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8년, 수상한 시절에 태어난 아이
전학사
정치학적으로 보면 홉스는 학자이기도 하지만 시대적 변혁에 대해서 어떤 단초를 제시한 정치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정치학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틀은 현실주의와 자유주의로 나뉩니다.
현실주의는 그야말로 『리바이어던』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그러니까 서로가 서로 죽일 수가 있기 때문에, 또 다른 말로 이야기하는 죄수의 딜레마적인 상태라고 보는 것이 ‘현실주의’입니다. 현실주의자들은 궁극적으로 인간들은 타협이 안 되는 존재로 보는 거죠.
자유주의자들은 다릅니다. 인간은 이성을 가지고 있는 합리적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의 공통적인 선을 추구하는 합의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홉스는 바라보는 세상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하고 비정하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그래서 홉스를 마키아벨리와 함께 현실주의 정치철학자의 대표자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권박사
홉스를 완전히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과 같은 자연상태의 약육강식 논리로만 보는 건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인간을 ‘사회계약’에 도달할 수 있는 합리성을 가진 존재로 봤다는 것은 인간 스스로 자연 상태라는 사악함에서 구원될 수 희망적 존재로 간주했다는 겁니다.
다만 인간에 대한 어떤 근원적 의심이랄까? ‘인간은 악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이 마키아벨리하고 공통점입니다.
전학사
‘인간은 태생적으로 악한 존재’이다는 홉스의 인식이 어떻게 생겼는지, 홉스의 삶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저는 홉스의 삶을 보면서 ‘이 사람은 인간은 악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홉스가 태어난 해가 1588년입니다. 임진왜란이 1592년부터 1598년까지였으니, 우리 역사와 비교해도 굉장히 옛날사람이죠. 사회계약론의 후배라고 볼 수 있는 루소가 1712년 생이니 시대적 간극이 많이 있습니다.
1588년은 엘리자베스 1세 치세가 중반기였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영국이라고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잉글랜드가 맞습니다. 왜냐하면 당시만 해도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 그리고 아일랜드까지 다른 왕조가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권박사
웨일스도 따로 있지 않았나요?
전학사
웨일스는 엘리자베스 1세의 아버지 헨리 8세 때 이미 완전한 통합을 이룬 상황이었습니다. 홉스가 태어나던 때는 제가 인트로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을 침공한다’는 소문이 흉흉할 때였습니다.
공교롭게도 독일에서 15세기 중반에 활동한 ‘레기오몬타누스’라고 하는 천문학자가 있는데, 이 사람이 고약한 예언 하나를 했습니다. 예수가 탄생하고 1588년이 지나면은 세계는 대혼란에 빠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권박사
노스트라다무스하고 비슷하네요.
전학사
홉스가 태어난 해가 딱 1588년입니다.
다른 사람의 또 다른 예언도 있었습니다. 이 예언도 시기가 구체적인데, 루터가 종교 개혁을 시작하고 70년이 되는 해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난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혼란한 시기에 얼마나 사람들의 마음이 불안했을까요? 쫌 연배가 있으신 분들은 1999년을 떠올려 보시면 비슷할 듯합니다. 컴퓨터의 밀레니엄 버그 ‘Y2K’ 등 세기말이었던 1999년에도 2000년이 오면 어떤 큰일이 일어날 거라고 온 세상이 떠들썩했습니다.
시대가 하도 수상해서 그런지 홉스의 어머니는 홉스를 조산을 했다고 합니다.
권박사
설마 그거 때문에, 세상이 흉흉해서 조산을 하다니요.
전학사
조산은 '팩트'이고 '해석'은 역사가가 만드는 상상의 영역인 듯합니다.
홉스의 아버지는 영국 국교회에 목사였습니다. 아버지가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훗날 홉스가 청소년 시절을 회고하면서 아버지가 상대 동료 목사를 폭행을 하고 난 다음, 죄받을 것을 두려워해 가지고 가족을 내팽겨 치고 도망을 갔다고 하네요.
평탄하지 않는 가정환경과 유년시절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홉스가 ‘인간은 악하다’라고 인식하는데 바탕이 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