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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학사 Jul 13. 2022

마키아벨리 군주론(4)

카르타고는 용병 때문에 멸망했다.

전학사


마키아벨리는 통치에 있어서 군대 운영의 중용성을 이야기합니다. 군대는 총 네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각기 우열이 있습니다. 시민군, 혼성군, 용병, 원군 순입니다. 시민군은 스스로 자신의 가족과 재산을 지키기 때문에 가장 믿을 한데, 시민군과 용병 또는 원군이 섞인 혼합군 도 이런 의미로 효율적입니다. 


마키아벨리는 용병은 절대로 쓰지 마라고 합니다. 용병은 이 세상에 제일 믿지 못할 놈들이라고 평하면서, 이놈들은 돈 독만 올라서 싸우는 군대이기 때문에 열심히 전투에 임하지 않는다고 평가합니다. 마키아벨리가 얼마만큼 용병에 대해 불신하냐면, 용병은 본진이 피 터지게 싸우고 나서야 전투에 나선다고 합니다. 그리고 진짜 열심히 싸웠다면 되려 본진을 잡아먹을 우려가 있다고 평가합니다. 원군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이야기하는데, 특히 원군이 강하면 전쟁이 끝나고 나면 원군에게 잡아 먹히는 경우도 있다고 경고하지요. 원군이 진짜 열심히 싸웠다면 본진 세력이 약해진 상황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이죠.     




권박사


원군에게 배신당하는 사례는 역사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어요. 한국의 삼국시대에서 최약체였던 신라는 당시 동아시아 최강대국인 당나라와 동맹을 맺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습니다. 그런데 백제와 고구려가 사라지자 원군으로 온 당나라는 신라마저 정복하고자 했고, 신라는 가까스로 저지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신라가 당나라의 원군을 불러왔지만 고생 많이 했죠.     


마키아벨리는 동맹을 맺고 원군을 부르는 것을 이렇게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기본적으로 원군을 믿지 마라고 신신당부를 합니다. 그래서 원군을 가능하면 쓰지 마라 당부하면서,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민군을 반드시 있어야 된다고 이야기를 하죠. 요즘으로 치면 상비군이 되겠죠. 상비군 혹은 꼭 상비군이 아니라 해도 그 시민이 군인으로 참여해야지 나라를 가장 잘 지킬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군주 자신과 시민군이 합일되어 자신의 것을 지키려 하기 때문이죠.     




전학사     


현재 대부분 주권 국가들이 징병제든 모병제든 그 나라의 시민으로 군대를 편성을 하잖아요. 마키아벨리는 시민군 시스템의 모태가 되는 주장을 한 거네요.      




권박사     


그렇죠. 옛날에는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 대부분 용병을 많이 사용했어요. 로마의 전성기 때는 시민병이 대부분이었지만 로마제국의 쇠퇴기에는 게르만족 용병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중세 이후에 유럽의 주요 전쟁을 기록한 역사서에는 용병에 대해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한니발의 대리석 조각상, 한니발은 제1차 포에니전쟁에서 카르타고가 패배하자 가족들과 함께 카르타고의 식민지였던 이베리아반도로 이주했다. (출처 : 위키백과)


전학사     


용병 쓰면 망한다고 했는데, 가장 크게 망한 케이스가 카르타고입니다.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로마와 경쟁하던 카르타고는, 로마와 달리 시민병이 없고 용병을 주력 부대로 활용했습니다. 카르타고 옆에 '누미디아'라는 왕국이 있었는데, 지금의 알제리 지역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참고로 카르타고는 지금의 튀니지 지역인데, 알제리보다는 오른쪽 그러니까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인 시칠리아 바로 바다 건너입니다. 누미디아 지방의 기병이 강해서 부유한 카르타고가 자주 용병으로 활용했습니다.     


카르타고가 피렌체하고 좀 비슷합니다. 두 국가 모두 지중해 무역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했습니다. 다시 카르타고가 멸망한 포에니 전쟁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탈리아 본토가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에 의해 유린되고 있을 때,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는 카르타고 본진을 공격합니다. 카르타고는 누미디아 용병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누미디아 용병은 되레 로마군의 편에 서게 됩니다. 로마군의 스키피오가 누미디아군에게 전쟁 이후 막대한 전리품을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카르타고는 정규군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한니발이 이끄는 군대는 카르타고 본진 출신이 아니라, 식민지였던 이베리아 반도 즉 지금의 스페인 지방에서 양성된 군대였기 때문입니다. 카르타고 본인이 위험에 빠졌다는 소식을 접한 한니발은 군대를 이탈리아에서 빼서 카르타고로 향했지만, 로마군과 누미디아 군의 합동 공격에 의해 패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로마 역사를 연구했기 때문에 용병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로마 5현제 시대가 끝나고 용병들이 황제를 암살하는 이야기가 얼마나 많습니까? 50년간의 군인황제 시대 동안 26명의 황제가 세워졌다가 암살당했습니다. 황제 당 임기로 봤을 때 2년이 안됩니다. 마키아벨리의 용병에 대한 불신은 이렇게 역사적 근거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전학사


지금까지는 군대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지론을 이야기 했습니다. 이제는  군주의 덕목이라는 『군주론』 책 제목에 대해서 좀 더 집중을 해보겠습니다. 마키아벨리는 능력 있는 새로운 군주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나요?




권박사


마키아벨리는 아주 다양하게 이야기를 했는데, 핵심은 악행을 적절히 활용해야한다는 점입니다. 이 악행은 다른 말로 책략이라고 표현될 수 있죠. 


“모든 면에서 더 깊게 행동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덕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몰락하게 된다. 따라서 군주가 자신의 통치를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덕이 없을 준비가 돼 있어야 하며 필요에 따라 이를 사용하거나 이용하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군주론』에 서술되어 있습니다.


