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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학사 Jul 15. 2022

마키아벨리 군주론(5)

비르투와 포르투나에 대한 직장인적 고찰

권박사     


체사레 보르자가 운이 나빴던 게 젊은 나이에 이제 죽었다는 것 같아요. 조금 더 이 살았다면 그 물론 마지막 실수가 있긴 있었지만, 다양한 자질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더 오래 명군으로서 이름을 남길 수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죽었을 시점에는 이미 자신도 병세가 위중했기 때문에 한마디로 운이 나빴습니다.     


또 다른 잘못은 자기의 주요 정적이 될 사람 교황에 임명되도록 이제 아주 앉히도록 허용한 사실입니다. 



          

전학사     


이 운명과 관련해서 그 여기 마키아벨리가의 군주를 통해서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키아벨리를 연구하셨던 분들은 비르투(virtu)와 포르투나(fortuna)라고 단어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권박사     


『군주론』에 주해를 붙인 조지 불에 따르면 그 당시 이탈리아 지성계에서는 운명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포르투나가 인간 사회의 어떤 작용을 하나? 

그리고 포르투나가 인간과 역사의 작용하는 일반적인 법칙을 법칙이 존재할까?

 또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가 이런 논의를 이게 학술적 논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전학사     


그 당시에 가장 핫했던 일종의 학술적 키워드였네요. 
 
 



권박사


굉장히 중요한 논쟁 주제 중에 하나였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이 논쟁에서 근대적인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군주론』에서도 서술하고 있듯이 인간의 삶을 결정짓는 것은 포르투나가 절반, 비르투도 절반이라고 보았습니다. 비르투는 영어로는 ‘virtue’ 즉 미덕 또는 좋은 자질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마키아벨리적 의미로는 반드시 선행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세상을 통치할 때 때 악행도 때로는 필요하다고도 했습니다. 악행이 도덕적으로 그 좋은 자질은 아니죠.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치세에 필요한 그런 모든 자질을 통칭해서 비르투라고 말합니다. 마키아벨리 시대의 지배적인 입장은 포르투나가 비르투에 비해 압도적으로 더 중요하다였습니다.          





전학사     


말로 말하면 운칠기삼이네요.      




권박사      


그렇죠. 그런데 마키아벨리는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포르투나도 중요하겠지만 비르투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거죠.      


르네상스 시기부터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굉장히 중요하게 논의됩니다. 중세까지는 인간은 그저 유일신에 무조건 종속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자유의지라는 오직 신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성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런데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 이 자유의지가 신에서 인간에게로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지성사적인 흐름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르네 데카르트(출처 : 위키피디아)


 
신의 속성이라고 알려져 있던 자유 의지가 서서히 인간의 속성으로 바뀌기 시작했던 시대가 르네상스였다면, 17세기 데카르트의 시기에 오면은 거의 모든 신의 속성들이 인간에게 내려오게 됩니다. 제 박사 논문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인간이 신의 속성을 도둑질했다’라고 문학적으로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비르투와 포르투나와의 관계에 있어서 당대에 진보적인 입장에 이었습니다. 『군주론』 본문에 굉장히 재미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25장의 마지막 문단입니다.      


“따라서 나는 운은 가변적인 반면 인간은 처신이 완고하기 때문에 운과 정책이 일치하는 한 인간은 흥하고 충돌이 있으면 망한다고 결론짓겠다.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강하게 고수한다. 

즉 신중한 것보다 과감한 것이 더 좋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운은 여자이고(운명이나 행운은 여신으로 비유됨) 그녀가 복종적이어야 한다면 그녀를 때리고 강압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험이 보여주는 것은 그녀는 냉정하게 행동하는 사람들보다 과감하게 행동한 사람들에게 더 자주 복종한다는 것이다.

운은 여자이기 때문에 항상 젊은 남자들을 좋아하니 그들은 덜 신중하고 더 열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대담하게 그녀를 부리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적 관점에서만 대단히 여성 비하적인 발언입니다.      





