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을 것인가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서 유산을 받는다.
눈에 보이는 것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들.
나는 무엇을 받았고,
무엇을 남겨야 하는가.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는 눈에 띄게 수척해지셨다.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던 분이
자주 할머니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 안에는 분명한 슬픔과 함께
오래된 원망이 묻어 있었다.
“늬 할머니는 매일 온통 돈 버는 생각밖에 없으셨어.
성격은 얼마나 고약한지,
언제 한번 늦잠 잔다고 찬물을 뿌려 깨운 적도 있어.”
아버지는 할머니의 따뜻한 모습을 말한 적이 없다.
떠올리는 기억들엔 늘 고된 세월에 대한 안타까움과
말로 다 전해지지 않는 거리감이 함께 배어 있었다.
어쩌면 전쟁을 겪은 세대의 억척스러움,
그 세대를 지탱한 건 사랑이 아니라 의무였는지도 모른다.
쓰러진 할머니를 직접 모시며,
아버지는 말없이 감정을 삼키셨다.
사랑과 원망, 미움과 책임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 덩어리.
그 미움 같은 게,
오히려 아버지를 오래도록 지탱하던 힘이었을까?
나는 알 수 없었다.
슬픔을 말하면서도
멈추지 않던 그 원망의 파편들.
평소엔 적당한 거리를 두던 내가
그즈음엔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아버지 댁을 찾았다.
아이들은 평소처럼 내게 달려와 안기고,
내 무릎을 차지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아빠”를 부르며 웃었다.
그 모습을 아버지는 어딘가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셨다.
익숙하지 않은 듯, 그러나 놓치고 싶지 않은 듯
묘하게 끌리는 풍경을 보는 눈이었다.
“너는 애들이랑 특별히 친해 보인다. 일반적인 건 아닌 것 같은데.”
아버지의 그 한마디.
나는 겉으로 웃어넘겼지만
가슴 속 오래된 아이가 움찔하며 속삭였다.
‘아버지, 나한테도 이렇게 해주셨어야 해요.’
그 메아리가 몸 구석구석 퍼져나갔다.
그 순간,
나는 속에서 뭔가 느슨하게 풀리는 것을 느꼈다.
오래된 갈증이 해소되는 듯한 이상한 포만감.
원망과 슬픔이 지나
나를 조용히 조이고 있던 무언가가
‘이제 됐다’며 손을 놓아주는 기분이었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내가 붙들고 있었던 건 분노같은 것이 아니라,
사랑받을 수 있었던 과거를
조용히 마음 속에서 그려보는,
오래된 바람이었다는 걸.
얼마 전 초등학교 3학년 큰 아이가 학교 숙제로 쓴 글이 떠올랐다.
제목은 “어른들은 이상해”.
‘왜 엄마는 수학문제를 물어보면 쉽다면서도 같이 생각해보자고 할까?’
‘왜 아빠는 외할머니가 주시는 밥을 다 먹고 다이어트를 한다고 할까?’
그 글을 읽으며 나는 멍하니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어릴 적, 아버지의 말없음과 차가운 표정이
내게는 끝없는 의문과 두려움으로 남았었다.
그런데 내 아이는, 그 낯섦 속에서 사랑을 읽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어른들의 그런 행동은 사랑과 배려가 숨어 있어서 그런 거라는 걸.”
나는 아버지에게 무엇을 받았고,
내 아이에게는 무엇을 전해주고 있을까.
아버지는 분명 나를 사랑하셨을 것이다.
그분도 그들의 부모로부터
따뜻한 무언가를 충분히 받지 못했기에,
어쩌면 사랑하는 법을 미처 배우지 못했던 건 아닐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 순환의 고리를
이제는 끊어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서 ‘작은 유산’을 받고,
또 누군가에게 ‘작은 유산’을 남기며 살아간다.
그것은 때로는 관심의 시선과 도움의 손길로
말없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로
뒤늦게나마 전하는 감사의 인사로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고 있다.
오래된 아픔을 끊어내고
불완전함 속에서도 사랑을 읽어낼 줄 아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내가 아이에 물려주고 있는,
그리고 할머니와 아버지에게서는 끝내 받지 못했던,
가장 값지고 따뜻한 ‘작은 유산’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늘 아버지를 두렵고 어렵게 느꼈습니다.
그 무뚝뚝함은 때때로 말보다 더 큰 벽처럼 다가왔고,
그 속에 담긴 감정을 이해하기엔 나는 너무 어렸습니다.
아버지의 의아한 표정과 아이의 글 사이에서
나는 순간 차가운 벽을 느꼈습니다.
나는 여전히
그 간극 사이에서 흔들리지만
아이의 마음이 그 다리가 되어 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