한 대기업 최초의 맥주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발포주라는 것과 시너지 효과를 내어 출시한 지 1년 만에 2억 캔을 판매하였고 매출은 1430억 원에 달했다.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인디카의 코끼리에 대해 더 알아보자. 인디카 IPA의 마스코트인 코끼리는 힌두교의 가네샤 신을 모티브로 따왔다. 이 가네샤 신은 재밌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사실 이 전설은 재밌다기 보단 매우 요상하다. 힌두교의 신인 시바와 그의 아내 파르바티가 있었다. 파르바티가 목욕을 하러 가기 전 자신의 아들에게 문지기를 요청했다. 시바가 그녀를 방문하러 왔는데 자신의 아들에 의해 출입이 저지당하고 시바는 열 받아서 아들의 목을 잘랐다. 소란을 인지하고 나온 파르바티는 아들이 참수당한 걸 보고 슬픔과 분노에 가득 찼다. 이를 달래기 위해 소년과 같은 날에 태어난 코끼리의 머리를 가져와 다시 소생시켰다. 즉, 가네샤는 코끼리의 머리를 하고 있는 인간(반인반수)인 것이다.
이러한 다소 충격적인 전설을 가지고 있는 가네샤 신이지만, 이 신은 힌두교에서 꽤 인기 있는 신이라고 한다. 가네샤는 지혜와 행운의 신으로 삶의 시련과 위기를 이겨내고 원하는 바를 이루어 준다고 한다. 그래서 인도 현지의 가게나 집안에 가네샤 신의 그림을 걸은 곳을 많이 볼 수 있다.
Lost Coast 브루어리도 맥주 라벨에 행운이 깃들어 맥주가 많이 팔리는 마음, 그리고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에게도 행운이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가네샤 신을 차용한 게 아닐까? 행운의 신이 그려진 맥주를 마신다니 나도 기분도 좋아진다.
하지만 Lost Coast 브루어리는 인디카 IPA의 맥주 라벨 디자인 덕분에 예상치 못한 종교적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인도인들에게 이 맥주의 라벨 디자인은 마냥 마음에 들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이 논란은 점점 커져 인도의 상원 의원들에게도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문제가 된 것은 인디카 IPA 맥주 라벨 디자인에서 가네샤 신으로 연상되는 코끼리가 맥주를 마시고 있다는 것이었다. 라벨 디자인을 보면 코끼리는 코와 손으로 맥주병을 들고 있고, 눈은 입체파 화풍의 그림 때문에 술에 취한 것처럼 보인다. 신이 술에 취해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힌두교가 낯설다면 우리에게 친숙한 기독교나 불교로 생각해보자. 하느님이나 예수님, 부처님이 맥주를 마시고 술에 취한 모습이 맥주병에 그려져 있으면 어떨까? 분명 종교계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는 결코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결국 이 논쟁은 법정 소송까지 진행되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법정 소송의 결과는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Lost Coast 브루어리가 승소하게 되었다. 하지만 Lost Coast 브루어리는 논쟁을 해소하기 위해 맥주 라벨 디자인에 있던 코끼리의 손 4개를 2개로 바꾸게 된다. 가네샤 신의 손이 4개이기 때문에 맥주 라벨 디자인의 코끼리가 가네샤 신을 연상시키는 것을 어느 정도 줄이기 위해서였다.
Lost Coast 브루어리의 이런 결정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 법정 소송에서 승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코끼리가 가네샤 신을 덜 연상시키도록 한 것을 좋게 볼 수도 있고, 손 4개에서 2개는 너무 약하지 않냐, 맥주 라벨 디자인에서 코끼리가 들고 있는 맥주병을 없애는 게 더 좋지 않았겠냐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맥주병을 없앤다면 맥주에 대한 이미지가 줄어들어 본래 라벨 디자인의 개성이 사라질 수 있다.
한국에서 India IPA는 매우 기념비적인 맥주이다. 인디카 IPA는 우리나라에 최초로 수입된 크래프트 맥주로서, 2011년 3월 브루마스터스 인터내셔널에서 수입하였다. 어떻게 보면 짧고 어떻게 보면 긴 우리나라의 크래프트 맥주 역사의 포문을 연 맥주라고 볼 수 있다.
브루마스터스 인터내셔널에서 처음으로 수입하는 크래프트 맥주를 인디카 IPA로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디카 IPA는 크래프트 맥주에 입문하기에 너무나도 최적화된 맥주이기 때문이다. 인디카 IPA는 풍부한 꽃, 과일 내음과 함께 적당한 쓴맛과 달달함을 가지고 있다. 사실 같은 스타일의 IPA 맥주들은 쓴 맛이 매우 강한 편인데, 인디카 IPA는 쓴 맛이 강하지 않다. 인디카를 수입할 시점에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맥주의 스타일이 라거였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너무 강한 맥주를 권하게 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서 크래프트 맥주를 더 이상 손도 대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에 크래프트 맥주에 입문하기 좋은 쓴 맛과 단 맛의 탁월한 밸런스를 가진 인디카를 가장 먼저 수입한 게 아닐까.
인디카는 2011년부터 수입된 이후로 우리나라에서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크래프트 맥주 계의 스테디셀러인 인디카 IPA는 좋은 가격과 착한 가격뿐만 아니라 접근성도 좋다. 맥주를 파는 대부분의 가게들을 보면 인디카 IPA 간판이 달려있어서 어디서든 쉽게 드래프트(생맥주)를 즐길 수 있고, 많은 마트 및 보틀 샵에서 인디카 IPA를 구할 수 있다.
이처럼 한국에서 오랜 사랑을 받은 Lost Coast 브루어리는 한국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다. 한국만을 위해서 만든 스페셜 필스너인 “달빛 필스너”를 출시하였다. (달빛 필스너 그림) 달빛 필스너의 맥주 라벨 디자인에는 달과 토끼 그림이 있는데, 달에 토끼가 산다는 한국의 설화를 차용하여 한국적인 이미지를 잘 만든 맥주이다. 특이한 점은 이 맥주는 오직 한국에서만 마실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Lost Coast 브루어리의 브루펍에서도 달빛 필스너를 마실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수입사인 브루마스터스 인터내셔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지금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스페셜 필스너의 이름을 공모하기도 했다. 채택된 사람에게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왕복 항공권과 Lost Coast 브루어리 투어를 공짜로 보내주기도 했다. 세상에, 이 공모전 한번 더 하면 안 될까? 이름 기막히게 잘 지을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리고 Lost Coast 브루어리의 페이스북 계정을 파보면 한국 드라마에 인디카 IPA가 출연했던 것도 볼 수 있다. 한국 드라마까지 진출했던 인디카 IPA!
인디카 IPA는 부담스럽지 않은 홉의 쓴 맛과 맥아의 단맛 그리고 화사한 향이 어우러져 라거 취향인 사람들도 거부감 없이 마실 수 있는 맥주이다. 크래프트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더 커져야 맛있고 다양한 맥주를 즐길 수 있다. 그렇기에 인디카 IPA는 일반인들이 맥덕(?)이 될 수 있도록 하여 크래프트 맥주의 지분을 늘릴 수 있도록 하는 소중하고 고마운 맥주이다. 맨날 라거만 마셨던 당신, 오늘은 바틀샵에서 인디카 IPA를 골라보는 건 어떨까? 혹시 모른다. 당신의 맥주 취향을 완전히 바꾸어 버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