전학사     


페미니스트에게는 대단히 논란적인 표현입니다.           


그리스 신화의 '운명의 세 여신' 인간의 생명을 관장하는 실을 관리하는데 한 명이 그 실을 자으면 다른 한 명은 이를 감고 나머지 한 명은 인간의 목숨이 다하면 그 실을 끊는다.




권박사


그렇지만 15세기의 인물에게 페미니스트의 길을 강요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마키아벨리가 포르투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 인간의 젊음과 패기, 그리고 열정으로 운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분명합니다.  



   

전학사     


저는 마키아벨리의 비르투에 대한 확신에서 이런 점을 느꼈습니다.       

당시는 혼란 시기였습니다. 전쟁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그래서 인간의 삶도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유지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언제든 전쟁에 나가서 죽을 수도 있고, 또 어떤 군주에 의해서 재판 없이 형벌 또는 더 극단적으로 사형이 될 수 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이 운에 종속적이었던 시대가 극복되어야 하지 않을까, 다른 표현으로는 인간의 노력으로 혼란기를 극복하고 안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마키아벨리의 생각을 확장해서 ‘이탈리아의 통일을 꿈꿨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보다도 마키아벨리가 정치가로서 당시의 모든 것이 불확실한 사회를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에 대한 희망을 찾는 과정으로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군주론』를 통해서 군주에 대해서 집중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살면서 군주 이기보다는 신하, 사실 신하도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하의 관점에서 『군주론』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권기돈     


그 질문은 제가 생각하기에 보기에 좀 나쁜 질문 같아요. 왜냐면은 『군주론』은 군주에게 드리는 책이고 철저하게 군주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하와 같은 위치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침은 없습니다. 전학사께서는 우리가 신하의 입장에 처해 있다고 하셨는데, 21세기에 사는 사람으로서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학사     


제가 너무 자기 비하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권기돈


우리는 모두 현재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습니다. 민주공화국에서는 국민이 주권자입니다. 국민이 주권자이기 때문에 모두가 군주라고 볼 수 있어요.           


지금의 우리가 마키아벨리에게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시대상의 차이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군주론』은 철저하게 군주의 입장에서 논술되었고, 지금 우리는 각자가 군주인 시대에 살고 있기, 정치하는 방식은 마키아벨리의 방식과는 상당히 달라야 합니다. 




 

전학사     


권박사님의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당연히 우리 모두가 스스로 군주라는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다만 제가 권박사님께 질문했던 이유는 직장생활과 사회활동 속에 우리는 분명히 ‘신하’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갑을 관계로 이야기하자면 보통 을의 관계에 놓이게 됩니다.     


을이 됐을 때 갑에게 어떻게 보면 어떻게 하면 잘 보일 수도 있으니까, 이 물음에 저는 『군주론』을 통해 힌트를 얻었습니다. 왜냐하면 마키아벨리도 갑이라고 말할 수 있는 메디치 가문에 잘 보이려고 『군주론』을 집필했기 때문입니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사람을 그 신하로 쓰지 마라고 이야기합니다.      


장관이 당신에 대해서 보다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고, 즉 신하가 군주에 대해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기 일을 더 먼저 생각하고 그의 모든 행동에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것을 보게 된다면 이런 사람은 결코 좋은 장관이 될 수 없고 당신은 결코 그를 신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갑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는 그 갑만을 생각하는 척 연기도 하고, 그리고 갑을 위해서 나는 갑만을 생각하고 갑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을이다’라는 부분을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하면 성공적인 갑을 관계가 형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 스스로는 군주이기 때문에 자존심을 지켜야 하겠지만, 처세에 대해서는 『군주론』에서 언급한 부분을 인정함이 좋을 것 같습니다.   




   

권박사     

저는 직장생활 많이 안 했기에, 사회생활의 뜨거운 맛을 덜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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