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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희 Jun 13. 2024

[YEAR에세이] 마침내 러너스하이

스물셋에 대한 기록

챗 지피티가 이 글을 읽고 생성한 이미지

 

  한 해 한 해의 단상을 적어 나간 지 벌써 4년째다. 매년 하반기가 시작될 무렵 슬슬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근질거림을 느낀다. 누군가는 그 해가 끝나갈 무렵 적는 것이 더 적절하다 말할지 모르겠지만, 왜인지 그 해가 끝나기도 전에 이 글을 써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직감적으로 들 때가 있다. 나는 우리네 인생도 그렇고, 그보다 더 작은 단위인 한 연도에 대해서도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그 가닥이 잡힌다고 느껴질 때쯤 쓰지 않으면, 그 해에 대한 단상이 휘발되고 흐릿해진다. 2학기 개강을 앞둔 지금, 23살의 나를 기억하려 자판을 두드려본다.

현재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한결 편하다. 그토록 원하던 ‘안정’이라는 궤도에 선 듯하다. 그래, 이제는 내가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비로소 자부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무얼 좋아하고 싫어하며, 무얼 잘하고 못하는지 대략적인 방향성은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솔직해질 용기가 생겼다는 말이 더 자연스러울지 모르겠다. 다른 이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나를 가감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이젠 대부분의 순간에 있어 나의 말과 행동은 내가 가진 ‘생각’에서 안정적으로 뽑혀 나오게 되었다. 마침내! 드디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다. ‘내가 말하는 건데 당연히 내가 생각한 대로 말하겠지.’ 그러나 생각보다 내가 가진 생각과 동일한 흐름으로 말과 행동을 하기란 무척 어렵다. 야속하게도 24시간 온종일 붙어있는 ‘나’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통 모르겠는 때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의식적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그 말을 뱉었는지, 왜 나도 모르는 사이 그토록 자연스럽게 그런 행동을 했는지. 나 스스로가 수수께끼처럼 느껴졌을 때 고통은 시작되었다.


   열여덟부터 시작된 ‘나’에 대한 탐구는 그런 꼬임을 해체하는 과정이었다. 얼기설기 엉킨 마음들을 똑바로 바라보기 위해 끊어진 부분은 붙이고 순서에 맞게 재배열해 보기 좋게 다듬어야 했다. 말이 쉽지 6년을 고생했다. 그 해결 방식은 무섭도록 단순하다. 모든 것에 ‘왜?’를 붙이는 것. 나라는 사람의 ‘평생의 컨트롤 타워’여야 할 내가, 알지 못하는 경로로 배출된 감정, 행동, 생각, 말이 없게끔 자꾸 나 자신을 궁금해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물음표를 품는 것.’ 나만이 가진 특성이라고 말하기엔 유난스러운 것이 하나 있다면, 나는 이해되지 않는 것을 기억 저편 서랍 속에 보관해 놓는다. 그렇게 보관해두면 마치 어디선가 빅스비를 부르면 띠링하고 휴대폰이 울리듯, 바깥에서 궁금증이 해결될 실마리를 발견하면 내 안에서 그 물음표가 들썩이며 반응한다. 그때 슬며시 서랍을 열어 살펴보면 된다. 그러다 보면 아, 내가 그래서 이랬구나. 이래서 그랬구나. 하며 나를 이해하게 된다.


   나는 내가 평소에 어떤 상태인지를 유심히 관찰한다. 내가 이럴 때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이지, 이런 생각이 자주 드는 사람이지 하는 데이터가 많다. 그래서 내가 상태가 안 좋을 때는 내 안의 그런 반응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내 상태가 안 좋음을 인지한다. 나 이제 준희 박사야! 하기엔 쑥스러운 수준이지만, 확실한 건 준알못은 아니게 되었다. 결국 나와의 시차를 줄여나가는 것이 평생의 목표가 되는 것 같다. 내가 나를 너무 미뤄두고 나 자신이 솔직해질 수 없게 덮어두면 나는 나와 멀어지고, 결국 나를 잃게 된다. 나를 잃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다. 본질은 없고 그저 피상적인 반복만이 이어진다.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곧 내 세상이 무너지게 된다.


   나를 지독히 감싸고 있는 고통은 외모 콤플렉스와 인간관계 문제 때문이었다. 대단히 호들갑스러운 시작과 달리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문제를 고백하는 게, 활자로 보니까 우습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들이 가정사와 또 다른 결핍들과 얽히며 생겨난, 여러 층계의 못난 마음과 욕망을 생각하고 나면 곧바로 가장 무거운 멍에가 되어버린다. 여전히 모두 벗어나지 못했지만 적어도 휘둘리지는 않게 되었다. 나는 두 단어 모두 바깥세상으로부터 기인된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더 깊은 근원을 찾자면 당연히 받아들인 수용체인 ‘나’에 있을 텐데, 자꾸 외부에서 해답을 찾으려 하니 막막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알게 된 ‘나’라는 사람은 너무나도 인정하기 싫었다. 그 누구보다 사랑이 많아 '보였던' 나는, 다른 사람은 사랑하면서 정작 나 자신을 가장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를 끔찍이도 혐오해서 모두가 나를 싫어할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상대방이 나를 싫어할 만한 구석은 없는지 계속해서 나를 검열했고 상대와 나눴던 대화 상황을 낱낱이 파헤치기에 이르렀다. 상대방이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도 불안했기에,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상대를 바로 아는 객관성을 가지고 싶어졌다. 그렇게 관찰과 예측, 나름의 실험을 통해 상대의 눈치를 살폈고 사람들을 집착적으로 분석하게 되었다.