정통적인 제왕학에서 군주가 인자하고 씀씀이도 너그러워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죠. 그런데 반대로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인색해야한다고 말합니다. 


군주가 자기 돈을 써서 통치를 해야 될 경우에는 손이 크다면 망할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군주가 돈을 쓰면 언제가 재정이 고갈이 오겠죠. 받는 백성들의 입장에서도 처음에는 돈을 받으니까 만족하겠지만, 당연히 기대감도 계속 커질 겁니다. 결국 군주의 곳간이 고갈이 되니까 백성들은 그동안 베푼 군주의 은혜에 감사하기보다, 왜 주지 않냐고 원망하겠죠. 그것이 나라가 망하는 길이다고 마키아벨리는 말했습니다.


 

전학사


세금을 걷어서 사용하면 되지 않나요?




프랑스 군주 루이 16세는 오랜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삼부회를 개최해 세금을 징수하려 했지만 시민들의 혁명에 직면했다.(출처 : 위키백과)



권박사


옛날에는 군주가 세금을 백성으로부터 수취하는 시스템이 없었습니다. 모든 통치행위에 필요한 돈은 다 군주의 주머니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군주가 전쟁을 하기 위한 군자금을 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탈리아의 메디치가도 군자금을 빌려주는 은행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프랑스나 스페인 국왕들이 이탈리아 상인들에게 돈을 빌렸습니다.이렇게 세금은 지금과 달리 근세까지 매우 생소한 개념이었기 때문에 마키아벨리가 활동하던 시절은 군주 마음대로 징세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다들 프랑스혁명 잘 아실 텐데, 혁명의 직접적인 계기는 징세였습니다. 프랑스혁명 당시 왕 루이 16세는 태양왕 루이 14세와 할아버지 루이 15세 때 벌인 전쟁 빚에 허덕이다 세금 거두려고 했는데, 그것이 시민들의 불만을 샀고 결국 혁명의 초래했습니다. 프랑스법에 따르면 그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거두려면 반드시 의회격인 삼부회의를 소집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삼부회가 루이 13세 때 이후로 루이 16세까지 백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번도 개최되지 않을 정도로 웬만하면 프랑스 국왕은 세금을 걷으려고 하지 않았어요. 루이 16세 시절에는 왕실의 재정으로 나라살림하기가 감당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루이 16세는 어쩔 수 없이 삼부회를 소집했다가 망해버렸죠. 그러니까 이게 우리가 이 그 시대를 이해할 때는 왕이 직접 자기 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어야지, 마키아벨리가 한 이야기를 잘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전학사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이상적인 군주의 예로 ‘체사르 보르자(Cesare Borgia)’를 예로 듭니다. 체사르 보르자는 당시 교황이었던 알렉산드로 6세 아들입니다. 그리고  발렌티노와 로마냐의 공작이자 교황령 군의 총사령관이자 장관이며, 전직 추기경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황의 아들이라는 점이 굉장히 의아한데, 역사상 가장 논란의 교황 중에 한 명인 알렉산드로 6세의 사생아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듯합니다.


체사레 보르자(우)와 그의 아버지 알렉산드로 6세(좌) 초상화 (출처 : 위키백과)

마키아벨리는 체사르 보르자의 미덕 11가지 정도 모방을 하라라고 했습니다.


스스로를 지키는 것, 

자신을 위해 친구들을 확보하는 것, 

힘으로든 기만으로든 정복하는 것, 

인민들이 자기를 사랑하거나 두려워하도록 만드는 것, 

병사들이 자기를 다르고 존경하도록 만드는 것,

당신을 공격할 수 있거나 공격할 만한 사람들을 제거하는 것,

새로운 방식들을 통해 옛 질서들을 새롭게 하는 것, 

가혹하면서도 상대에게 위압적이면서도 관대 해지는 것,

불손한 군데를 제거하는 것,

새로운 군대를 창설하는 것,

왕들과 군졸들 간의 동맹을 유지에 그들이 당신에게 호의를 베풀거나 아니면 당신을 공격하기를 주저하도록 유지하는 것


이렇게 제가 11가지 미덕을 다 읊었습니다.


이 항목들을 살펴보면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군주는 감정이 없는 ‘사이코패스’가 되어야 한다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군주는 본인의 감정보다는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할 경우 잔인해져야 하고, 또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상대방이 공포를 느끼게 하기 위해 이성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박사


좋은 해석입니다.




전학사


마키아벨리가 체사레 보르자에 무조건 긍정적으로 판단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군주론』에서 체사레 보르자의 결말에 대해서 비판하는 하기도 합니다. 




권박사


『군주론』에 따르면 체사레 보르자의 잘못을 딱 한 가지 지적합니다. 체사레 보르자의 아버지인 교황 알렉산드로 6세 후임에 대한 문제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교황은 다들 세습이 아닙니다. 알렉산드로 6세가 선종하고 새로운 교황을 선출해야 했습니다, 체사레 보르자는 후임 교황이 정해지데 충분히 영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교황이 되는데 허용을 했습니다. 이것이 체사레 보르자의 유일한 잘못이었다고 합니다.


또 하나 체사레 보르자가 운이 나빴던 것은 31살의 나이로 요절했다는 점입니다. 조금 더 살아있었으면 마지막에 실수가 있었지만 앞서 나열해 주신 다양한 덕목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래 살았다면 명군으로 이름을 남길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 6세가 죽었을 시점에는 체사레 보르자 자신도 중병에 걸려서 당시 상황을 효과적으로 컨트롤할 수가 없었습니다. 중병이 걸리는 운이 나빴던 것과, 그리고 자신의 주요 정적이 될 사람을 교황 자리에 앉도록 허용했다는 점이 가장 큰 실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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