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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희 Jun 13. 2024

[YEAR에세이] 도움닫기의 시작

스물둘에 대한 기록

     이제는 갓 고등학교에서 나왔다고 하기엔 부정할 수 없는 '빼박' 20대의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 심정은 생각보다 초연하면서도 언제 시간이 이렇게 지나갔는지를 묻게 되는 흔한 어른들의 안줏거리 같은 말을 내뱉게 되기도 한다. 큰 질병을 앓을 일이 없다면 정말로 100세까지도 살 수 있는 시대. 근데 이렇게 멀리 가지 않아도 어느 누구든 22살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고작 22살인데 나이와 세월에 대해 논한다는 것이 기만처럼 보일 수 있는 나이이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정작 22살의 당사자들은 이제 더 이상 어리광 부릴 수만은 없는 나이라는 것이 확 체감하며 심란하기 일쑤이다. 현역으로 대학에 들어간 친구들은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취업을 걱정할 시기이고, 늦게 대학에 들어간 친구들은 그런 친구들을 바라보며 조바심을 느끼게 된다. 일반적인 흐름이라면 나도 아마 둘 중 하나의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 22살은 마치 여느 20살처럼 생동감이 넘치고, 도전에 불타오르고 있다.

     나도 이렇게 내가 글쓰기와 이야기에 진심이 될지 몰랐다. 언젠가 음악을 하기 위한 포석, 나와 비슷한 결의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 이공계열과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 등등 부차적인 이유로 영화과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점차 설령 플레이어로서 무대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그 무대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두근거리고 설레는 일인지를 느끼게 되었다. 우연히 프리랜서 작가 일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지인이 아닌 누군가에게 나의 능력을 인정받은 것을 시작으로,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느낀 비슷한 결, 매주 과제를 하고 준비하면서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과 배움에서 오는 희열, 지치지 않는 열정. 나태하고 공허하기만 했던 최근 5년간 느꼈던 감정과 그간의 내 모습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과장을 전혀 보태지 않고 영화과를 향한 여정이 내겐 운명 같은 조우였다. 유난히 올해에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행운들을 겪으며 하늘이 내 인생을 보다 못해 도와주는 느낌까지도 들었다. 심지어 내가 올해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공허함과 허탈감까지도 입시에 큰 도움이 될 정도였다. 설령 올해 한예종에 합격하지 않더라도, 나는 정말 많은 것들을 얻어 갈 것임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단 한 번도 입시가 괴롭지 않았다. 물론 내가 원하는 정도의 글을 쓰지 못했을 때 느끼는 자괴감, 실망감, 좋은 소재를 생각하지 못했을 때의 괴로움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마저도 즐거웠다고 한다면 믿어질까. 이렇게 재밌는 입시가 있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는 이 입시 자체를 즐기는 중이다.

     아마 내가 한 번에 합격을 하게 된다면 23살에 1학년, 더 늦어지면 24살. 아님 아예 한예종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가진 것들의 속성과 이 길이 비슷함을 확인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큰 수확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남들보다 늦은 시작이지만 그 어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당당해 마지않고, 오히려 자신감이 넘친다.

     나의 내실을 가꾸어나가면서 느끼는 충만감.

     22살의 나는 이제 막 도약을 위한 도움닫기를 시작했다.


22. 08. 11.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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