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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학사 Mar 21. 2023

홉스 리바이어던(2)

사단칠정논쟁은 관념론과 경험론의 대결이 아니다.

권박사 


유교 성리학 논쟁도 보면 성리학의 기본 철학은 관념에 해당하는 ‘이(理)’와 경험에 해당하는 ‘기(氣)’ 중에 ‘이’를 먼저 우위에 둡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성리학 철학도 관념론으로 볼 수가 있죠.      


16세기 조선에서 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四端七情)논쟁이 있었습니다. 논쟁이라고 해서 지금의 TV토론같은 현장감을 생각하실 수 있는데, 8년 동안 서신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퇴계 이황의 서한(출처 : 위키피디아)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과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 논쟁이었습니다. 


퇴계 선생은 이기이원론을 펼쳤고요. 기대승은 이기일원론을 주장했는데, 서양철학을 대입해서 관념론과 경험론과의 대결로 평가하면 안됩니다.     


이 논쟁은 기본적으로 관념론적 성리학 틀 안에서 벌어진 논쟁입니다. 그러니까 존재의 기본은 뭐냐. 이가 선행하냐. 기는 이에 종속된 거냐. 이와 기를 동시에 어떤 원초적 실체로 봐야되지 않냐 이게 관념주의자 기대승의 문제 제기였던 거죠.      


관념론과 경험론은 무엇보다도 지식의 원천을 무엇으로 보냐는 인식론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점에서 보면 동양철학은 거의 관념론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훗날 기대승의 이기일원론을 지지한 율곡 이이도 관념론자였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전학사      


서양철학에서 관념론과 경험론의 대결은 오래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있었다고 평가합니다. 


르네상스 예술가 3대 거장 중 한 명인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이라고 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아테네 학당>에 그려진 수 많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중 주인공은 단연 한가운데 서있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테네 학당(출처 : 위키피디아)

그림을 자세히 보시면 플라톤 손은 하늘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와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래를 향하고 있습니다. 



플라톤은 이데아라고 하는 절대 진리가 관념적으로 하늘에 있다고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경험적인 진리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 있다고 말하는 듯 합니다. 화가 라파엘로가 관념론과 경험론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잘 표현 해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권박사      


전학사님 의견인가요?







전학사     


제 해석이 아니라,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 나오는 평가입니다.      


홉스가 활동 당시에 관념론과 경험론에 대한 철학적 사유들이 활발해졌습니다. 유럽철학은 대륙과 영국으로 구분 되어, 대륙에서는 관념론이 중심으로 되고, 영국에서는 경험론이 중심이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베이컨은 홉스가 청년 시절에 비서로 모시던 그런 사람이었고 홉스도 그래서 이 두 가지 구분으로 보면 경험주의에 가깝지 않습니까?      






권박사      


영국은 뭐 경험주의가 강하죠.      






전학사


홉스는 영국 내전 기간 동안 프랑스에 망명 생활을 했습니다. 


이때 데카르트가 주요한 저서들을 많이 출판 하는데, 홉스가 데카르트의 관념주의적인 지적 전개들을 비판을 하면서 대륙의 지식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권박사 

    

홉스와 데카르트는 직접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만 데카르트의 아주 가까운 친구와 만났고 또 당시대를 살고 있는 또다른 역사적 인물인 갈릴레오 갈릴레이와는 실제로 만났다고 합니다.


로마 종교재판소에 출두한 갈릴레오(출처 : 위키피디아)




전학사     


역사를 볼 때 ‘각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이 실제로 만나면 어떨까’ 이런 상상을 많이하는데, 마치 영화 ‘어벤저스’ 같은 느낌이죠. 


데카르트, 갈릴레이 라는 ‘인물’이라든지, 또 영국 내전 이라는 ‘시대적 배경’이라든지 생각했을 때, 홉스의 삶은 그 자체로 영화 같습니다.          





권박사

      

하필이면 홉스와 갈릴레이가 위대한 과학자와 철학자로 역사에 기록되었으니 그런거고 동시대에서는 지금 전학사하고 나처럼 한 만남에 불과했을 수도 있죠.     

 

우리가 사후에 역사적으로 평가받고 엄청 유명해지면 2. 300년 지나서 후세 사람들이  ‘전학사와 권박사가 사회과학 고전을 두고 나눈 이 대화도 ’사단칠정논쟁‘처럼 영원히 회자 될 수도 있습니다.          






전학사

      

정말 그랬으면 제 삶도 무가치한 게 아니라 어떤 의미를 가질 듯 합니다.          






권박사  

    

전학사님은 아직 청춘이잖아요.






전학사      


네 아직 창창하기 때문에…. 






권박사      


홉스도 『리바이어던』을 저술 할 때가 이미 60대 였습니다.      

그 시대로 보면 이미 상여에 들어가고 남았을 나이에 이 위대한 저작을 남겼잖아요. 그러니까 전학사도 물론 나도 아직은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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