   이 모든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냥 끊임없이 눈물이 흘렀다. 작년 하반기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나는 나와 마지막 화해를 하였다. 나는 내가 너무도 안쓰러웠다. 나를 알 수 있는 것도, 나를 바꿀 수 있는 것도, 나를 지키는 것도 다 내 몫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나를 너무 사랑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됐었다. 못난 나 자신이 견디기 힘들었고 그냥 외면했다. 그 눈덩이가 그렇게 커져서 죽음을 생각한 적도 여러 번이었었다.


   이제 나는 나를 속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예술을 하고 싶은 사람이었고, 동시에 부모님과 사회의 인정을 받고 싶은 하나의 인간이었다. 그래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입시에 목을 맸고 합격하기 위해 오히려 나의 불안함을 더욱더 자극해 극도로 완벽에 가까워지려 했다. 그렇게 1581명 중에 30등만 해도 감사하다, 했을 텐데 성적 장학금까지 받고 들어갔다. 나를 혹사시켰던 지난 몇 개월을 끝마치고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올해 2월 과호흡이 온 것을 끝으로 나는 점점 나를 놓아줄 수 있게 되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행복한 우연들을 맞이하게 된 것도 나의 건강에 아주 크게 일조했다. 내가 바란 친구상이 너무도 상세해서 유니콘을 믿는 게 아닐까 의심했던 나에게 그 유니콘은 실재함을 보여준 아라 언니. 언니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었고, 나와 너무도 닮은 사람이라 나를 안심시키는 법도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근탁오빠는 나눈 대화가 그 어떤 불편함 없이 늘 대화가 기대되고 재밌는, 인생에서 만난 유일한 사람이었고, 세심하고 지적인 사람이라 그와 함께하며 배려 받고 존중받는다고 느꼈다. 두 사람에게서 나는 괜찮아도 괜찮다는 것을 느꼈고, 나의 생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특히 이 두 사람에게는 두렵지 않아졌다. 내 생각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자기주장만 하지도 않는 사람들이기에 그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즐겁기만 하고 ‘나’를 찾게 했다.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도 해보았다. 정말 많이 좋아했다. 올해의 단상에 이를 적어놓을 정도로 말이다. 자존심을 접어두고 다시 생각해 보면 충분히 그럴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지만, 동시에 다시 생각해도 좋아하기를 그만할 만한 사람이라고도 생각된다. 좋아하면서 상처가 컸지만 나는 이제 나를 지킬 줄 알게 된 것인지, 나는 잘 멈출 수 있었다. 휩쓸리듯 주도권을 뺏겨 나를 놓치는 것이 아닌, 나는 나를 최우선으로 둘 수 있는 사람이 됐음을 그 사람 덕에 알았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고맙지 않지만 고맙다. 많이 고마운데 또 고맙지 않다. 아마 내 사랑을 아는 이라면 이 말이 무엇인지 알겠지. 나를 말려준 친구들에게 다시 한번 인생을 바쳐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정말 미안하게도 힘들게 들어온 학교인데, 커리어가 가장 뒷전이었었다. 그만큼 사람이 고팠었나 보다. 이런 나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지레짐작으로 적성이 맞을 거라 차치해둔 영화는 나에게 큰 선물을 주었다. 발끝부터 올라오는 전율과 쾌감도 느끼해 주었고, 지독한 인간 분석으로 몰빵된 소통 능력 스탯으로 영화를 만드는 과정 또한 ‘굳세어라’하며 큰 고통 없이 헤쳐 나갈 수 있었다. 열심히 하는 법을 되찾은 나는 교양 수업에서 만난 인연으로 연극 조연출도 맡게 되었다. 좋은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을 알아본다고, 내 곁에 있는 좋은 사람들이 불러준 인연 덕분에, 준형 오빠나 규리 언니를 만나며 각각 살면서 느끼기 힘든 인간적인 자극과 경외심도 가져보고, 구례에서 아이들도 가르쳐보는 기회까지 누렸다.


   그렇게 나는 부지런히 나와 마음 맞는 사람들을 만나고 우정을 쌓아가고 배움을 얻어 가며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다. 거울을 보는 것을 힘들어했던 나는 이제 거울을 볼 수 있게 되었고, 무리한다고 느낄 때 멈출 줄 아는 용기도 배웠으며,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필요할 때 나의 망가짐을 보여주어도 괜찮아졌다. 그 어느 누구에게든 축하의 말, 기쁨의 말을 하는 것이 고깝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누군가를 위로하고 이해할 여유도 생겼다. 미치도록 일을 하면서도 벅차지만 즐겁고, 너무 벅찰 땐 링거도 맞을 줄 아는 씩씩함도 챙겼다.


   쓰다 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추억이 방울방울이다. 고작 1년가량을 압축한 것인데 말이다. 나를 지켜준 나를 만들어준 사람들에게 고맙기도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순간이 있을 거라고 근거 없이 믿어주며, 이런 순간이 없으면 그렇게 만들 것이라고 악착같이 버텨 온 나 자신에게 너무 대견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정말 고맙다.


   이제 나의 삶에 있어 가장 든든한 지원군은 내가 되었다.


   '진짜 나’와 발맞추어 2인 3각을 하는 것이 인생이라 한다면, 나는 내 파트너를 제법 잘 알게 되었다.


   멈추고 고민했던 시간만큼 달릴 준비가 되었다.

   아니 난 이미 달리고 있더라.


   스물셋의 나는

   나도 모르게 시작한 이 달리기를 멈출 생각이 없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이 기분이 벅차도록 즐거운

   ‘러너스 하이’ 상태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30분 이상의 달리기를 하게 되면 더 이상 달려도 지치지 않을 것 같고, 계속 달리고 싶은 상태에 도달한다. 이는 마치 모르핀을 투여한 것과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키며 마약처럼 달리기에 중독되는 효과를 가져다준다고 한다.



23. 08. 28.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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