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손길을 기억합니다

뒤늦은 인사

by 준희최

말 한마디보다 더 오래 가슴에 남는,

따뜻한 손길과 조용한 눈빛.


오래전 기억 속에 묻혀 있다가도

어느 날, 아주 조용히 나를 찾아와 눈물짓게 한다.


그 조용한 품을 떠올리며

늦게라도 꼭 하고 싶었던 인사.




“야, 부고 문자 받았어?”


밤 11시, 학창 시절부터 같은 교회에 다니던 친한 형의 다급한 전화였다.

자신도 방금 연락받았다며, 내일이 발인이라 했다.

나는 허둥지둥 옷을 갈아입으며 아내에게 중얼거렸다.


"E 어머니가 돌아가셨대."


말끝에 눈물이 턱까지 차올랐다.

급히 차를 몰아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운전 중에도 친구들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믿을 수가 없다", "언제 마지막으로 뵀었더라…"

서로 다른 시간의 기억들이 흘러나왔다.


다들 집사님을 각자의 호칭으로 기억했지만,

나에게 그분은 영원히 '집사님'이었다.




"아이고 준희야, 네가 그런 아픔이 있었구나."

그날, 중학생이었던 나는 집사님의 품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무릎 꿇은 나를 집사님은 조용히 끌어안으셨다.

낮고 평온한 목소리로 기도가 이어졌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자,

격렬하게 퍼지던 울음이 조용히 잦아들었다.

따뜻한 손길이 내 뺨을 감싸고,

집사님이 내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추셨다.

눈물로 뭉개진 노란 가로등 불빛을 배경으로

엄마 같은 미소가 그림자 속에 따스하게 전해졌다.


"준희야, 아무리 그래도 중학생이 이렇게 술을 마시면 어떡하니.

내일 아침에 혼날 줄 알아."


다정하게 웃으며 말씀하시는 그 얼굴을,

나는 결코 잊지 못했다.




우리는 자정이 넘어서야 장례식장에 모두 모일 수 있었다.

다음 날은 평일이었고, 모두 직장인이었지만

그날 밤,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이미 둘째 날이었고,

늦은 시각 탓인지 우리 말고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상주가 된 E가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빈 의자들을 메우듯,

우리는 울고 웃으며 집사님에 대한 기억을 꺼냈다.


"그래서 형, 우리 엄마한테 엄청 혼났나?"

E가 웃으며 물었다.


"야, 기억 안 나냐. 다음 날 집사님이

콩나물 김칫국 끓여주셨잖아."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지. 지금 생각하면 진짜 꼴통들이 따로 없었어."

당시 함께 있던 친구 J가 웃으며 말했다.


"근데 더 대박인 건...

J, 너는 거기서 눈치도 없이 밥 더 달라고 했잖아."

텅빈 장례식장에 웃음 소리가 울렸다.


웃음이 잦아든 순간,

집사님과 닮은 E의 머리카락에 눈길이 잠시 머물렀다.


"가장 감사한 건 말이야,

그런 우리에게 집사님은 그저 '요 악동들' 하며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는 거야."


내 말 끝에, 울음이 묻어났다.

잠시 침묵이 우리 사이를 감쌌다.




"그런데... 그날,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그 자리에 없었던 친구가 물었다.

이미 몇 번은 들어 잘 아는 이야기였지만,

우리는 마치 처음 듣는 듯 그날의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그날, 나는 집을 뛰쳐나왔다.

그 공간에 더는 있을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도로로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거리를 헤매다

우연히 친구 J를 만났다.

말리지 않으면 정말 무슨 일이 날 것 같았던지

J는 나와 실랑이를 벌였고,

결국 "이거 먹고 다 잊자"며 소주 두 병을 사왔다.


어린 중학생 둘이

그걸 마실 수 있는 곳은 어디 있었겠는가.

우리는 E의 집 옥상으로 올라갔고,

그날 밤의 난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는 울고 웃으며 한참 동안 이야기를 이어가다

아침이 밝아올 즈음이 되어서야 장례식장을 나섰다.


차를 몰고 돌아오는 내내

영정사진의 인자한 얼굴이 떠올라

계속해서 나는 눈물을 훔쳐야 했다.


그 사건 이후로,

집사님은 단 한 번도 그 이야기를 꺼내신 적이 없었다.

나 역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굴었다.

부끄러움 때문이기도 했고,

어쩌면 그날의 감정을 말로 꺼낼 자신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집사님의 마음엔

그날의 기억이 어떤 이름으로 남아 있었을까.

나는 끝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날의 일이

'참된 어른의 위로'로 남아 있다.




"E야,

나는 이제 교회에 다니진 않지만,

천국이 진짜 있다면 말이야...

꼭 천국에 가서 집사님 뵙고 싶어.

그때 정말 감사했다고, 인사하고 싶어."


그 말을 곱씹다가

나는 운전대를 안고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작가의 말


그날, 나는 처음으로

부모가 아닌 누군가의 품에서

마음을 소리 내어 울 수 있었습니다.


당신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다면,

그 품을 기억해주세요.


그리고 언젠가 당신이 누군가에게

그런 품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 또한 작고 따뜻한 기적이 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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